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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의 맛 - 영흥도 포도

2020-09-01 2020년 9월호


포도 익어가는 시절,

영흥도 포도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열두 번째는 햇살과 바닷바람 견디며 알알이 여문 맛, 영흥도 포도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알알이 영그는 희망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 이육사의 시 ‘청포도’ 중에서 그가 기다리던 ‘청포를 입고 찾아온 손님’이 평범해서 소중했던 일상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바이러스로, 익숙하던 삶이 멈춰 섰지만 자연은 철마다 숨 고르기를 하며 유유히 흘러간다.


8월 중순, 장마가 걷히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이맘때면 하루가 다르게 곡식과 과일이 무르익는다. 영흥도의 한 포도 농장. 봉지에 싸여 줄줄이 달린 포도들이 한 뼘의 볕이라도 더 쬐려고 목을 늘여 빼고 있다.
햇살과 빗물은 열매를 자라게 하고 바람은 당도를 끌어올린다. 영흥도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한데다 해풍이 불어 포도가 자라기 적당하다. 재배 면적 47ha(14만2,175평)에 생산량은 약 61만1,350kg. 현재 60여 농가에서 포도를 재배한다.
하나농원의 홍성도(71) 대표는 아내 김금분(70) 씨와 함께 고향 땅에서 20여 년간 포도나무를 가꿔왔다. 군 시절 말고는 섬을 떠난 적이 없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일구는 일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그 옛날 보리가 물결치던 땅은, 오늘 진한 포도 향기로 가득하다.


영흥도 포도밭. 그 옛날 보리가 물결치던 땅은,
오늘 진한 포도 향기로 가득하다.


포도나무를 심다

뱃일을 하고 갯것을 캐던 섬사람들이, 흙을 만지고 포도를 기르기 시작한 떄는 1990년대부터다. 옆 동네 대부도에서 포도로 ‘돈 버는 것’을 보고, 하나둘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마늘, 고추 농사를 짓고 백합을 기르던 부부도 1990년대 중후반 포도 농사에 뛰어들었다. IMF 파고에 휩쓸린 사람들이 꽃을 곁에 둘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폭삭 망했다. 그렇게 하얀 백합이 진 자리에, 희망처럼 포도 열매가 알알이 맺혔다.
처음엔 991m2(300평)짜리 비닐하우스에서 포도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6,611m2(2,000평)에 이르는 농장을 오로지 노부부의 힘으로 꾸려가고 있다. 평생을 밭에서 보내온 베테랑 농사꾼들이지만, 그 삶은 녹록지 않다.
“‘일을 하고 싶으면 포도 농사를 지어라’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도 젊을 때는 겁이 안 났는데, 이젠 힘에 부쳐요. 농사일이란 게 하루만 게을리 해도 바로 티가 나니까.”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포도를 매만져왔다. 행여 농사에 소홀해질까, 간조 때 펼쳐진 바닷가 벌판이 아른거려도 갯일을 나가지 않았다. 눈뜨면 농장으로 향하는 삶이 버거울 때마다, 자식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매일 일복을 뒤집어쓰고 살지만, 다 우리 업이지요. 그래도 아들 하나, 딸 셋 가르치고 잘 키워냈으니 괜찮아요. 대신 자식들이 편하게 살잖아요.”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농사일을 물려주고 싶진 않다.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다.


하나농원의 홍성도 대표와 아내 김금분 씨.
6,611m2(2,000평)에 이르는 농장을 오로지 노부부의 힘으로 꾸리고 있다.

귀한 땀이 결실을 이루면,

​농사꾼의 가슴이 부듯하다.

결실을 기다리며

해마다 포도가 무르익는 사이, 부부의 나이는 어느덧 칠십 고개를 넘었다. 고된 농사일로 손은 거칠어지고, 그을린 얼굴은 나이테 같은 주름으로 뒤덮였다. 오늘 섬의 포도밭을 지키는 건 대부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은 매일 아침 흙을 밟는 대신 발전소로 향한다.
농사꾼들의 젊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자리엔, 여전히 꿈이 영글어간다. 올해는 요즘 인기 있는 포도 품종인 샤인 머스켓을 새로 심었다. 땀 흘린 만큼 탐스럽게 자라는 열매를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부듯하다. 손님들이 포도가 맛있다고 치켜세우면 ‘이 맛에 농사를 짓지’ 싶다.
“이래 봬도 내 손으로 키운 포도가 ‘옹진군 포도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상장 하나 받으려고 ‘군민의 날’ 행사가 열리는 백령도까지 갔는데, 내 농으로 경운기라도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 말은 그리해도, 그 순간만큼은 내 몸 부려 일할 줄밖에 모르던 삶에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햇살과 바닷바람에 맡겨 키우는 섬 포도는 가을에서야 결실을 이룬다. 그날을 기다리며, 부부는 오늘도 자연의 들숨 날숨에 호흡을 맞추며 땀을 흘린다. 서쪽에서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진한 향기를 풍기며 포도가 검붉게 익어가고 있다.


농사꾼들의 젊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자리엔, 여전히 꿈이 영글어간다.
늦여름, 진한 향기를 풍기며 포도가 검붉게 익어가고 있다.

귀한 땀이 결실을 이루면, 농사꾼은 가슴이 부듯하다.


올해 새로 심은 샤인 머스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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