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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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TMI-‘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백범의 흔적 선연한‘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골목에서,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켜켜이 쌓인다. 백범 김구가 탈옥해 울분을 삼키며 걸었던 그 길. 중구 내동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이하 청년 김구 거리)엔 우리나라 독립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개항과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역사가 퇴적층처럼 쌓여 있다. 골목길 TMI가 백범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길 위에서 오늘의 사람들을 조우했다.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이주흠 포토 디렉터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전경백범 김구 선생이 인천과 연을 맺은 때는 1896년. 그 시작은 어둡고 참혹했던 인천의 감옥소에서 시작된다.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며 일본 장교를 살해한 청년 김창수는 해주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 1896년 8월 인천 감리서로 이송돼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곳에서 청년 김창수는 민족 지사志士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난다.백범의 발자취를거닐고, 알리다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 중) 오늘,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이 선연한 인천 감리서 터 맨 꼭대기엔 그와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이 오롯이 서 있다.길을 내려가다 청년 김구 거리를 스케치북에 담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만났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조형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신흥여중 이윤희(42) 교사는 “내가 사는 곳을 바로 알고 알리는 ‘책마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년 김구 거리를 알리는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해줬다.김보경(13) 학생은 “책이나 교과서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김구 선생님과 인천의 인연을 잘 그리고 싶다”며 스케치에 열중했다. 김채은(14) 학생은 “거리 스케치를 하며
2022-08-01 2022년 8월호 -
인천 클로즈업 - 나무와 샘 우물
카페 안 ‘우물’의 정체는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인천시 동구 화수동 ‘나무와 샘’ 카페 안의 ‘우물’예로부터 ‘우물’은 신성한 공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레박 하나 가득 찰랑찰랑 물을 길어 올리는 게 복을 길어 올리는 것이라 믿었다. 좋은 우물 근처엔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고, 우물을 향해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지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우물에 지내는 제사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이는 우물이 사람들의 건강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마르지 않는 우물은 싱싱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다.‘우리 친정 조카가 혼기가 찼는데 시집을 못 갔어요. 어디 황소 같은 총각 없수?’ ‘아무개 집 할아범이 노망이 났다던데, 그렇게 인색하게 굴더니 말년이 안 좋을 수밖에. 쯧쯧.’ 우물은 사람들이 모여 인지상정을 공유하고 마을에 흘러 다니는 정보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다. 인천시 동구 화수동 ‘나무와 샘’ 카페엔 깊은 ‘우물’이 있다. 시원한 지하 암반수가 그윽하게 고인 우물이다. 이 우물이 카페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가 치킨집이었어요. 제가 카페를 열며 보니 한가운데가 둥근 철판으로 가려진 공간이 있는 겁니다.” 호기심 많은 이광범(58) ‘나무와 샘’ 대표는 카페 인테리어를 하면서 철판을 걷어냈고, 우물이 옛 모습 그대로 살아 있음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마실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우물의 깊이를 알기 위해 물을 빼내고 보니 깊이가 아파트 3층 높이인 8m나 됐고, 바닥은 암반으로 돼 있더군요. 암반 주변 세 곳에서 계속 물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물을 빼낸 뒤
2022-08-01 2022년 8월호 -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⑳ 인천창영초등학교 舊 교사
문화재관으로 꽃핀 100년의 교사校舍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인천창영초 舊 교사는 1924년 지은 건물로 현재는 ‘창영문화재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깡!” “깡!” 지난 7월 18일 오후, 인천창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코치가 던져주는 볼을 빈틈없이 받아치는 타자의 방망이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103년 전인 1919년 3월, 인천창영초 운동장에선 야구공 치는 소리가 아닌 “대한 독립 만세!”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이 3월 6일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교문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학생들은 3월 8일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며 만세 운동을 이어갔다. 인천창영초는 1907년 ‘인천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다. 교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길게 누워 있는 고색창연한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24년 지은 ‘구舊 교사’(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다. 아치형 벽체와 무지개 모양으로 꾸민 현관이 고풍스럽게 보인다. 좌우 대칭면에 넓은 창을 규칙적으로 배열하고 직선을 강조한 모습이다. 복도를 길게 ㅡ자 형태로 만들고 커다란 창문을 뚫은 건 조선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한다. 지붕에는 그 아래쪽 방을 밝게 하기 위해 지붕창을 만들었으며 현관, 복도, 기둥 등 건물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 건물은 현재 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소중한 자료와 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창영문화재관’으로 쓰고 있다. 인천창영초 야구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학교로 오르는 길에 ‘인천의 3·1운동 발상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
2022-08-01 2022년 8월호 -
한 컷 인천-인천 감리서 터 주춧돌
139년 역사를 품은 돌8·15 광복절에 ‘인천 감리서 터 주춧돌’을 가만히 오래도록 바라봅니다.저 표면이 거친 주춧돌은…백범 김구가 두 차례 옥고를 치르다 탈출한 대한 독립 운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1883년 개항부터 오늘까지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지니의 마술 램프’처럼,손으로 돌을 비비면 139년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2022-08-01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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