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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길 위의 인문학 : 광복절

2025-08-12 2025년 8월호

뼈아픈 교훈으로 

현재에 되새기고 미래에 남겨야 할 역사


글. 김성배 문화비평가




인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아픔과 모멸의 슬픈 역사를 청산하고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전쟁 반대 평화 수호의 기치를 드높이기 위해 소녀상을 건립하여 2016년 10월 29일 제막식을 가졌다.(동상 김창기 작가)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는 소녀상이 세워진 이듬해인 8월 12일 동상을 건립했다. 작가는 실제 조병창을 경험한 두 인물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이원석, 해방의 예감, 3m*4m*2m, 청동과 화강석)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해마다 8월 15일이면 이 노래를 진지하고 비장하게 부르곤 했다. 일제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해 역사를 지켜낸 선열들의 희생으로 국권을 회복하고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평공원에는 소녀상과 징용노동자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일대는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삼릉)제강과 노동자들의 숙소인 줄사택(10가구를 이어 붙인 형태)이 있었던 곳이다. 일제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다음 해 4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1939년 부평에 조병창을 설치해 무기 제조와 군수물자 보급을 담당케 했다. 미쓰비시는 1942년 같은 일본기업으로부터 공장과 숙소를 인수했다. 계속해서 일제는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촉발된 태평양전쟁을 치르기 위해 더욱 가혹하게 강제징용과 동원, 물자약탈 등을 일삼았다. 조선인은 한반도 내에서는 물론 일본, 사할린과 쿠릴열도, 동남아시아 등지로 끌려가야만 했다. 

유네스코는 2015년 7월 메이지 시대(1868~1912)의 산업혁명유산으로 군함도를, 지난해 7월 에도 막부(1603~1868) 이후 금과 은의 채굴지로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일본은 이들 지역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이 일을 추진하면서 약속한 희생자들에 대한 기록과 추모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이 땅에서 그들이 자행했던 행적들을 샅샅이 찾아내 보존해야 한다. 지난해 8월 국가유산청은 미쓰비시 줄사택이 남아있는 부평동 760-285 외 33필지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이와 더불어 조병창과 캠프마켓의 기록을 발굴하고 남아있는 시설을 보존해 역사공원화해야 한다. 과거의 아픔과 굴욕을 원한의 감정이 아닌 뼈아픈 교훈으로 현재에 되새기고 미래에 남겨야 한다. 역사를 망각하는 순간 비슷한 일들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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