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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간 잘 지내셨나요? -국민가수 백영규

2022-10-04 2022년 10월호


‘잊지는 말아야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 저널리스트

지난 9월 6일 오전 10시 TBN 경인교통방송 스튜디오. ‘MCR ON-AIR’란 생방송 표시등이 켜진 스튜디오 안에 잘생긴 중년 남자가 앉아 있다. 흰색 라운드 티셔츠와 벽돌색 재킷이 퍼머넌트 웨이브의 헤어스타일과 잘 어울렸다.
“아, 남편분과 고구마 순을 따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저도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그 풍경이 눈에 선하네요. ○○○ 님의 신청곡 보내드립니다.”
감미로운 기타 선율과 함께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가 흘러나온다. 이어진 음악은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가을 향기 은은한 음악 사이사이로 편안하고 안정된 음성이 간간이 이어진
다. 남자의 시선이 스튜디오 창밖 하늘을 향해 있다.
“어제 비가 많이 왔을 때는 걱정이 컸는데 지금 인천의 하늘을 보니 태풍이 무사히 지나간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악보라도 그리는 것일까. 음악이 나올 때마다 펜을 쥔 그의 손놀림이 부지런하다. 청취자 사연과 신청곡을 정리하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는 것이다. 
오전 11시. 방송을 마친 그가 스튜디오 밖으로 나왔다. 그의 음악만큼이나 분위기 있는 미소가 얼굴에 감돌았다. 국민가수 백영규 (70). 그는 오전 9시~11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스튜디오 1005’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닌 잘 만든 예술 공연처럼 제작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합니다. 엄윤화 피디, 최새봄 작가, 강병규 엔지니어가 많이 도와줘서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그는 굳이, 함께 일하는 스태프의 이름을 언급했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의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국민가수 백영규는 “인천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삶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가 진행하는 TBN 경인교통방송 ‘스튜디오 1005’ 방송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튜디오 1005’ 생방송 중인 백영규


친구들과 어울려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야구 하며

지낸 청소년기의 추억


‘시냇물 흘러 흘러 내 곁을 스치네~ / 물가에 마주 앉아  사랑을 그리며 / 속삭였네 우리 꿈을~’ 백영규의 데뷔곡 ‘순이생각’은 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양평의 정서를 그린 곡이다. ‘물레방아’란 혼성 듀엣을 결성해 발 표한 이 노래는 1977년 ‘10만 장 앨범 판매’ 기록을 세운다. 당시로선 빅히트였다. 이춘근의 구성진 창법과 우수 에 흠뻑 젖은 백영규의 음색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대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양평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은 ‘인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성장기를 인천에서 보내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경찰이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평경찰서로 전근을 오셨어요. 그때 가족이 모두 인천으로 이사를 왔지요.”
부평서초등학교로 전학 온 시골 소년 백영규는 동산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점점 인천 사람이 돼간다. 틈만 나면 야구 글러브를 끼었고 자유공원을 올랐으며, 취미가 같은 동아리 친구들과 ‘공보관’에서 열리는 시화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제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를 나왔는데 외대 야구 대표 선수로 나갈 정도로 야구를 잘했어요.” 까까머리 교복 세대인 그는 야구는 물론 팝송을 즐겨 들었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시간을 즐겼다. “저 자랄 때는 기타 못 치면 간첩이었어요.” 학교에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성품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누구보다 좋아한 그였다. 
“‘사랑이여’란 노래를 부른 유심초 아시죠? 유심초는 부평시장 방앗간집 셋째, 넷째 아들이었는데 그중 형인 시형이가 제 친구였어요. 같이 외대를 다녔고, 같은 동네에 사니까 막걸리 마시며 노래를 부르곤 했지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노래 부르고 음악 듣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음악의 신’이 찾아 든 시기는 군대를 제대하고 3학년 2학기에 복학했을 때다.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분주한데 저는 신들린 사람처럼 음악이 너무도 하고 싶은 겁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할 순간, 음악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때마침 떠오르는 여인이 있었으니, 인일여고 출신으로 숙명여대 스타였던 이춘근이었다. 


백영규는 1970~1990년대 싱어송라이터이자 음반 제작자로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백영규가 카페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군대에서 만든 ‘순이생각’ 
혼성 듀엣 ‘물레방아’로 데뷔하며 큰 인기


군대 말년에 기타 줄을 하나하나 뜯어가며 만든 곡 ‘순이생각’을 들고 이춘근을 찾아갔다. 직장 생활을 하던 이춘근을 설득해 오랜 연습 뒤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수소문 끝에 화양리까지 찾아가 만난 ‘아세아레코드’ 박경춘 상무는 처음 장발의 백영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이프를 틀어본 박 상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번 해봅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1977년 이춘근과 ‘물레방아’란 듀엣을 결성한 백영규는 ‘순이생각’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다. 그러나 ‘물레방아’는 1년도 안 돼 해체하고 솔로로 전향한다. 이때 발표한 곡이 ‘잊지는 말아야지’이다. 
“심진구란 친구와 함께 놀다 만든 노랫말에 제가 직관적으로 짧은 시간에 곡을 붙였는데 이게 또 크게 뜬 겁니다.”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를 치면서 백영규의 자신감은 한없이 커져간다. “쉽게 말하면 저는 무명시절도 없이 꽃길만 걸었던 겁니다. 정말 운이 좋았죠.”
1980년 발표한 솔로 2집 ‘슬픈 계절에 만나요’는 100만 장이 팔리고 영화 촬영 요청까지 들어올 정도로 ‘대박’을 낸다.
“당시 장미희 씨와 상대역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이따금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좋았겠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장미희 씨가 좋지 내가 왜 좋냐고, 하하.” 그의 말인즉슨 그때는 자신이 장미희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는 거다.


백영규가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듣고 있다.


1970, 1980년대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 
1990년대 음반제작자까지 음악계 팔방미인 활동 


자신감으로 충만한 백영규는 음반 제작업에까지 뛰어든다. ‘소리창조’라는 음반 회사를 차린 그는 박정수의 히트곡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을 작곡해 발표하는 등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어나간다. 
“돈을 벌려면 밤업소를 뛰어야 하는데, 그건 싫고 먹고는 살아야 하고 그래서 시작한 게 음반제작이었습니다. 제 음악도 마음대로 발표할 수 있고 해서 시작한 건데 그때 정말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어느 날 그는 나주의 산골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기도 했지만 미사리의 초청을 받으며 산에서 내려온다. 
“미사리의 카페에서 밤무대인 업소 생활을 안 한 가수를 찾았는데 저 말고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던 거죠.”
백영규는 이때 긴 인생길을 가려면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해선 안 된다’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많은 가수의 주 수입원인 밤무대에 절대 나가지 않았던 그의 성향이 결국 나중에 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미사리에서 잠시 머물던 백영규는 다시 인천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작품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때가 2000년이었다. “연수구 동춘동에서 라이브 카페 ‘백영규의 라디오 시대’를 열어 7, 8년 정도 운영했어요. 많은 동료, 선후배 가수가 무대에 섰지요.”
그의 카페엔 7080 가수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금요음악회’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금요음악회는 인천에서의 하우스 콘서트 문화 확산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 
그런 그에게 경인방송이 2007년 러브콜을 보내며 그는 13년간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후 작품에 몰두하기 위해 방송을 접고 영종도로 이사했는데 이번엔 TBN 경인교통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지금 오전엔 라디오 방송을, 오후엔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에만 ‘서울 무정의 술 한 잔’, ‘변해가네’, ‘천사’, ‘추억의 신포동’, ‘성냥공장 아가씨’ 등을 발표했으며, 20여 곡의 미발표곡이 세상에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한국음 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그의 음악은 240여 곡에 이른다. 


‘스튜디오 1005’ 방송 대본


‘백다방TV’ 유튜브 중심으로 전통시장 버스킹 
라디오 방송 병행하며 작품 계속 써 


방송을 쉬는 기간에도 백영규는 ‘백영규의 백다방TV’란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꾸준히 팬들과 만나왔다. 처음 토크쇼와 포크송 위주의 실내 라이브 공연으로 시작한 ‘백다방TV’는 2019년 문학경기장 ‘문학씨어터’에서 인터넷 TV 공개 방송 오픈 스튜디오 형태로 출발했다. 이후 지 난 7월 1일엔 시민 문화예술 축제로 치러진 민선 8기 유 정복 인천시장 취임식 공연을 비롯해 다채로운 공연을 생중계하며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상태다.
지금은 전통시장 등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는 버스킹으로 확장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전통시장 공연은 인천시민들을 위한 것이면서 제 음악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천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백영규는 앞으로 인천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많이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인천은 제게 운명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저와 찰떡궁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활기가 넘쳐나는 이 도시와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누군가는 곁에서 많이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남자. 욕심이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베푸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인향만리人香萬里. 백영규에게선 ‘만리를 간다’는 따뜻한 ‘사람의 향기’가 났다.



“인천은 제게 운명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저와 찰떡궁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활기가 넘쳐나는 이 도시와 인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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