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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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클로즈업 -볼음도 은행나무
북한에 두고 온 단짝 그리워한 지 어언 800년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예로부터 은행나무는 영험한 존재로 대접을 받았다. 나무가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어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인재도 태어나게 해준다고 믿었다. 마을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액운이나 돌림병이 돌면 더 이상 창궐하지 않고 병에 걸린 사람은 하루빨리 낫게 해달라는 제사를 올렸다.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정기적으로 ‘당제’를 지냈으며, 수시로 나무를 찾아가 기도를 올리곤 했다. 볼음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는 800살 먹은 노거수다. 높이 24.5m, 둘레 9.8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여느 은행나무와는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볼음도 은행나무의 원고향은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로 알려졌다. 현재의 북한 땅이 이 은행나무의 고향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고려 중엽 북한 지역에 큰 홍수가 났다. 이때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볼음도로 떠내려왔는데, 그게 볼음도 은행나무였다. 안타깝게도 배필은 북한에 남았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수나무이며, 북한 천연기념물 165호인 은행나무가 바로 볼음도 은행나무의 짝이다. 볼음도 사람들은 은행나무가 이따금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 내어 운다고 말한다. 북한의 암나무를 그리워할 때마다 나무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볼음도 은행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으로 매년 1월 말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으나 6·25전쟁 이후 남북이 갈라지면서 정기적인 풍어제는 지내지 않고 있다. 볼음도는 강화군 서도면에 속한 섬으로 화도면 선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2022-08-30 2022년 9월호 -
인천 문화재 이야기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천년의 세월을 흘러온 인천 유일의‘國寶’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은 고려 현종(1009~1031 재위) 때 거란을 물리치기 위해 1011년(현종 2년) 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이다. 가천박물관 심효섭 부관장이 초조대장경을 설명하고 있다.‘천년의 세월’을 지내온 책이 어떻게 저처럼 온전할 수가 있을까. 인천 유일의 국보,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初雕本 瑜伽師地論 卷五十三’의 상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누렇게 빛이 바래고 희미한 얼룩이 남긴 했지만 종이와 글씨의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견고하고 선명했다. 가천박물관이 소장한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은 고려 시대에 제작한 ‘초조대장경’ 가운데 한 권이다. 모두 100권으로 이뤄진 유가사지론 가운데 53번째 책이다. 목판으로 인쇄해 두루마리 형태(권축본)로 제작한 이 국보는 인도의 미륵이 저술하고 중국 당나라의 현장玄裝(602~664)이 번역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초조본은 고려 시대 ‘첫 번째로 판각한 대장경’을, 유가사지론은 ‘유가사의 경지에 관한 논’을 의미하며, 불교 경전을 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가사는 요가 수행자를 뜻하며 ‘유식학파’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식학자는 원효대사다. 그는 의상대사와 함께 신유식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고자 했다. 그렇게 배를 타러 당항성으로 가던 길에 무덤가에서 잠이 든 원효대사. 잠결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신 뒤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밖에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유식학파는 이후 순경, 태현 등 유
2022-08-30 2022년 9월호 -
인천의 아침 -칼럼
대불호텔과 인천 숙박시설의 변천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2022년 8월 대불호텔백령도 A펜션은 시설도, 건축디자인도 매력 만점이었다. 뽀송뽀송한 이불과 흰색 톤의 샤워 시설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아늑함이 느껴지는 2층 다락방과 펜션 앞마당 고기를 구워 먹는 야외 시설도 여행 분위기를 한껏 달궈주었다. 현지인은 백령도 펜션을 찾는 사람이 많아 평일에도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해줬다. 백령도뿐이 아니다. 옹진군, 중구의 섬들과 강화도엔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펜션(실제 영상에 등장한 펜션도 많다) 과 최신 시설을 갖춘 캠핑장, 글램핑장이 즐비하고 송도 국제도시, 영종하늘도시엔 여러 형태의 특급 호텔이 불야성을 이룬다. 과거 숙박시설의 기능이 말 그대로 잠을 자기 위한 장소였다면 지금은 레저와 힐링, 가족 단위 여행객의 놀이 장소로 각광을 받는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숙박시설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천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숙박시설은 우역郵驛으로 알려졌다. 신라 시대 관리들이 묵던 곳이었다. 고려 시대엔 역참驛站이 조선 시대엔 관館, 원院이란 숙소가 있었다. 공문서 전달, 공 물 수송과 같은 공무를 보는 관리들이 이용하던 거처였다. 외국 사신들도 관에 머물렀다. 태평관太平館과 모화관慕華館은 명나라 사신이, 북평관北平館은 여진족이 애용했으며, 동평관東平館과 왜관倭館은 일본 사신들이 묵어가던 숙소다. 국내 서민 여행자들을 위한 봉놋방, 즉 주막(店)은 식당과 주점, 잠자리 기능을 겸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여관이었다. 상업이 발달한 조선 후기엔 객주客主와 여각旅閣 같은 새로운 형태의 여관이 생겼는데 육지 상인들은 객주를, 연안 포구로 모여
2022-08-30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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