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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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에 비친 인천 - 소래포구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손길을 따라 인천 사람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생명력 넘치는 소래 바다, 짠 내 가득한 풍경을 길현수 화백이 담았다.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품듯, 소래를 그리고 그린 시간이 20여 년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전재천 포토 디렉터소래일기 동행 10P, 53.0×40.9cm, Oil on Canvas길현수 화백에게 소래는 따스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이자,고단한 삶을 희망으로 버텨낸 사람들의 검푸른 풍경이다.20년 사랑의 그림일기 자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소래의 맨 얼굴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 새벽 세 시, 어둠 한가운데를 달려 포구로 갔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안고. 검은 바다는 고요하다. 왁자하던 포구가 어둠에 덮여 여백을 드리운다. 세상 모든 것이 잠든 이 시간에도, 소래 사람들은 깨어 있다. 바닷가에서 얼크러진 그물을 매만지고, 어물전 가판을 정리하며 일찍이 하루를 준비한다. 출항을 기다리는 크고 작은 배들 사이엔 분주함이 새어난다. 소래 사람들은 햇살보다 먼저 새벽을 깨운다. 지독히 사랑해서, 길현수(60) 화백은 소래를 그린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에도 다리 아래 숨어들어 기어코 화판을 폈다. 며칠이고 갯벌에 뒤엉켜 붓을 놓지 않았다. 그 시간이 20여 년이다. “연인처럼 늘 그립고 보고 싶어요. 아름다운 저 바다,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후미진 곳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폐어구들조차 제겐 예사로 보이지
2022-10-04 2022년 10월호 -
인천 클로즈업
백성의 마음 城, 나라를 지킨 石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중심성사적비는 개항기 부평부사 박희방이 백성들의 뜻을 모아 쌓은 ‘중심성’을 알리는 비석으로 현재는 받침돌(귀부)만 남아 있다. 사진은 서구청 앞에 있던 받침돌의 모습. 계양산성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엔 커다란 바위 하나가 놓여 있다. 우툴두툴하게 거칠어진 표면, 모서리가 둥글고 직사각형의 홈이 파인 바위는 뭔가 깊은 사연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바위의 이름은 ‘중심성사적비 귀부衆心城 事蹟碑 龜趺’이다. ‘귀부’는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을 말한다. ‘중심성’은 어떤 성이며, 이 받침돌은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일까. 개항기인 18세기 후반 고종은 도성과 가까운 인천 연안 방비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등 서양의 침략과 계속되는 이양선 출몰 때문이었다. 강화도에 이어 1875년 영종도까지 점령당하며 수도 한양을 지키던 인천의 연안 방어선 구축은 시급한 현안이었다. 적들이 인천 연안에 상륙해 부평로를 따라 진격할 경우 최단 시간에 도성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평로는 도성을 출발, 양화진에서 한강을 건너 철곶포(양평동)~고음 달내현(화곡동)~부평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고종이 1879년(고종16) 서구 연희진과 동구 화수동에 화도진 축조를 명하면서 2개의 진지가 설치된다. 그러나 1880년(고종17) 인천의 개항이 결정되면서 1882년(고종19) 연희진은 폐지되고, 화도진은 훈련도감 아래로 들어간다. 시름에 빠져 있던 고종은 1883년(고종20) 10월 연희진을 대신할 군사시설인 중심성 축조를 명한다. 그렇게 지금의 서구와 계산동의 경
2022-10-04 2022년 10월호 -
인천 문화재 이야기 -참성단
단군신화의 향기… ‘민족성지’의 상징물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마니산 정상에서 바라본 참성단 전경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지금으로부터 4355년 전인 기원전 2333년. 우리나라의 시조 단군왕검은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세운다. 우리는 이날을 개천절開天節이라 부른다. 단군은 이어 강화도 마니산(472.1m) 정상 옆 봉우리에 ‘참성단塹星壇’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 참성단은 윗부분이 네모나고 아래쪽은 둥근 담장을 쌓은 제단이다. 이런 모양을 상방하원上方下圓 형태라고 부른다. 땅과 하늘을 상징한다. 강화도를 ‘민족의 성지’라고 말하는 이유는 참성단이 있기 때문이다. 참성단은 1964년 7월 11일 ‘사적 제136호’로 지정됐다. 엔 1264년(원종5) 원종이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가 초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원종은 야외 제단에서 하늘에 제사한 최초의 국왕이었다. 원종은 봄과 가을 두 차례 참성단에서 의식을 치렀으며, 이 같은 전통은 조선 전기까지 이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뭄이 들면 참성단에선 기우제가 열렸고,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감사의 축문이 올려졌다. 국가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보니 제전祭田(제사 비용)이 지급되기도 했다. 참성단은 기원전 2333년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참성단 전경 태백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단군과 관련된 유적은 여러 곳이 있다. 그러나 국가가 편찬한 역사서에 명기한 곳은 강화도가 유일하다. 와 는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며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참성단 안에는 한 그루의 소사나무가 있다. 200살
2022-10-04 2022년 10월호 -
인천의 아침
민선 8기 출범 100일‘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민선 8기가 ‘시민이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 지 100일을 맞았다. 10월 8일은 민선 8기가 출범한 지 정확히 100일이 되는 날이다. 100일을 맞기까지 민선 8기는 ‘제물포르네상스’와 ‘뉴홍콩시티(프로젝트)’를 비롯해 인천의 미래를 새롭게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제물포르네상스’는 해양수산부 소유의 중구 내항 부지 330만㎡(약 100만 평) 가운데 181만㎡를 항만도시로 재개 발하는 사업이다. 인천 내항 일대를 역사와 문화, 해양관광, 레저 중심의 ‘하버시티’로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천시민들은 이 프로젝트가 쇠락한 중구와 동구 등 주변 원도심 발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뉴홍콩시티(프로젝트)’는 영종과 강화, 서구 일대에 홍콩을 떠나는 다국적 기업과 국제기구를 유치하려는 계획이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 균형 발전이 기대된다. 이 두 사업은 인천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민선 8기의 핵심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지난 9월 15~22일 싱가포르와 호주 시드니, 브리즈번 출장을 다녀왔다. 재난 관련 국제기구 UNDRR(유엔재난위험경감 사무국)의 제9차 아시아태평양 재난위험 경감 각료회의 (APMCDRR) 참석, 202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 기구) 정상회의 인천 유치 홍보 홍보 활동을 벌였다. 인천이 세계 초일류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순방기간 인천이 해외 유수 도시들과 글로벌 이슈를 공유하는 국제도시로 인정받은 건 큰 성과이다. 싱가포르, 호주 현지 기업인과 도시재생 사례를
2022-10-04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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