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IncheON : 미학도시 인천
빛은 경계를 기억한다
2025 인천국제현대사진기획전
경계를 넘어,
바다와 뭍의 사이間를
품은 도시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김노천 《사이에서(송도신도시)》, 2025
한 사람이 바다에 서 있다.
인천 앞바다, 송도 수평선 너머.
빛과 안개, 물결이 겹치는 순간, 실체인지 환영인지 모호해진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과 도시, 바다와 문명.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스스로의 윤곽을 그린다.
이 도시는 늘 경계에 있었다.
바다와 뭍이 맞닿고,
동양과 서양이 뒤섞이며,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자리.
인천은 그 흔들림 속에서 스스로를 세워왔다.
상처를 딛고 단절을 넘어서.
2025년 인천국제현대사진기획전은
그 ‘사이間’의 빛을 비춘다.
인천의 원형 - 바다가 기억하는 시간

김종호 《귀가》
갯벌 위에 새겨진 발자국
사진은 기억의 표면이다.
그 위로 시간이 내려앉는다.
밀물처럼 스며드는 숨결.
모래 속에 묻힌 이름들.
소달구지가 빙판 위를 지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부들, 줄지어 찍힌 발자국.
그림자가 겨울 갯벌에 길게 드리운다.
송도 갯벌 위엔 도시가 들어섰고,
어민들의 삶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흑백 사진 한 장.
‘이 땅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그가 남긴 것은
살아 있던 사람들의 숨결, 그들이 견딘 시간의 깊이다.

유병용 《바다를 꿈꾸며》
바다를 꿈꾸는 눈빛
비닐 아래 검은 눈동자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숨이 멎은 생들이지만,
그 눈엔 여전히 바다의 염기가 남아 있다.
“바다는 얼마나 깊을까.”
국민학교 5학년, 친구는 그렇게 묻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칠십을 넘긴 지금, 작가는 소주 한 잔 앞에 두고
그날의 바다를 꺼낸다.
침묵은 고요하지 않다.
그 안엔 꿈의 소리와 생의 기억,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바다가 있다.
Special Section | Legend Incheon
인천 현대사진의 뿌리를 기리다
제1회 ‘레전드 인천’ 작가는 유병용. 1980년대 초부터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그는 바다와 삶의 경계, 기억의 흔적을 사진으로 깊이 있게 기록해 왔다. ‘레전드 인천’은 매회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지역 사진예술의 전통과 미래를 잇는다.
세계가 바라본 경계 — ‘사이間’에서 피어나는 사유

Philippe H. Claudel 《Uprooted Self》, 2024
거울 속의 뿌리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물 위에 떠오른 그림자처럼,
자아는 현실보다 먼저 흔들린다.
프랑스 작가 필립 클로델Philippe H. Claudel은
풍경과 신체, 외부와 내부 사이의 경계를 탐구한다.
뒤집힌 연못. 나무로 뒤덮인 얼굴. 뿌리 뽑힌 자아.
정체성은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계절과 기억에 따라 흔들리는 감각이다.

Ralph Tepel 《The Beauty of Winter》 시리즈_0467
겨울의 그림자, 빛의 숨
숲은 고요하다.
서리가 나뭇가지를 감싸고,
빛은 얼어붙은 땅 위로 길게 내려앉는다.
독일 작가 랄프 테펠Ralph Tepel은
빛과 그림자를 사진의 언어로 삼는다.
그에게 겨울 숲은
생명이 멎은 곳이 아니라
존재의 숨결을 간직한 풍경이다.
‘그림자가 이미지를 만든다.’
빛은 드러내고, 그림자는 기억한다.

Lin Blythe 《in-between space 116》
보이지 않는 것을 건네는 손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순간,
존재는 늘 그 경계에 머문다.
영국 작가 린 블라이스Lin Blythe는
일상의 사물과 장면에서
‘사이間’의 공간을 포착한다.
조각상 위를 떠도는 구름, 유리에 겹쳐진 반사,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반영인가.
이미지는 기억의 창이고,
우리가 지나친 것들의 흔적이다.

Thalassini Douma 《UnderwaterCity》
가라앉는 도시, 떠오르는 질문
수면 아래 도시가 있다.
기억일까, 환영일까.
무너지는 건물 위로 구름이 흘러간다.
그리스 작가 탈라시니 두마Thalassini Douma는
베니스의 물 위에서 도시의 경계를 지운다.
기후 위기, 역사, 인간의 욕망.
그 아래 가라앉은 것은
문명의 자화상이자 우리 자신이다.
그에게 물은, 기억의 거울이자 경계의 문턱
사라지는 도시 위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송도 갯벌의 발자국, 바다를 품은 눈동자.
겨울 숲의 침묵, 물속에 잠긴 도시, 유리창 너머의 잔상.….
한국 원로 사진가부터 매그넘 포토스 소속 작가까지,
세계 14개국 50명 작가가 인천이라는 경계에 모였다.
주요 작가
김노천, 유병용, 김종호, 이원철, Philippe H. Claudel(프랑스), Mark Mitchell(영국), Lin Blythe(영국), Thalassini Douma(그리스), Ralph Tepel(독일)
2025 인천국제현대사진기획전(iiCP 2025)
경계를 넘어, 바다와 뭍의 사이(間)를 품은 도시 2025. 11. 7(금) – 11. 12(수) | 인천문화예술회관 대·중앙전시실
14개국 50명 작가 |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인천 첫 전시
개막 11. 8(토) 16:00 | 입장 무료 | iicp.creator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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