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시민 행복 메시지 : 칼럼
‘건강옹진호’의 활약을 기대하며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차 안에 의학 설비를 갖춘 구급차를 국내 최초로 선보인 미국계 한국인 인요한 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의 청년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택시로 병원에 이송됐는데 의사의 권유로 더 큰 병원으로 향하다 택시 안에서 숨졌습니다. 그는 이후 목수, 철공 기술자와 함께 집 뒷마당에서 뚱땅거리며 신개념의 구급차를 제작했습니다. 구급차가 단지 환자 운송수단에 불과하던 시절 차 안에서 응급처치가 가능한 구급차를 만든 것입니다.
“자네 아버지는 한국 사람처럼 살았고 한국 사람처럼 죽었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그가 아버지의 지인에게서 들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서는 당시 열악했던 한국의 응급구조시스템이 투영됩니다. 제대로 된 구급차만 있었어도 ‘한국 사람처럼 (길에서 허무하게) 죽었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배 타고 물 건널 필요가 없는 육지가 이 정도였으니 섬은 오죽했을까요. 이 대목에서 잠시 섬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여보, 이 사람아! 의사 얼굴 구경이라도 한번 해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어서 눈을 뜨라고!”
의사가 섬마을에 도착했을 때, 산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임신중독증으로 숨진 지 몇 시간은 된 듯했습니다. 이불 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산모, 그런 아내를 흔들어 깨우며 오열하는 남편, 산모가 걱정돼 달려왔다가 함께 눈물 짓는 동네 주민들…. 손 한번 써보지 못한 의사는 무력감에 젖어 얼룩진 천정만 바라보았습니다. 바다 건너 육지 병원을 찾아온 산모 남편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섬은 환자를 살리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1950년대, 낙도 오지에 무료진료를 다니던 한 산부인과 의사의 회고입니다.
훗날 대학교 총장이 된 이 의사는 인천에서 권역외상센터가 문을 열던 날 “수십 년 전 돌아오는 배안에서 펑펑 울면서 느려터진 통통배를 한없이 원망했었는데 오랜 꿈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 같다”라며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또 하나의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지난달 20일 무게 270톤에 길이가 50m에 육박하는 배 한 척이 백령면 용기포 신항에 도착했습니다. 이 배는 우리 시의 새 병원선 ‘건강옹진호’입니다. 병원선이 백령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백령도는 기존의 낡은 병원선(인천531호)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이었습니다. 건강옹진호는 인천531호보다 두 배 이상 몸집을 키우고 속도도 빨라져 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보다 힘차게 파도를 가르며 멀리 있는 섬까지 갈 수 있고, 위급 상황 시 다수의 응급환자를 후송할 수도 있습니다.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섬 주민들이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닻을 막 올린 건강옹진호가 한국 의료의 새로운 물길을 열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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