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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의 아침 - 인천 하늘에 비행기 100주년

2022-12-01 2022년 12월호

인천 하늘에 비행기 100주년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 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민요조 가락의 이 구전가요를 부르던 때는 초등학생 시절인 1970년대였던 것 같다. 반 친구 중 누군가 시작한 것 같은데 아이들은 너도나도 한동안 이 노래를 읊조리고 다녔다. 안창남(1901~1930)과 엄복동(1892~1951)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민족적 자존감을 높여준 영웅이었다. 안창남은 하늘의 영웅이었고, 엄복동은 대지의 영웅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인천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1922년 12월 13일 오후 4시43분 인천 상공에 비행기가 나타났고, 난생처음 비행기를 본 사람들은 환호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타고 온 비행기였다. 앞서 오후 4시 23분쯤 인천행 비행에 나선 안창남은 20분 만에 인천 상공에 도착해 저공비행을 하며 ‘공중에서 인천시민에게 고한다’고 쓴 오색 선전지 수천 장을 뿌렸다.
비행사가 되기 위해 휘문고보를 중퇴한 뒤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간 안창남은 1921년 비행사 시험에 1등으로 합격한다. 이듬해인 1922년 그의 노고를 기리고자 ‘안창남군 고국 방문 후원회’가 비행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그해 12월 2일 안창남은 요코하마(横浜)에서 보낸 비행기 ‘금강호’가 인천항에 도착하자 이를 여의도 항공대로 옮겨 며칠 동안 조립을 한다. 그렇게 12월 8일 서울 시범 비행을 마친 안창남은 9일 인천 방문 계획을 발표한다. 경인선 임시 열차가 증설되고, 기차 요금 할인 같은 이벤트로 분위기는 고조되어 갔다. 인천 사람들은 웃터골운동장에 모여 폭죽까지 터뜨리며 환영할 준비를 했으나 바람이 강해 10일 예정이던 비행은 중단된다.
사흘 뒤인 13일 오후 다시 인천 하늘 비행에 나선 안창남은 인천 상공을 유유히 돌며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친다. 1923년 1월 <개벽>지 31호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이란 글을 통해 안창남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오~ 인천! 비행기 위에서 혼자 소리치면서 나는 그야말로 뛰는 중에도 뛰어갈 듯 달려갔습니다 … 거기서는 더할 수 없이 얕게 떠서 저공(200m) 비행으로 인천의 시가를 바위 위까지 두 번 휘돌았습니다 … 길거리에서 모여 서서 비행기를
쳐다보고 손뼉을 치는 모양과 … 공설운동장으로 난 세 갈래 신작로를 달음질하면서 모여드는 것까지 보여서 반갑고 기꺼운 미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나는 고등비행술 여러 가지를 하여 인천 여러분이 되도록 만족히 보시게 했습니다.”
그렇게 인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안창남은 1925년 중국으로 망명, 독립운동가로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하는 등 항일투쟁에 나선다. 그러나 1930년 4월 불의의 사고를 당하며 생을 마감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안창남이 날았던 인천 하늘엔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섰고, 21년 만에 시설·서비스 면에서 세계 최고를 인정받는 국제공항으로 비상하는 중이다.
안창남의 비행 100주년이 되는 2022년 12월 올려다본 인천의 쨍한 겨울 하늘이 짙푸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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