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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의 맛-강화 젓새우

2020-11-02 2020년 11월호

바다에서 보내는 90일

강화 젓새우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열네 번째는 가을 바다에서 섬처럼 머물며 건져 올린 삶의 희망, 젓새우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망망대해에 섬처럼 떠 있는 운반선

‘유신호’의 김칠성 선장


섬 아닌 섬,

새우잡이 배
˙ 벌써 두 달째, 새우잡이 배 선장인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강화 석모도 남서쪽과 장봉도 북서쪽 사이에 있는 ‘만도리 어장’. 새우잡이 배는 한번 뱃일을 나가면 보통 몇 달씩 바다에 머문다. 비바람이 불어도 폭풍 경보가 내리지 않는 한, 포구에 닻을 내리는 법이 결코 없다. 잡은 새우를 뭍으로 나르는 운반선만이 세상과 배를 잇는 유일한 통로다.
“외로운 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뭐 하루 이틀 일인가. 격강천리隔江千里야. 육지가 가까이 있으면 뭐해. 새우 다 잡을 때까지는 그저 바라만 보는 거지.”


김칠성(65) ‘유신호’ 선장은 30여 년 배를 탔다. ‘부모 잘못 만나서’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먹고살기 위해 어부가 됐다지만, 후회는 없다.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선 끝에, 어엿하게 선장 소리 들으며 내 배를 부리고 있지 않는가. 처음엔 남쪽 바다를 누비던 배를 사들여 고쳐 탔다. 배는 오후 9시에 전남 여수에서 출발해, 다음 날 오후 10시가 돼서야 인천 남항으로 들어왔다. 긴 기다림의 시간,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몸뚱이 말고는 가진 것 없이 시작해, 그제야 먹고살 만하게 된 거지.” 검게 그을린 김 선장의 얼굴에 희로애락으로 엮어온 세월이 순간 드리워진다.



강화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젓새우


'꽁당배'로 건져 올린

가을
˙ 한강에서 흘러든 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갯벌이 펼쳐진 강화 바다에는 사시사철 자연의 산물이 모여들었다. 숭어, 농어, 전어, 망둥이, 우럭… 이 모든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젓새우도 넘쳐났다. 고려 시대에 시작한 우리나라 ‘젓새우잡이’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 주요 어업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도 젓새우는 강화도 연간 어획량의 30%에 이른다. 특히 9월에서 11월, 가을에 잡히는 젓새우의 70%가 강화 어장에서 난다. 찬바람 부는 바다에는 강화뿐 아니라 멀리 전남 목포와 신안 등지에서 온 배가 부유하고 있었다.


강화 사람들은 새우잡이 배를 ‘꽁당배’라고 부른다. 배 꽁무니에 쇳대를 이고 그물을 차고 다녀서다. 꽁당배는 하루 네 번 물때가 바뀔 때마다 방향을 반대로 틀어 젓새우를 잡는다. 어획기에 어장 한가운데 닻을 내리고, 몇 달이고 물 위에서 작업을 한다. 
“올해 새우가 잘 나다가, 태풍이 불면서 싹 사라졌어.” 최근 2~3년간 자취를 감췄던 가을 젓새우가 올해는 그야말로 풍년이었다. 하지만 수온이 낮아지면서,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잡히던 젓새우가 9월 초부터 빠르게 나기 시작했다. 배를 얻어 탄 때가 10월 중하순, 새우잡이의 끄트머리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그물을 쏟아내니 젓새우만 있는 게 아니다. 갯가재, 멸치, 게 등 온갖 바다 것들이 함께 걸려들었다. 한창때는 함박눈 온 것처럼 젓새우만 하얗게 쌓인다고 했다. 채로 새우를 일일이 걸러내는 작업이 이어진다. 서너 번 채질을 한 끝에 겨우 20킬로그램 한 박스가 나온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 모두 일곱 박스. “새우말고는 하나도 필요가 없어.” 선원들이 잡어들을 미련 없이 바다로 내던진다.



길게는 8년 배를 탄, 베트남 출신 선원들



뱃일로 마디를 잃은, 김칠성 선장의 손



갑판 위에서 바로 담그는새우젓


저 아름다운,

생존의 장
˙ 젓새우는 갑판 위에서 소금과 섞어 바로 새우젓을 담근다. 조선 시대부터 그리 해왔다. 강화 사람들은 그래서 새우잡이 배를 ‘소금에 절인다’는 의미에서 해선?船이라고도 부른다. 새우젓은 통에서 숙성시켜 외포항 가까이 있는 보관 창고로 보낸다.
“어서 가. 그래야 우리도 일하지.” 투박해도 정 있게 이것저것 일러주었지만, 뱃사람은 육지에서 온 객이 아무래도 마뜩잖다. 가을 새우잡이의 막바지이나 김 선장은 11월 하순 새우가 남쪽 먼바다로 가기 전까지 서쪽 바다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뱃사람들은 ‘복숭아꽃이 피면 봄 젓새우가 잡히기 시작해,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 오젓과 육젓에 쓸 새우가 잡힌다’고들 말한다. 꽃이 피면 어부 아버지는 바다에 머물며, 몇 달이고 거친 파도와 바람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박용오(59) 전 경인북부수협 조합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를 탔다. 스물다섯 살에 선장이 되어, 계절 따라 수심 따라 새우를 찾아 전국 바다를 누볐다. 15년 동안 큰 바다에서 큰 파도 맞으며 물속까지도 꿰뚫는 바다 사나이가 됐다. 그러다 1987년 태풍 ‘셀마’가 불어닥쳤다. 전날까지만 해도 인사를 나누던 동료들이 거짓말처럼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 10여 년, 그는 바다를 곁에 두지 않았다.


저 아름다운 바다는 뱃사람들에겐 눈물겨운 생존의 장이다. 누군가는 먼바다로 떠난 이를, 누군가는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한다. 저 멀리 고깃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 배는 언젠가는 만선으로 출렁이며,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경인북부수협의 ‘새우방’(새우젓 숙성·저장 시설)


​새우를 찾아 큰 바다를 누빈, 박용오 전 경인북부수협 조합장

김장김치 맛, 강화 바다로부터
사시사철 우리 밥상을 책임지는 김장김치 맛은, 강화 바다로부터 시작된다. 김장철을 앞두고, 강화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은 추젓을 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강화 바다에서 잡은 젓새우는 경인북부수협에서 경매를 거쳐 직판장으로 가거나, 새우젓 숙성·저장 시설로 옮긴다. 강화도에서 가을에 잡히는 젓새우는 연간 1,040톤 규모로, 전국 어획량의 70%에 이른다. 올해는 더 풍년이다. 장기윤 경인북부수협 판매사업소장은 “멀리 신안과 목포에서 팔리는 가을 젓새우도 거의 강화도산”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발걸음을 더해 양도면에 있는 ‘6차 산업 우수 농특산물 판매장 영인팜’에 가면, 새우젓과 함께 속노랑고구마, 약쑥, 순무 등 강화 특산물까지 한아름 살 수 있다.
강화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 ⓣ 032-932-9399
경인북부수협 ⓣ 032-933-3401
영농조합법인 영인팜 ⓣ 070-4156-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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