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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⑳ 인천창영초등학교 舊 교사

2022-08-01 2022년 8월호


문화재관으로 꽃핀 100년의 교사校舍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인천창영초 舊 교사는 1924년 지은 건물로 현재는 ‘창영문화재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깡!” “깡!” 지난 7월 18일 오후, 인천창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코치가 던져주는 볼을 빈틈없이 받아치는 타자의 방망이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103년 전인 1919년 3월, 인천창영초 운동장에선 야구공 치는 소리가 아닌 “대한 독립 만세!”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이 3월 6일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교문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학생들은 3월 8일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며 만세 운동을 이어갔다. 
인천창영초는 1907년 ‘인천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다. 
교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길게 누워 있는 고색창연한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24년 지은 ‘구舊 교사’(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다. 아치형 벽체와 무지개 모양으로 꾸민 현관이 고풍스럽게 보인다. 좌우 대칭면에 넓은 창을 규칙적으로 배열하고 직선을 강조한 모습이다. 복도를 길게 ㅡ자 형태로 만들고 커다란 창문을 뚫은 건 조선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한다. 지붕에는 그 아래쪽 방을 밝게 하기 위해 지붕창을 만들었으며 현관, 복도, 기둥 등 건물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 건물은 현재 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소중한 자료와 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창영문화재관’으로 쓰고 있다.


인천창영초 야구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학교로 오르는 길에 ‘인천의 3·1운동 발상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건립 역사가 98년 된 인천창영초 舊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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