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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 문화재 이야기 - 명대철제도종

2022-12-02 2022년 12월호


전쟁 무기가 될 뻔했던 ‘평화와 사랑의 종’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명대철제도종은 17세기 중국에서 제조한 것으로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인천 연수구 옥련동) 뒷마당엔 3개의 커다란 종이 3형제처럼 서 있다. 명대철제도종, 송대철제범종, 원대철제범종이 그것이다. 이 무거운 종들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일까.
1937년 대륙 침략 전쟁을 본격화한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병참기지로 전락한다. 부평에 무기와 군수품을 생산하는 육군조병창이 건설된 시기가 이때이다.
일제는 여러 법령을 만들어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들을 조달한다. 무엇보다 무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 쇠붙이가 필요했던 일본은 1943년 8월 ‘금속회수령’을 제정한다.
한국과 중국 각지에서 수많은 금속이 강탈돼 무기 공장으로 옮겨졌다. 숟가락, 동전에서부터 밥그릇까지 조병창엔 온갖 종류의 쇠붙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명대철제도종, 송대철제범종, 원대철제범종도 다른 쇠붙이들과 같은 신세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종들이 쇳물로 녹여지기 직전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한다. 인천시립박물관장이던 이경성 초대 관장은 이때 3개의 종을 박물관으로 옮겨 놓는다.


명대철제도종 몸통엔 제작 시기와 장소, 참여한 사람을 알려주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이 종은 명나라 숭정11년(1638) 10월 18일 허난성河南省 상추현商丘縣 지역의 태산행궁泰山行宮이라는 도교 사원에 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도종道鍾’이라는 명칭이 붙은 건 도교 사원에서 사용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불교 사원에서 쓰는 종은 ‘범종梵鍾’이라고 부른다.
명대철제도종 제작엔 상추현 출신 고위 관료 엽정계葉廷桂 부자父子와 향신층鄕紳層으로 불리는 지역의 유력 인사층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꽃봉오리를 뒤집어 놓은 모습의 이 종은 위에서부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종을 매다는 용뉴龍鈕 부분엔 용의 얼굴이 양면으로 조각돼 있는데 마치 터번을 두른 사람처럼 보인다. 그 아래 종의 어깨 부분엔 8개의 구멍을 뚫어 종소리를 조절했으며, 구멍과 구멍 사이엔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다.
종의 몸통 부분은 ‘태산행궁泰山行宮’ ‘풍조우순風調雨順’ ‘국태민안國泰民安’이란 열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태산행궁은 종이 걸려 있던 도교 사원을 가리키며, 풍조우순은 바람과 비가 순조롭다는 뜻으로 천하가 태평함을 의미한다. 국태민안은 나라가 평화롭고 백성은 편안하다는 뜻이다. 열두 글자 아래엔 종의 제작 시기, 지역, 이유, 참여 인원 등을 알려주는 글씨가 작게 새겨져 있다.
종의 아랫부분은 파도가 넘실대는 모양을 띠며 꽃과 동물 문양이 장식돼 있다. 명대철제도종은 16세기 초반부터 중국 중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종의 양식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명대철제도종 몸체


명대철제도종 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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