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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캠프 마켓

2020-01-03 2020년 1월호


굿모닝, 캠프 마켓
초콜릿색 소스를 듬뿍 얹은 스테이크를 부평 캠프 마켓에서 맛보았던 때는 1990년대 초반이었다. 넓적하고 두툼한 고기의 식감이 감동적이었다. 싱싱한 샐러드와 고소한 수프가 스테이크의 품격을 한껏 높여주었다. 출입 카드를 갖고 있던 지인을 따라 캠프 마켓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끝이었다. 이후 부평과 신포동 번화가에 있던 경양식집 메뉴가 시시해졌던 기억이 새롭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캠프 마켓에 자주 발걸음을 한 건 취재를 위해서였다. 캠프 마켓 1번 출입구(GATE1) 앞에서 정기적으로 ‘미군 부대 반환’ 집회가 열렸다. 시민단체들은 때때로 인간띠잇기, 걷기대회를 병행하며 끈질기게 반환을 촉구했다. 일명 ‘코끼리부대’라고 불린 오키나와(沖繩) 미군 부대에 갔을 때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군 범죄와 환경오염, 재산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평에 미군 부대가 들어서기 시작한 건 1945년부터다. 애스컴시티(ASCOM City). 부평에만 ‘시티’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역할이 다른 여러 부대가 혼재하며 ‘하나의 도시’처럼 기능했기 때문이다. 공병대, 통신대, 항공대, 헌병대, 후송 병원까지 갖춘 대규모 기지가 애스컴시티였다. 121후송병원은 시설이 좋아 우리나라 고위 관료들이 치료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부대 규모가 크다 보니 여기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권투선수 홍수환의 모친은 스넥바를 했고, 부평 출신 뮤지션 정유천의 부친은 빵을 만들었다. 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항공정비사, PX 점원, 구두닦이, 청소부와 같은 군속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인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송도국제경양식은 미군부대 장교 식당 요리사가 1972년 독립해 차린 레스토랑의 후신이기도 하다. 지독히 가난하던 시절, 부평 미군부대가 지역 경제와 생계 유지에 상당한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군을 상대해야 했던 여인들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는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지만.
부평 미군 부대가 케이팝(K-Pop)의 모태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수들이 설 만한 무대나 방송이 열악하던 시절, 벼락 스타를 꿈꾸던 뮤지션들의 소원은 미8군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오디션이 엄격한 미8군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주하기 위해선 피나는 연습을 해야 했다. 키보이스, 신중현, 조용필, 패티김, 소리새와 같은 대중가수들은 그렇게 탄생했고,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삼릉의 줄사택과 신촌, 산곡동 영단주택은 부평 미군 부대의 흔적이기도 하다.
 
‘도시 안의 섬’이었던 부평 캠프 마켓의 반환이 지난해 12월 11일 확정됐다. 반세기 넘게 높은 담벼락과 흉물스럽게 말려 있던 가시 철망이 사라지고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시민들과 함께 지금까지 줄곧 반환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시는 소기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시민 의견을 최우선으로 반영하는 ‘슬로시티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문화 공간을 조성하든, 공원을 가꾸든 시민들과 소통하며 ‘살고 싶은 부평’을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굿바이, 애스컴시티.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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