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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소한 인천사-인천 지명인천 지명

2021-06-29 2021년 7월호


미추홀과 인주 그리고 ‘인천’
인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초기 태종 13년(1413)이다. 삼국시대 초기 인천의 이름은 ‘미추홀’이었다. <삼국사기지리지>에는 “매소홀현을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매소홀은 고구려 시대의 인천 이름이다. <고려사지리지>에도 “인주仁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이며,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미추홀의 ‘미’나 매소홀의 ‘매’는 물(水)의 뜻이며 ‘홀’은 성城이나 골로 해석되고 ‘추’나 ‘소’는 모두 사잇소리 ‘ㅅ’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 매소홀이라 불리던 인천은 후기 신라의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소성현’으로 바뀌었다. 경덕왕이 신라의 제도나 관직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한편, 토박이 말로 되어 있는 땅 이름을 모두 그 뜻에 해당하는 한자어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고려 숙종(1095~1105)에 이르러 소성현은 ‘경원군’으로 개칭, 승격됐는데, 이는 인천이 숙종의 어머니 인예仁睿순덕태후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인종(1122~1146) 때에는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의 고향이 됨으로써 ‘인주仁州’로 개칭됐다. 고려 말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인천은 경원부로 개칭, 승격됐는데, 이는 인천이 ‘7대 어향’이었기 때문이다. 7대 어향이란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인천이 왕의 외향이거나 왕비의 고향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 초기 태조 원년(1392)에 인주로 환원되고 태종 13년에 이르러 모든 군이나 현을 ‘주州’로 바꾸는 바람에 인주가 물에 가깝다 하여 ‘인천’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천의 명칭은 한자 풀이식의 ‘어진 내(仁川)’가 아닌, ‘인주 이 씨’에서 유래됐음을 알 수 있다.


‘인주 이 씨의 기원이 되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원인재’

인천 소사
1939.07.01
인천관측소, 기상대로 개칭

중구 전동에 자리 잡은 인천기상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 기상 관측이 이뤄진 곳이다. 1905년부터 1953년까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의 기상 정보를 수신해 그날그날의 기상을 분석, 예고하며 기상 업무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인천기상대는 1939년 7월 1일 조선총독부기상대로 명칭이 바뀌었고, 광복 후 1945년 10월 2일에는 중앙관상대, 1949년 8월 18일에는 국립중앙관상대 등으로 불렸다. 1953년 11월 국립중앙관상대가 서울로 이전함에 따라 인천측후소가 됐으며, 이후 1992년 3월 대전지방기상청 인천기상대로 개칭됐다. 



1929년에서 1935년 사이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 인천관측소


그때, 7월의 인천은…
1879.07.01 인천에 화도진, 부평에 연희진 신설
1885.07.19 제물포교회(현 내리교회), 한국 감리교회 중 최초로 창립
1953.07.25 인천측후소, 기상 관측 및 예보 시작
1981.07.01 인천시, 인천직할시로 승격
1989.07.02 월미도 문화의 거리 개장
1993.07.05 인천도시철도 1호선 기공식 거행
1994.07.06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인천~안산 간 27.6km)
2005.07.11 인천항만공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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