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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소한 인천사-인천 지명

2021-09-01 2021년 9월호

 소소한 인천사
인천 지명


여덟 팔八 자 모양의 섬, 팔미도

1950년 9월 15일, 1903년에 세워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인 팔미도 등대에 불이 켜졌다. 이를 신호로 펼쳐진 인천상륙작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으로 손꼽힌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3.5km 떨어진 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팔미도八尾島는 무의도에 속하는 작은 섬이다. 일반적으로는 사주砂洲로 연결된 두 개의 섬이 마치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하고 있어 팔미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 섬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데,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팔미八未’로, <대동여지도>에는 ‘팔산八山’으로 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그 모양이 팔八 자를 닮아서 생긴 것은 분명한 듯 보이는 대목이다. 동네 사람들의 입을 빌리자면, 팔미도는 본래 우리말로 ‘여달미’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가 팔미도가 된 것으로 확인된다. 여기서 ‘여달’은 여덟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미’는 꼬리(尾)로 받아들일 만한 근거가 없다. 이보다도 ‘미’는 ‘산’을 뜻하는 우리말 ‘뫼’에서 발음이 바뀐 것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는 월미도와 똑같은 경우로, 한자 ‘미尾’는 그 원래 뜻을 잘 모르고 그냥 갖다 붙인 것을 후에 사람들이 다시 살을 붙여 ‘섬의 꼬리 모양이 팔八 자’라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월미도뿐 아니라 실미도 등 주변의 섬들이 대부분 비슷한 경우로 보인다. 한편 해가 질 무렵 이곳 팔미도를 돌아드는 배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워 인천 8경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인천 소사
1960. 09. 06 애관극장 신축 개관

애관극장은 1895년에 탄생한 국내 최초의 실내 극장이다. 처음 이름은 협률사協律舍로, 1902년 문을 연 서울 정동의 협률사協律社보다 7년, 1907년 생긴 종로 단성사보다는 12년이 앞선다. 이후 축항사로 이름을 바꾼 극장은 1921년 지금의 ‘애관’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았다. 인천상륙작전 때 미군의 함포 사격에 소실된 극장이 다시 문을 연 것은 1960년이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애관은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천 시민 곁을 지키며 시민의 극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때, 9월의 인천은…
1899. 09. 18  인천~노량진 간 철도 개통(최초의 철도)
1960. 09. 17  인천역 역사 준공
1973. 09. 24  콜롬비아군 참전기념비 제막
1975. 09. 25  인천버스종합터미널 준공
1978. 09. 09  부평지하상가 준공
1983. 09.01  인천지방법원과 인천지방검찰청 개원
1984. 09. 15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준공
1989. 09. 01  인천직할시 상수도사업본부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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