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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케치에 비친 인천 ⑱ 서해 접경지대 강화도 북단

2022-05-31 2022년 6월호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 풍경은 다가오고 다가가는 평화의 땅, 서해 접경지대 강화도 북단을 김푸르나 작가가 담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전재천 포토  디렉터


 

서늘한 가을이 오자 거칠게 내리는 물결, 2020, 종이에 아크릴 채색 후 디지털 콜라주, 가변 크기

건네주었다, 2020, 종이에 아크릴 채색 후 디지털 콜라주, 가변 크기

북과 남을 오가는 배가 자유로이 드나들던, 지금은 사라진 옛 포구와 여전히 경계 없이
살아가는 생명의 ‘공존’


아,

그리운 가족
카메라 앞에 선 그는 혼자다. 하지만 사진 속 그는 가족과 함께다. 1950년 6월25일, 그날 이후 생이별하고 만나지 못한 큰형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헤어질 당시 스무살이었던 막둥이의 말갛던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파였다. 여섯 형제에게 큰 산과 같던 맏형은 작고 연약해졌다. 세월의 흔적이 더 깊숙이 새겨졌다.


곽육규(91) 할아버지는 7년 전, 사진으로 가족을 만났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북에 있는 가족을 합성사진으로 담아낸 ‘마지막 소원’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사진을 붙잡고 한참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몸은 너무 늙어버렸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서흥군 신막읍이다. 꼭 3일만 떠나 있다 돌아가려고 했다. 하나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인천에서 부산까지, 낯선 남쪽 땅으로 떠밀려 갔다. 그게 끝이었다. 세월은 흘러 흘러 강산이 일곱 번 변했다.
“내 살던 고향이 보일까 해서 왔는데, 보이지 않아. 허허.” 고향 땅과 가족이 그리워,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우리나라 북쪽 끝 강화평화전망대에 왔다. 눈으로도 고향에 닿을 수 없는 현실을, 사실 알고 있다. 단 1.8km의 바다를 사이에 둔 아픈 역사의 간극. 생과 사, 이념의 경계로 하늘도 땅도 바다도 두 동강이 났다. 망원경 안으로 들어오는 북녘땅이 가깝고도 멀기만 하다.


7년 전, 사진으로 가족을 만났다.
북에 있는 가족을 합성사진으로 담아낸
‘마지막 소원’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큰 산 같았으나 작고 연약해졌을, 어쩌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큰형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와 강화평화전망대를 찾은 곽육규(91) 할아버지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땅





낯선 바다,

다가오다
강화도 북단 연안. 시각예술가 김푸르나(35)에게 이곳은 낯선 바다다. 인천의 섬과 바다는 그의 유년 시절을 지배했다. 덕적도 소나무 숲 사이로 살차게 쏟아지던 별빛과 흙탕물을 가득 머금은 송도유원지 앞바다로 첨벙첨벙 뛰어들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이념의 파도가 시퍼렇게 달려드는 북쪽 바다는 그 안에 없었다.


하늘빛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햇살이 노을 지며 수평선으로 스며든다. 이내 해와 바다는 하나가 된다. 그 사이엔 북과 남을 오가는 배가 자유로이 드나들던, 지금은 사라진 옛 포구와 여전히 경계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공존’한다. 2년 전 우리 시가 기획하고 인천문화재단이 제작한 ‘평화도시 인천 스토리텔링’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는 비로소 강화도 북쪽 바닷가, 자유로웠으나 끊겨버린 물길에 시선을 던졌다.


만날 듯 만나지 못하다, 잠시 맞닿았다 이내 멀어져 가고, 또다시 만나려 하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작품 속 ‘두 손’. 잃어버린 시간, 다시 찾을 평화. 가슴 깊이 간직해 온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이 아픈 마음을 어루만진다.



​​

상실-흔적-상실, 2020, 종이에 아크릴 채색 후 디지털 콜라주, 가변 크기


강화평화전망대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곁에서, 김푸르나 작가




떠나지 않는

이유
남과 북, 바다와 강이 하나로 만난다. 강화읍 월곶리 연안,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임진강과 한강이 한데 어우러져 다시 서해와 염하鹽河로 흘러 들어간다. 그 옛날엔 자연의 산물과 사람이 사시사철 모여들었다.


“연백에서 온 배가 이 바다를 거쳐 서울로 갔다고 해. 큰 배들이 선창에 닻을 내리고, 까나리를 잡는 작은 배들도 많았다지. 보따리장수며 상인도 포구에 바글바글하고.” 월곶리 토박이 김승태(62) 씨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다. 하나 한국전쟁 이후 1953년 정전협정을 하면서 땅에도 바다에도 철책이 둘러쳐졌다. 마을에 진동하던 생선 비린내가 지워졌다.


오늘, 바다를 잃은 민통선 마을에도 삶은 계속된다. ‘고사리손이라도 빌릴’ 만큼 바쁜 농번기. 김 씨가 이웃 마을에 사는 아우 정희경(60) 씨와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본답으로 옮겨 심느라 분주하다. 밥벌이를 위해 버스 운전대를 잡고는 있지만 땅을 밟아야 생기가 돈다. 정 씨도 고향에서 땀 흘린 만큼 거두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다. “떠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우문에 “다른 데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라는 현답이 돌아온다.



긴장이 흐르는 민통선 마을.
누군가에겐 고향 땅이고, ‘우리 동네’다.
“떠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우문에
“다른 데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라는 현답이 돌아온다.

월곶리 사람들은 예부터 농사일을 서로 도왔다.
못자리에서 모를 옮기는 김승태 씨와 그를 돕는 이웃 마을 아우 정희경 씨.



월곶리 민통선 마을, 고향에서의 삶이 행복한 정희경 씨

이것이 결국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2020, 종이에 아크릴 채색 후 디지털 콜라주, 가변 크기
만날 듯 만나지 못하다, 이내 멀어져 가고, 또다시 만나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두 손’



나로부터,

평화
연미정燕尾亭에 오르면 황해도 개풍군을 앞에 둔 바다가 펼쳐진다. 그 옛날 남과 북에서 모여든 고기잡이배들이 깃발을 펄럭이며 만선으로 출렁거렸을 그 바다다. 오늘, 욕심도 이념도 부질없다는 듯 푸른 물결만이 넘실거린다.


강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 유명상(38) 씨는 그 바다에서 평화를 본다. 남과 북을 나누고 분단의 아픔을 떠올리는 건 아니다. “긴장이 넘치는 ‘외치는 평화’가 아닌, 나와 가족, 친구, 자연을 감각하는 안으로부터의 평화를 찾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달부터 강화군과 함께 ‘늘(NLL) 평화의 철책 길 아트투어’를 연다. 강화전쟁박물관,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연미정, 고려천도공원, 남북 1.8평화센터, 강화평화전망대를 철책 길 따라 걷고 공연과 연극도 펼친다. 예술가와 지역 주민이 어우러져 평화의 길을 밟는 여정이다.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가시 돋친 철책 너머 태극기로 시선이 닿는다.


고진현(29) 씨는 이제 1년, 강화도에 뿌리내린 뮤지션이다. 도시의 소음이 아닌 새소리를 들으며 매일 아침 눈 뜨는 삶 속에서, ‘평화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철책 길 투어에서 그는 연미정에 올라 평화의 소리를 세상에 퍼트린다. “우리는 너무 쉽게 편을 가르고, 서로를 판단하고 미워해요. 제 노래 중에 ‘잠깐 머물다 갑니다’라는 곡이 있어요. 우리는 다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가지요. 그날까지 서로 보듬고 안아주며, 행복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내 안으로 다가오고 세상으로 다가가는 평화, 그는 오늘도 한숨만큼의 위로와 사랑을 담아 노래를 부른다.

※ ‘늘(NLL) 평화의 철책 길 아트투어’ playpeace.net - 6월 11일~11월 27일


연미정에서 고진현과 유명상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철책 길을 걷는 두 사람




그림 김푸르나
지역을 기반으로 몸, 환경, 생태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조합해 이미지로 재탄생시키는 시각예술가다. 이미지 작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하고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 시각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특화거리 ‘점점점’ 사업으로 실험예술공간 ‘아트랩999’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천시·인천문화재단과 함께 평화를 주제로 교동도에 만드는 난정평화교육원의 전시장(생태관)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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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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