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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메이커스, 인천 - 한국지엠 사람들

2020-02-28 2020년 3월호

TRAIL BLAZER : 개척자, 선구자

한국 자동차의 개척지에서 새 길을 열다


오늘도 당연하게 쓰이는, 무심코 손에 닿는 물건들. 그 누군가가 일터에 틀어박혀 인생을 내어주고 만들어낸 것들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며 인천, 그리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자랑스러운 메이커스를 만난다. 그 세 번째로 우리나라 자동차가 첫 시동을 건 부평에서, 오늘 네 바퀴로 새로운 길을 달리는 한국지엠을 찾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한국지엠 부평공장 '트레이블레이저'  제작 현장에서.

​직원 한재홍, 김진홍, 정진근, 권오관(왼쪽부터)

 

1986, 아버지의 봄

 

‘5년만 버티다, 내 가게를 내자.’ 길거리에서 쌀장사를 하고 연탄을 팔다 막다른 골목에 섰다. 돈이 필요했던 아버지에게 몸을 쓰는 것 말고 선택의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지엠 신차 팀의 정진근(59) 직장은 1986년 봄, ‘대우자동차에 들어갔다. 기름때를 묻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운이 좋았다. 부평에 있는 자동차 공장에 다닌다고 하면 어디서든 어깨를 으쓱할 수 있었다. 그가 입사하고 두 달 후 그 시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르망이 탄생했다.

97,000. 19864, 그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첫 땀의 대가였다. 그 후로 그는 주말에도 일하고,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를 빼곤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1980년대는 2교대 근무로 근로자들이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8시 반에 퇴근했다. 종일 일하고도 야간 조를 대신해 밤을 새우곤 했다. 내 몸 부리는 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목표했던 5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손에 주어진 게 많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가 둘이나 생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사이 35년이 흘렀다. 내달이면 정년퇴직을 한다.

강산이 세 번 반이나 변했어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혼자 벌어서 아이들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집도 두 채나 샀다. 지금 군에 있는 아들은 대학에서 자동차학과를 나와 그의 뒤를 잇겠다고 스스로 나섰다. 숙명처럼 짊어진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굳이 따르겠다는 아들을 처음엔 말렸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아들의 말에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평생 자동차 만들면서 누나들과 나, 자식 넷을 훌륭히 키우셨잖아요. 저도 잘해낼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힘으로, 네 바퀴를 움직이다

 

인천은 한국 노동자의 힘으로 자동차를 처음 만들어낸 역사적인 도시다. 1930년대 초반, 우리나라 자동차 대부분이 미국에서 인천항을 통해 들어왔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는 일제의 자동차 부품 공장 조선국산자동차가 부평에 세워졌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제대로 뿌리내린 건, ‘자동차 공업 육성정책을 편 1960년대에 이르러서다. ‘한국지엠의 전신인 신진자동차공업1965년 부평에서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첫 시동을 걸었다. 신진자동차공업은 부평에 1652,893(50만 평)의 땅을 사들여 자동차 제조 공장을 세우고,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등의 승용차를 생산했다. 지금의 한국지엠 부평공장이다.

한국지엠의 신차 프로그램 엔지니어링 매니저 김진홍(50) 부장은 2대째 부평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뿌듯하겠다라고 말하니, “힘들어서 그런 마음 들 새가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신진자동차공업시절부터 33년간 한길을 걸었다. 아버지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제조 공장의 규모에 비해 연구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외국 자동차 회사에서 개발한 도면과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방식으로 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자동차를 개발하고 부품을 만들면서 점차 시장은 커져갔다. 그리고 오늘, 한국지엠 부평공장 사람들은 자동차를 가장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건 우리라고 자부한다.

현재 세계 시장에선 같은 브랜드라도 한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선호해요. 고장이 적고 품질이 좋거든요. 이는 한국인의 성실하고 근면한 국민성에서 기인합니다.” 김 부장의 말에 정 직장이 상처투성이 손을 보여준다. 작업용 장갑이 있지만 손이 무뎌진다며, 생살을 찢기면서도 기어이 맨손으로 차가운 쇳덩이를 만져온 그다.

    


선배님들이 하던 걸 제가 물려받아 이만큼 왔잖아요. 후배들도 트레일블레이저 후속으로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도록, 자부심을 갖고 우리 일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 신차 팀 정진근 직장

      

얼마 전에 유럽에 갔다 우리 차를 봤어요. 차가 아주 좋다고 말해서 기뻤습니다. 고객들이 우리가 만든 차에 만족할 때가 가장 보람돼요.”

- 도장 1부 한재홍 차장

      

어느 한 분야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들려면 각각의 역할이 정확히 맞물려야 하지요. 모두의 힘으로 이뤄진 결과예요.”

- 조립 1부 권오관 부장

      

세계 시장에선 같은 브랜드라도 한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선호해요. 고장이 적고 품질이 좋기 때문이지요. 이는 한국인의 성실하고 근면한 국민성에서 기인합니다.”

- 신차 프로그램 엔지니어링 매니저 김진홍 부장

 

    


인천, 부평이 만드는 세계적인 SUV

 

정말 자신 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개발부터 생산까지 한국에서 리드한 세계적인 SUV이다.” 지난 131,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열린 트레일블레이저 양산 기념식에서 카허 카젬Kaher Kazem 한국지엠 사장의 목소리는 힘 있고 당당했다. 한국지엠은 올해 SUV 신차 트레일블레이저Trailblazer’를 출시해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름에 담긴 개척자, 선구자라는 뜻처럼 한국지엠의 브랜드 쉐보레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핵심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디자인 단계부터 개발, 생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도맡아 그 의미가 크다. 내수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 판매 물량까지 부평공장이 온전히 책임진다.

정 직장은 트레일블레이저의 실체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이다. 동료들과 자동차 부품을 하나하나 붙여가며 몇 날 며칠을 꼬박 매달려 1호 차를 만들었다. 도면 속 자동차를 현실에서 자신의 손으로 완성해 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첫 시동이 걸리는 순간, 내 아이가 탄생하는 것처럼 감격스러웠습니다. , 우리가 함께 땀 흘려 해냈구나.”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회사는 굴곡 있는 역사의 시간 속에 이름도, 주인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엔 한 세대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던 시절부터 묵묵히 땀 흘려온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이 거대한 세상을 움직이며,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다.

신차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보통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개발에서 제조까지의 과정에서 투입되는 인력만 1만여 명.

그 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2만여 개의 부품을 맞추고 나서야 비로소

자동차의 시동이 걸린다.

 

   

 

한국지엠의 신차 트레일블레이저.

내수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 판매 물량까지

부평공장이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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