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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의 아침 -칼럼

2022-08-30 2022년 9월호

대불호텔과 인천 
숙박시설의 변천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2022년 8월 대불호텔


백령도 A펜션은 시설도, 건축디자인도 매력 만점이었다. 뽀송뽀송한 이불과 흰색 톤의 샤워 시설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아늑함이 느껴지는 2층 다락방과 펜션 앞마당 고기를 구워 먹는 야외 시설도 여행 분위기를 한껏 달궈주었다. 현지인은 백령도 펜션을 찾는 사람이 많아 평일에도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해줬다. 
백령도뿐이 아니다. 옹진군, 중구의 섬들과 강화도엔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펜션(실제 영상에 등장한 펜션도 많다) 과 최신 시설을 갖춘 캠핑장, 글램핑장이 즐비하고 송도 국제도시, 영종하늘도시엔 여러 형태의 특급 호텔이 불야성을 이룬다. 과거 숙박시설의 기능이 말 그대로 잠을 자기 위한 장소였다면 지금은 레저와 힐링, 가족 단위 여행객의 놀이 장소로 각광을 받는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숙박시설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천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숙박시설은 우역郵驛으로 알려졌다. 신라 시대 관리들이 묵던 곳이었다. 고려 시대엔 역참驛站이 조선 시대엔 관館, 원院이란 숙소가 있었다. 공문서 전달, 공 물 수송과 같은 공무를 보는 관리들이 이용하던 거처였다. 외국 사신들도 관에 머물렀다. 태평관太平館과 모화관慕華館은 명나라 사신이, 북평관北平館은 여진족이 애용했으며, 동평관東平館과 왜관倭館은 일본 사신들이 묵어가던 숙소다. 국내 서민 여행자들을 위한 봉놋방, 즉 주막(店)은 식당과 주점, 잠자리 기능을 겸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여관이었다. 
상업이 발달한 조선 후기엔 객주客主와 여각旅閣 같은 새로운 형태의 여관이 생겼는데 육지 상인들은 객주를, 연안 포구로 모여든 상인들은 여각을 각각 드나들었다. 인천에 획기적이고 현대적인 숙박시설이 들어선 시기는 1883년 개항 이후다. 개항과 함께 외국인들이 밀려오면서 이들의 입맛에 맞는 숙박시설의 필요성을 간파한 일본 무역상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1898)는 18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大佛호텔(다이부츠호텔)’을 2층 목조건물로 세운다. 각국 조계가 설치되고 인천항을 오가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1888년 목조건물 옆엔 벽돌조의 서양식 3층 건물이 들어선다. 
그런 대불호텔이 쇠락하기 시작한 때는 1899년부터다. 대불호텔에 머물던 사람들 가운데는 인천항으로 들어와 서울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하면서 12시간씩 걸리던 인천~서울 이동 시간이 크게 단축돼 더 이상 인천에 머물 필요가 없게 되자 곧장 서울을 오가기 시작한 것이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해 문을 닫은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 요리점 ‘중화루’로 변신한 뒤 청관의 대표 요릿집으로 성장한다. 1960년대까지 제2의 번성기를 누리던 이 식당도 1978년 철거된다. 2018 년 이 자리엔 호텔 건물을 재현한 ‘대불호텔전시관’이 건축돼 여행가들을 맞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야외 활동하기에 좋은 가을은 누가 뭐래도 캠핑, 호캉스의 계절이다. 올가을은 가족과 함께 인천의 펜션, 캠핑장, 호텔을 찾아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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