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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푸른 인천-큰 나무

2021-03-30 2021년 4월호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

 ‘나무’

마을 어귀에는 언제나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고, 크고 작은 일들을 지켜본 마을의 큰 어른이었다.
사람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 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나눴고, 나무는 격동의 시대를 묵묵히 함께하며 긴 세월을 버텨왔다. 인천에는 우리가 보호하고 가꾸고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의미 있고 아름다운 옹골찬 큰 나무들이 많다. 최근 장수동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을 의미 삼아 인천의 큰 나무들을 돌아봤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오인영 미추홀구사진인연합 회장
도움 이루다 푸른인천가꾸기운동시민협의회 총괄이사, 숲&인 연구소 대표


부평초등학교 은행나무
계양구 부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자리한 은행나무는 6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평도호부관아의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풍치목으로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시대 배움의 장소에 이어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는 역사의 현장을 모두 한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루다 숲&인 연구소 대표는 “은행나무가 학교 안에 있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 아마 학교 밖에 있었으면 개발의 현장에서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지금도 의미 있는 많은 나무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1호
높이 25m, 둘레 10m, 수령 약 600년
계양구 어사대로 20


장수동 은행나무
노거수 앞에서는 풍요로운 가을의 색깔을 볼 수 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은행나무는 황금색 폭죽을 터뜨린다. 가지마다 무수히 달린 노란색 리본은, 그렇게 결실의 가을을 축하한다. 누군가의 희망을 바라는 일이 있을 때면 간절히 소원을 빌었던 나무는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62호로 지정됐다. 뿌리 부분부터 다섯 개의 굵은 가지가 갈라져 높게 솟아올라 있고, 가지의 끝이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나무는 손상된 가지가 거의 없이 건강하고 단정하며 균형 잡힌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62호
높이 28.2m, 둘레 9.1m, 수령 약 850년
남동구 장수동 63-6


초지진 소나무
1656년 강화유수 홍중보가 초지진을 설치할 때 선비의 기상과 지조를 상징하기 위해 심은 소나무로 추정하고 있다. 초지돈대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 측의 함포 공격으로 일부 파괴되었고, 1875년 운요호 사건 당시 조선 수비병과 일본군 사이의 포격전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소나무에는 격전 중 날아온 포탄 파편으로 인한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소나무는 열강의 침입에 맞서 장렬하게 싸운 선조들의 기상을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오랜 세월 초지돈대를 의연히 지키고 있다.
높이 12m, 둘레 2.8m, 수령 약 350년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볼음도 은행나무
마을을 가로질러 해안에 다다르면 이 섬에 안녕과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풍채 당당한 은행나무가 먼저 반긴다. 850여 년 전 수해가 심할 때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부부나무 중 홍수로 떠내려 온 수나무를 건져 이곳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강화볼음도 은행나무의 부부나무인 ‘북한 연안은행나무’는 북한에서 조선 천연기념물 165호로 지정됐으며, 연안군 호남리 호남중학교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간직한 ‘남북 이산 나무’.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는 양측의 주민들이 서로 연락해 음력 정월 그믐에 맞춰 각각 제를 지내왔으나, 분단 이후 중단 되었다고 한다. 부러진 가지를 불에 태우면 목신이 진노해 재앙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어 오늘날까지 주민 모두가 정성껏 보호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04호
높이 25m, 둘레 9.7m, 수령 약 850년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산186


신현동 회화나무
겹겹이 싸인 야트막한 집들과 골목을 지나 주택가 사이에서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는 회화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며,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꽃이 필 때 위쪽에서 먼저 피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예측했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교목으로 수형과 잎의 모양이 좋아 학자들이 서당이나 서원 등에 즐겨 심어 ‘학자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현동 회화나무는 원래 이 마을의 당산인 도당산에 있다가 큰 홍수로 인해 마을로 떠내려와 지금의 위치에 심어졌다는 이야기와 어느 지역에서 온지는 알 수 없으나 바닷물에 떠내려와 이곳에 심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연기념물 제315호
높이 28m, 둘레 6.5m, 수령 약 500년
서구 신현동 131-7



영흥도 소사나무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 언덕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소사나무 군락지로 350여 그루의 소사나무가 자라고 있다. 선조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방풍림으로 심었던 나무들이 모두 죽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사나무를 구해 구덩이를 파고 심어 정성껏 가꾸었다고 한다. 자갈과 모래로 된 땅, 매서운 해풍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사나무는 긴 세월 꿋꿋이 버텨내 마침내 숲을 이뤘다. 소사나무의 구불구불한 가지에 새겨진 주름만큼이나 바람에 맞서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외침이 아직 맴도는 듯하다.
천연보호림
높이 3.5~5m, 수령 약 150년
옹진군 영흥면 내리산 91



석모도 보문사 향나무
보문사 석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는 금방이라도 머리를 풀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마치 용이 용틀임을 하는 듯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무슨 큰 뜻이라도 품은 듯이 뒤틀린 태가 묵직해 보인다. 6·25전쟁 중에는 죽은 것처럼 보였으나 3년 후에 소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보문사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 앞마당에 있는 느티나무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됐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 ㅣ 둘레 3.2m, 수령 약 700년 ㅣ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1


갑곶리 탱자나무, 사기리 탱자나무
강화도는 고려 고종이 몽골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옮긴 곳이며, 조선 인조도 정묘호란 때 난을 피해 머물던 장소다.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강화도에 성을 쌓았고, 성 바깥쪽에 가시 돋친 탱자나무를 심어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향기로운 탱자나무는 관상수가 아닌, 적병의 발을 노리던 조상들의 슬기로운 무기였던 것이다. 천연기념물인 갑곶리 탱자나무와 사기리 탱자나무는 민족을 수호한 강화의 큰 긍지를 머금고 있다. 강화에는 나무 하나, 돌 하나 역사적 의미가 담기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천연기념물 제78호
높이 4m, 뿌리 부분 둘레 1.5m, 수령 약 400년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16


천연기념물 제79호
높이 3.8m, 둘레 1.2m, 수령 약 400년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1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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