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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케치에 비친 인천⑨ 송도역전시장

2021-09-01 2021년 9월호


기적 소리 너머,

빛나던 그 시절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협궤 열차 기적 소리 울리던 송도역 ‘반짝시장’의 기억. 전봉선 화백이 그렸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송도시장ㅡ야채 가게 360x510(mm) Watercolor on Arches paper 2020
송도역전시장.

60여 년 전 송도역, 열차 시간에
열린 ‘반짝시장’에서 시작했다.


복숭아 향기

물씬한 송도역

발그스름한 빛깔의 잘 익은 복숭아는 보는 것만으로 침이 고였다. 보송보송한 살갗을 대충 훑어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주룩 흘렀다. “복숭아도 그런 복숭아가 없었어. 지금은 어떤 과일을 사 먹어도 그 맛이 안 나.”
여든을 넘긴 어머니는 1970년대 송도역 ‘반짝시장’에서 물건과 바꿔 사 먹던 복숭아 맛을 잊지 못한다. 반월1리, 2리에서 자라 협궤 열차를 타고 인천으로 온 것이었다. 복숭아가 무르익어가는 이맘때면 장터는 더 왁자했다. “그때가 좋았어. 먹을 것도 맛나고. 그냥저냥 먹고살아도 사람들이 순수했지.”
너도나도 가난하던 시절. 보잘것없는 자리, 변변치 못한 살림에도 마음은 넉넉했다. 1978년 송도역 앞에서 옷 장사를 시작한 이의영(81) 씨는 오늘 송도역전시장에서 아들과 방앗간을 꾸리고 있다. 아들 하나, 딸 둘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평생을 시장통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온 세월. 돌아보면 먼 일처럼 느껴진다. 때론 고단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1937년 8월 6일, 수인선 협궤 열차의 첫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칙칙폭폭 덜컹덜컹… 인천에서 수원까지 1시간 40분, 52km. 철로 폭은 76.2cm로 일반 철로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면 맞은편 사람과 무릎이 닿을 듯 말 듯 했다. ‘꼬마 기차’는 1970년대까지 인천과 경기 남서부를 잇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꾸벅꾸벅 잠을 이기며 일터로 가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인생의 철로 위를 달렸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날것과 손수 키운 농산물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든 농어민과 상인들도 뒤엉켜 달렸다. 열차 안에 비린내가 진동했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1973년 남인천에서 송도 구간이 끊기면서 송도역은 수인선의 종착역이 됐다. 고른 한낮이면, 더 갈 곳 없는 열차가 인천 각지와 경기 남서쪽에서 온 사람들을 풀어놓았다. 오후 6시 기적 소리가 다시 울리기까지, 역 앞 공터에는 쌀, 생선, 과일, 야채, 생필품을 파는 좌판이 줄지어 섰다. 1960, 1970년대 ‘반짝시장’, 송도역전시장의 시작이다.


오후 6시 기적 소리가 다시 울리기까지,
역 앞 공터에는 쌀, 생선, 과일, 야채, 생필품을 파는 좌판이 줄지어 섰다.
1960, 1970년대 ‘반짝시장’, 송도역전시장의 시작이다.


오늘, 옛 송도역. 덤불에 가려진 ‘송도’ 두 글자


​1988년 옛 송도역.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보따리를 인 채 역사로 가고 있다.



송도시장ㅡ방아간 260x360(mm) Watercolor on Arches paper 2021
오늘, 오래된 방앗간엔 정적이 흐른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동네 방앗간에서 들리던 방아 찧는 소리가 그립다.




어머니와 아들의

오래된 방앗간

이정호(58) 씨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역 앞에서 옷을 팔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들 농사지으며 겨우 먹고살던 시절이었다. 장사하는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 바쁠 때면 남대문 시장까지 가 ‘쌍방울 메리야스’며 양말을 떼어와 일손을 도왔다. 옷 장사가 잘되니 하나둘 따라 파는 좌판이 생겨났다. 1984년에 방앗간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손끝이 야무진 어머니는 전 주인에게서 금방 기술을 익혔다. “어릴 적에 흙으로 떡 빚고 고물 묻히며 놀았는데. 재간이 있었는가 봐.”


이 일대에 시장이라곤 송도역전시장뿐이었다. 사람들로 늘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다 1995년 12월 31일, 수인선이 끊겼다. 이듬해 가까이에 옥련시장이 문을 열었다. 대형 마트가 하나둘 생겨났다. 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졌다. 이 씨는 2001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의 방앗간을 이어받았다. 15년 전만 해도 장사가 잘됐다. 한창 고추를 말리는 여름 막바지면 일주일에 두 번 충남 청양으로 가 화물차로 물건을 가득 싣고 왔다. 이 작은 방앗간에서 추석 즈음이면 고추 만 근(6,000kg)을 빻아냈다. 지금은 약 삼분의 일로, 일이 확 줄었다. 그래도 오랜 단골들이 여전히 이 집을 드나든다. 긴 세월로 엮인 정도 있지만, 어머니를 믿어서다. “난 거짓말은 딱 질색인 사람이야. 장사할 때는 솔직해야 해. 진실이 최고야.”


“고춧가루 만들게요? 어디 보자. 잘 말리셨네.” 오늘은 빨갛게 익은 고추가 꽤 들어왔다. 어머니와 아들이 손에 결은 익숙한 솜씨로 고추를 빻는다. 쿵더쿵쿵더쿵 방아 찧는 소리와 눈물 쏙 빼는 매운 냄새가 방앗간을 가득 메운다.
세상엔 시간이 흐를수록 향기로운 것들이 있다. 집집마다 익어가는 김치와 고추장도 푹 삭힐수록 감칠맛이 난다. 반짝시장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지금, 시장 한편 낡은 방앗간을 흔들림 없이 지켜온 어머니와 아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




세상엔 시간이 흐를수록 향기로운 것들이 있다.
반짝시장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지금,
시장 한편 낡은 방앗간을 흔들림 없이 지켜온
어머니와 아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


반짝시장 때부터 송도역전시장을 지켜온 어머니 이의영(오른쪽) 씨와
시장통에서 자라나 줄곧 머무는 아들 이정호 씨.
모교인 송도초등학교 담 너머를 벗어나질 못한다며 그가 웃는다.




송도시장ㅡ주막집 260x360(mm) Watercolor on Arches paper 2021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꾸며진 ‘달콤 광장’.
오래된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은 분다.



옛 시장에

서점 하나

오래된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은 분다. 까만 ‘봉다리’를 든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로 사진기를 든 젊은이들이 지나간다. 연수문화재단이 꽃피운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입소문을 타면서 생긴 변화다. 시장 입구에 반짝이는 금속 나무 ‘두 개의 숲’, 알록달록 물감으로 물든 ‘달콤 광장’, 벽면을 앨범 삼아 펼쳐진 흑백사진들. 보물찾기하듯 뷰파인더 너머로 시장 곳곳의 미술 작품을 본다. 자그마치 60여 년의 역사다. 그 사이 옛 시간의 증거들을 발견하며 발걸음은 점점 느려져 간다. 


‘수봉서재’. 시장 한복판, 반듯하게 이름이 걸린 공간에 시선이 간다. 발길이 머문다. 책방지기 고현주(51) 씨는 오래된 것의 힘에 이끌려 시장으로 왔다. 일 년 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덜컥 서점을 냈다. 31년 차 공무원이었다. ‘일’은 할 만큼 했으니, 남은 인생은 꿈을 이루며 살고 싶었다. “책은 누군가에겐 보물이고, 어떤 이에겐 한낱 폐지에 불과해요.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책의 가치를 알고, 더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더욱이 바이러스로 일상이 흔들리던 때 낯선 세상에 뛰어들지 않았던가. 허나 스스로만 단단하면 된다고 그는 믿는다.
책은 생각보다 잘 팔려 나간다. 서점 밖 좌판에 깔린 천 원짜리 헌책일지라도 말이다. 앞집 건어물 가게 사장님, 건너편 이층집 아주머니가 단골이다. 언젠간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불쑥 찾아와 심훈의 <상록수>가 있느냐 물었다. ‘아, 우리 책방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감성을 흔들어 깨우는구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시장 바닥에 틀어박혀 삶의 대부분을 보내온 사람들. 그저 열심히 일할 줄밖에 모르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여유는 게으름이고 사치다. 지문의 때가 스민 낡은 책이, 그들 삶에 작은 위로를 건넨다.


시장 바닥에 틀어박혀 삶의 대부분을 보내온 사람들.
지문의 때가 스민 낡은 책이, 그들 삶에 작은 위로를 건넨다.



시장 한복판의 책방. 창 너머로 책방지기가 보인다.
그는 ‘책이 좋아서’ 공직 생활을 그만두고, 시장에 책방을 냈다.
틈틈이 글 쓰고 책도 세 권이나 낸 작가다.

책 속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삶의 흔적.
헌책이 선사하는 기쁨이다.


최정학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옛 송도역사 앞에서


내일로 달리는

열차

시장에서 길을 건너면 옛 송도역이다. 연수문화원 초대 원장을 지낸 최정학(57)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과 역사의 시간 속으로 간다. 공사를 하느라 두른 울타리 너머엔 세상과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덤불과 마른 푸서리로 뒤덮인 돌계단. 그 위로 오래전 제 기능을 잃은 역사가 옛 흔적을 붙잡고 있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콘크리트 건물. 외벽엔 ‘송도’ 두 글자가 아직 새겨 있다. 수없이 페인트를 덧칠하고, 덤불이 자라나 가려도 지워지지 않은 이름이다. 가까이엔 수풀에 둘러싸인 급수탑이 있다. 여기서 증기 기관차가 목을 축이고 지친 몸을 추스르며 달릴 채비를 했다.


옛 송도역은 묵은 먼지를 털고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연수구가 2023년까지 역사를 복원하고 이 일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최 위원은 버려지다시피 한 옛 송도역을 오래도록 지켜봐 왔다. 거대한 역사歷史를 품은 역사驛舍가 마침내 본연의 가치를 찾게 되어 가슴 저릿하다.
“많은 이들의 삶에 깃든 추억과 역사의 단면이, 옛 송도역에 담겨 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인천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여행의 거점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마침 전동차가 바로 옆 철로를 지난다. 굴곡의 역사를 달려 만난 옛 수인선 종착역. 머지않아 힘찬 기적 소리가 긴 시간의 정적을 깨울 것이다. 끝에서 다시 시작, 먼 길을 달려온 열차가 새로이 길을 나선다.



그림 전봉선
30여 년 사생 작가로 활동해 왔다. 최근엔 인천 골목을 다니며 추억이 깃든 삶의 이야기를 그리는 데 푹 빠져 있다. 국제아트페어 350회 출품, 전국공모대전심사 경력. 현재 인천미협수채화 분과장이다. 저서로 <스케치로 떠나는 여행>이 있으며, 매달 야외 스케치 정모를 통해 예술의 향기를 퍼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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