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천에서 인천으로 :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주년
멈추지 않는 함성,
폭우를 뚫고 깨어난 여름
펜타포트 20년, 록의 전설이 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인천시립박물관
2025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바로가기
대한민국 인천에 펼쳐진 펜타포트의 바다.
20년의 뜨거운 열기가 이 도시를 다시 깨운다.
1999년, 트라이포트에서 시작된 함성.
쏟아지는 폭우 속 빛나던 순간이 전설의 시작이었다.
역사의 시작 :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폭우가 무대를 집어삼켰다. 드럼 헤드에 맺힌 물방울이 터질 때마다 스네어 소리가 더 날카롭게 갈라졌다. 젖은 기타 줄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뜨거운 조명을 받아 허공으로 흩어졌다. 관객들은 우비를 벗어 던진 채 진흙 위에서 발을 굴렀다. 빗줄기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함성이 비를 찢고 하늘로 치솟았다.
1999년 여름, 인천 송도의 한 공터.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Triport Rock Festival의 첫날이었다. 전설의 록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은 악천후 속에서도 끝내 무대에 올랐다. 기타의 묵직한 리프가 공기를 가르자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가 폭우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터져 나온 함성이 하나의 거대한 합창처럼 폭발했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이 땅의 록은 처음으로 세계와 맞닿았다. 그해 유례없는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폭우는 끝내 무대를 무너뜨렸다. 둘째 날 공연은 전면 취소됐다. 그러나 관객들은 끝까지 빗속에 서서 무대를 바라보았다. 기록적인 실패라 불렸지만, 그날의 함성은 멈추지 않았다. 쏟아지는 폭우가 대한민국 록의 심장을 처음으로 거세게 뛰게 했다.
실패가 만든 위대한 서사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그날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대전에서 친구와 텐트까지 챙겨서 올라왔어요. 그 역사적인 순간을 꼭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알았죠. 한국에서도 록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그에게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은 좌절로 끝난 무대가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밴드들이 한국에 온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딥 퍼플Deep Purple ,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 그 이름들은 당시 한국에서는 꿈같은 라인업이었죠. 펜타포트는 바로 그날의 서사 위에서 시작된 축제예요.”
무대 위로 쏟아지는 빛과 함성.
펜타포트 20년, 여름은 그렇게 완성된다.
펜타포트로 부활 :
태양 아래 깨어난 여름
7년 뒤, 인천의 여름은 록의 숨결로 뜨겁게 되살아났다. 2006년,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Incheon Pentaport Rock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무대. 첫날, 송도의 공기는 숨이 막힐 만큼 뜨겁고 팽팽했다. 드럼이 심장을 두드리듯 울리자, 관객들은 환호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김학선은 그 벅차오르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펜타포트는 트라이포트의 좌절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그 실패가 오히려 한국 록의 자존심을 세웠죠. 펜타포트는 ‘우리는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날의 태양은 폭우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에 새로운 역사를 세웠다. 진흙과 빗물에 뒤엉켜 잠겨 있던 무대는, 뜨거운 햇빛과 함성 속에서 다시 일어섰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그는 펜타포트를 ‘시간이 만든 도시의 역사’라고 말한다. 사진 김경수 포토디렉터
스무 해의 여름 :
세계와 맞닿은 무대
펜타포트, 그 시작부터 달랐다. 2006년, 무대에 오른 이름들은 이미 세계가 열광하던 밴드들이었다. 스트록스The Strokes 가 첫날 송도의 여름을 열고, 마지막 날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의 선명한 리프가 밤공기를 갈랐다. 그 순간, 관객들은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눈 앞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2015년 10주년, 무대는 다시 한번 그 이름을 증명했다. 첫날 헤드라이너로 오른 스콜피온스Scorpions는 결성 50주 년을 넘긴 노장 밴드였지만, 여전히 젊고 뜨거웠다. 마지막 두 곡, ‘스틸 러빙 유Still Loving You’와 ‘록 유 라이크 어 허리케인Rock You Like a Hurricane’이 울려 퍼지자, 송도의 밤하늘은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펜타포트는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여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매년 60여 팀의 국내외 아티스트가 송도에서 무대를 세우고,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15만 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았다.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이 변화를 한국 록의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펜타포트는 해외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투어 일정에 올리기 시작한 출발점이었습니다. 트라이포트가 시작이었다면, 펜타포트는 그 씨앗이 꽃을 피운 무대였죠. 세계적인 밴드들이 인 천, 대한민국을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징적이었습니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매년 여름, 인천을 세계의 음악 지도 위에 선명히 각인시킨다.
다양한 색깔, 하나의 이름. 밴드 ‘다양성’이 펜타포트 무대에서 빛나던 순간.
2024년 펜타 슈퍼루키 대상의 주인공, 다양성 밴드.
인천 출신 메탈 밴드 해머링.
젊은 심장 :
무대에서 증명하다
펜타포트는 꿈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젊은 밴드들에게 이곳은 모든 것을 걸고 서야 하는 단 한 번의 무대다.
2024년 펜타 슈퍼루키 대상의 주인공, 다양성 밴드. 곽승현, 주준규, 신예찬, 이충희 네 멤버는 처음 그 무대에 섰던 날의 긴장과 떨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펜타포트는 꿈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서야 할 자리고, 물러설 수 없는 무대였죠. 연습실에서 땀 흘린 시간과 끝없이 이어진 밤들이 한꺼번에 스쳐 갔습니다. 한 곡, 한 곡이 모두 우리가 이곳에 설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 같았어요.”
밴드 해머링Hammering에게 펜타포트는 전환점이었다. 2005년 인천에서 결성된 이 메탈 밴드는 펜타 슈퍼루키 첫 회에서 은상을 거머쥐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그날 이후, 이들은 세 차례 펜타포트 무대에 오르며 존재를 증명해 왔다.
“그날이 없었다면 지금의 해머링도 없었을 겁니다. 관객 앞에서 연주하며 느낀 건 단 하나였어요. 끝까지 버틸 수 있어 야 진짜 뮤지션이라는 것. 펜타포트는 우리에게 한계를 넘어 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무대 위에 흘린 땀과 떨리는 시선, 그 순간을 함께 지켜본 수 많은 눈빛이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다. 조명이 꺼진 뒤에도 그날의 열기는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 있다. 펜타포트는 청춘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며,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는 시간이다.
나락도 락이다’. 김조성 시민이 깃발에 새긴 목소리가 관객을 하나로 모았다. 사진 김조성
펜타포트의 심장은 관객이다. 무대 위의 모든 순간은 그들로 완성된다.
팬덤과 열정 :
우리가 펜타포트의 역사다
거대한 사운드가 온몸을 흔들었다. 깃발이 바람을 가르며 일렁이고, 수만 개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울려 퍼졌다. 땀에 젖은 얼굴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고, 낯선 이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하나가 되었다. 음악에 몸을 맡긴 순간, 모두가 같은 심장으로 뛰고 있었다. 그것이 펜타포트였다.
아티스트만의 축제가 아니다. 이 뜨거운 여름을 완성하는 건 무대 위의 음악이 아니라, 그 앞에서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온몸으로 뛰던 사람들이었다. 그 열정이 20년 동안 이 축제를 지탱해왔다.
“펜타포트는 우리에게 여름의 의식 같아요. 8월, 가장 뜨거운 날에도 몇 시간이고 에너지를 쏟아내는 관객들이야말로 이 축제의 진짜 주인공이죠. 언젠가 40주년이 되는 날에는 아버지와 아들, 또 그 아이가 함께 찾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10년 넘게 현장을 지켜온 김조성(페스티벌라이프 대표) 시민은 펜타포트를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시간을 쌓아 올린 기록이라 말한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년, 팬들의 얼굴은 세월과 함께 변해갔다. 젊은 날, 깃발을 흔들며 밤새 소리 지르던 청년들은 어느새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섰다. 여전히 같은 음악을 듣지만, 그 선율은 빛나던 청춘의 시간을 지나 다음 세대의 기억 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펜타포트는 그렇게 한 사람의 여름을 넘어, 시간과 추억을 잇는 축제가 되었다. 무대 조명이 꺼진 뒤에도 우리의 여름은 끝나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이미, 다시 시작될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밤하늘을 가르는 빛과 함성 아래, 펜타포트의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미래 :
음악도시 인천, 심장은 계속 뛴다
인천은 오래전부터 음악으로 숨 쉬어 왔다. 애스컴 시티 미군 클럽에서 울려 퍼진 거친 기타 소리, 부평 라이브클럽을 가득 메운 청춘의 함성, 동인천 록 씬이 지펴 올린 뜨거운 밤의 열기까지.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이 도시는 대한민국 록의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20년 전, 폭우 속에서 시작된 트라이포트의 서사는 펜타포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났다.
2025년 오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여전히 뜨겁게 박동한다. 8월 송도 달빛축제공원,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Asian Kung-Fu Generation이 쏘아 올린 첫 리프에서 펄프Pulp, 벡Beck으로 이어지는 헤드라이너의 무대까지. 60여 팀의 국내외 아티스트가 3일 동안 숨 가쁘게 무대에 오른다.
누군가에게는 생의 가장 빛나던 여름이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다시 돌아온 추억이다. 무대 앞에서 함께 뛰는 얼굴들은 달라졌지만, 그 열기만은 변하지 않았다. 펜타포트는 더 이상 한국의 록 페스티벌에 머물지 않는다. 여름이면 세계가 이 무대를 향해 시선을 모은다.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펜타포트를 ‘시간이 만든 도시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펜타포트는 단순한 음악 축제가 아닙니다. 도시의 얼굴이죠. 20년 동안 쌓인 시간의 힘은 50년, 100년까지도 이어질 겁니다. 음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축적된 기억이 곧 도시의 역사가 됩니다.”
인천의 여름은 끝나지 않는다. 서쪽 바다와 그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년에도 같은 자리를 지킬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이 무대로 돌아올 것이다. 폭우를 견디고, 태양 아래 깨어난 록의 숨결. 그 심장은 앞으로도 이 도시의 여름을, 깊고 뜨겁게 뛰게 할 것이다.
2025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5. 8. 1.(금)~8. 3.(일)
송도 달빛축제공원
국내외 아티스트 60여 팀 메인·서브·서드 스테이지 공연,
F&B존, 개막 퍼포먼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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