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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골목 TMI- 수인곡물시장

2023-01-09 2023년 1월호


녹슨 기찻길 따라

‘꼬순내’ 진동하는 수인곡물시장

골목을 걷는 것은 동시대를 기억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다. 그 안에 우리네 삶의 오늘과 내일, 어제가 있다. ‘골목길 TMI’는 골목의 새로운 변화와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새해 첫 번째로 70년 전통의 자부심과 따스한 정으로 살아가는 수인곡물시장 사람들을 만났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 디렉터


신광초등학교와 한별프라이빌 아파트 사잇길, 곡물상과 고추 방앗간, 기름집 등 20여 개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시장 골목 한가운데서 눈에 띄게 젊은 사장을 만났다.
방앗간 운영 8년 차인 청년 사장, 이승호 씨.


“인천만의 풍물 시장으로
개발하면 가능성이 충분해요”

고색창연한 골목 한가운데서 눈에 띄게 젊은 오복고추 이승호(35) 사장을 만났다. ‘꼬순내’ 솔솔 풍기는 참기름집 옆에서 방앗간을 운영한 지 8년, 이 사장은 후미진 시장 골목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다.
“2015년도에 창업했을 땐 한 달 매출이 5만 원에 불과한 적도 있었어요. 조급해 하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니 입소문이 나서 이듬해부터 매출이 오르더라고요. 저만의 고춧가루 배합 레시피도 개발했어요. 거래하는 식당에서 음식 맛이 좋아졌다고 할 때 제일 뿌듯해요.”
그는 ‘수인곡물시장 르네상스’를 꿈꾼다. “2000년 초반까지도 골목에 사람이 빽빽했어요. 가게에 다들 금고 하나씩 있을 정도로 현금이 돌았지요. 이곳은 지금도 됫박, 추 달린 저울 같은 오래된 풍경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인천만의 풍물 시장’으로 개발하면 가능성이 충분해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오복고추 중구 서해대로 418 | 032-885-7002


세월이 묻어나는 낡은 간판에 ‘수인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엔 다들 여기서
고추 빻고 기름 짰어요”

서리태, 햇적두, 기피녹두, 현미 찹쌀….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상인들은 굽은 손에 입김을 호호 불며 수십 가지 알곡을 보기 좋게 내놓는다. 수인상회, 수인참기름, 신천미점, 충남상회, 개풍상회, 연백상회, 개성참기름 등.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낡은 간판엔 수인선 협궤열차의 종착역이었던 ‘수인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엔 다들 여기서 고추 빻고, 기름 짰다”는 한 어머니가 눈길도 마다 않고 장터를 누빈다. “명절에 아들, 딸 오면 나눠 줄 거 샀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쉴 줄 모르는 이 바지런한 어머니들이 수인곡물시장의 ‘VIP 고객’이다.
수인상회 중구 인중로 63



기찻길 옆에서 나고 자란 대성쌀상회 이순자 사장.
기적 소리 아련한 그 자리에서 장사하며 2남 1녀를 억척스레 키웠다.



“70년 역사의
깊은 정과 넉넉함은 그대로”

“우리 어릴 땐 사람이 바글바글했지. 바로 옆 아파트(한별프라이빌) 자리가 원래 시장 자리야. 기차가 소리 빽빽 지르며 들어오면 쌀이며 과일, 채소, 생필품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특히 쌀, 잡곡은 전국적으로 알아줬어. 울릉도, 제주도에서도 사러 올 정도였으니까.” 대성쌀상회 이순자(60) 사장은 왁자지껄하던 시장통에서 나고 자랐다.
기적 소리 아련한 그 자리에서 장사하며 2남 1녀를 억척스레 키웠다. “우리 애들은 석탄 기차 다닐 때 태어났어. 연탄을 하도 실어 날라서 비 오고 나면 새카만 흙탕물이 흘렀어. 애들 키우랴 장사하랴 고단했지. 열심히 살다 보니까 살아졌어.”
은행 까고, 잡곡 소분하고, 입구에 요구르트 내놓고… 옛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그는 쉴 새 없이 가게 일을 본다.
“한시도 못 쉬어. 손님 오시면 쉬는 거지.” 마침 단골손님이 햅쌀을 사러 왔다. 저울보다 훨씬 후한 어머니의 인심에 봉지가 무끈하다. 세월의 부침 속에서 발길은 줄었지만 70년 역사의 깊은 정과 넉넉함은 예전 그대로다.
대성쌀상회 중구 서해대로 418 | 032-884-3982


전부일 사장은 저온압착 방식의 건강한 기름을 고집한다.
커피처럼 참기름·들기름도 가게마다 풍미가 다르다.

“커피처럼 참기름도 가게마다
풍미가 달라요”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갈수록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오후, 금방 짠 기름을 바로 병에 담아주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안 태우고 오늘 짠 기름만 팝니다” 전부일(54) 부일고추 사장이 가게 벽에 직접 쓴 손님과의 약속이다. 기름이 덜 나와도 껍질이 얇아 연기는 적게 나고 고소함은 일품인 ‘A급 참깨’를 저온에 볶아 기름을 짠다. “깨를 타지 않게 볶아야 몸에도 이롭고, 뒷맛까지 깔끔해요. 커피처럼 참기름도 가게마다 풍미가 달라요.”
부일고추 중구 서해대로 418 | 032-883-3537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하는 김군리 사장.
수십 년 변함없는 맛집 뒤에는 긴 세월 한결같은 곡물시장 상인들이 있다



“한 가지 철칙은
‘남보다 일찍 열고 늦게 닫는 것’”

밤새 눈이 펑펑 내려 뼛속까지 시린 날씨에도 대흥상회 김군리(60) 사장은 고춧가루를 빻느라 여념이 없었다. 곱게 갈아진 가루들을 주문받은 대로 착착 나눠 담는 그의 어깨에서 새벽 안개 같은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오늘은 120kg. 추워서 그런지 주문이 별로 없네.” 불경기 탓에 주문량은 좀 줄었어도 거래처 수는 여전하다. 그가 발품 팔아 전국에서 공수해 온 고춧가루는 인근 70~80군데 식당의 얼큰한 식탁에 올라 뭇사람의 허기진 속을 뜨끈하게 달래준다.
수십 년 변함없는 맛집 뒤에는 긴 세월 한결같은 곡물시장 상인들이 있다. 오래도록 신용을 지킨 비결을 물으니 ‘한 가지 철칙’이 있단다. “우리 1대 사장이 알려준 게 한 가지 있어요. ‘남보다 일찍 열고 늦게 닫아라.’ 부지런하면 다 먹고살아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전 6시면 부스럭거리며 시장 골목을 깨우는 그의 뒤로, 노란 전구가 따뜻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대흥상회 중구 서해대로 418 | 032-882-8985

오래된 벽돌 창고와 삼계탕집 사이에 자리 잡은 공방, 도예맑음.
마음씨 고운 공방지기가 볕바른 마당에 잔디를 깔고 의자를 내어놓았다.

“마당에 앉아서 보면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도자기 공방 ‘도예맑음’은 철길 따라 복집, 칼국숫집, 보신탕집이 즐비했던 수인곡물시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청명한 파란 지붕 아래 작업 테이블과 물레, 몸집 큰 가마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볕바른 마당엔 나무 테이블과 의자도 눈에 띈다.
“한여름에 할머니 한 분이 땡볕에 지치셨는지 길바닥에 앉아 택시를 기다리시더라고요. 그래서 마당에 의자를 갖다 놨어요.” 마음씨 고운 공방지기 한유선(45) 씨의 정성이다. “볕 잘 드는 남향에 꽤 널찍하고, 옆에 시장도 있고. 저한텐 딱 좋아요. 마당에 앉아서 보면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그의 얼굴에 말간 웃음이 번진다.
도예맑음 중구 서해대로410번길 41 | 0507-1373-0159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물건엔 그 시절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 있다.

수인사거리 삼익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수인농산.
삼익아파트(1979년)는 중구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아파트이다.



“아버지한텐 이 가게가
인생이고 세상 전부예요”

수인사거리 삼익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수인농산·수인상회는 수인곡물시장의 역사를 한몸에 품고 있다. 평안북도 용천이 고향인 창업주 안계득(88) 사장은 한국전쟁 후 수인역 인근에서 좌판을 깔고 곡물 장사를 시작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 시책으로 혼분식을 장려하면서 매출액이 늘어났다. 조그만 점포를 얻어 ‘수인상회’라는 간판을 올리고, 장봉도 출신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1970년대 말 시장 앞에 도로가 놓이고, 길 건너로 삼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상가로 가게를 옮겼다. 안 사장은 당시 강화도의 시골 방앗간에서 좋은 쌀을 가져다 팔았다. 1993년 그의 아들 안승일(55) 사장이 가게를 이어받아 미곡과 참기름, 견과류, 슈퍼 푸드를 취급하고 있다.
“아버지는 일밖에 몰랐죠. 그저 장사만 하셨어요. 이윤이 안 남아도 재고는 안 남긴단 생각으로 싸게 파셨어요. 거래처는 장사해서 건물주 되고 그랬는데…. 아버지한텐 이 가게가 인생이고 세상 전부예요.”
오늘 150평 정도의 가게 안에는 수백 종의 알곡이 가득하다. “정월보름, 명절 밑 일주일 전에 손님이 많이 오셨어요. 15년 전만 해도 가게 앞 도로에 20m씩 줄을 섰어요. 그땐 최고 귀한 게 참깨였어요. 명절에 참기름 선물도 많이 했고.”
이젠 모두 흘러간 옛이야기이다. 10명이던 직원은 서너 명이 됐다. 속절없이 변한 세상이 아쉽진 않을까. “모든 것이 다 변하는걸요. 그래도 가업을 이어받았으니 명맥을 이어 나가야죠.” 70년 곡물시장의 역사가 살아 숨 쉬며 대를 이은 노포는 오늘도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수인농산·수인상회 중구 인중로 87 | 032-883-2694


사진 한 컷,
인천의 기억


1948년 수인선 기차가 서는 종착역 ‘수인역’이 생기자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었다.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고, 역전에 좌판을 벌여놓고 콩·좁쌀·수수·들깨·참깨 등 곡물과 수산물을 팔기 시작하면서 ‘수인곡물시장’이 태동했다. 1980년대까지 뭇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곡물을 가장 싼 가격에 판매하는 곳으로 명성을 떨쳤다. 1955년 ‘남인천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단골 가게를 ‘수인역 기름집’이라고 불렀다. 1973년 종착역이 ‘송도역’으로 바뀌고, 1995년 주인선(주안역~남인천역)도 끊기며 화려했던 명성은 점차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70년 전통과 후한 인심이 흐르는 골목 풍경은 예전 그대로다.



1
광복 후 ‘신흥동’이란 이름을 얻은 수인역 주변은 이름처럼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고 마을이 형성돼 북적였다. 수원, 군자, 소래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이 키운 닭이며 각종 곡식을 이고 지고 하며 좌판을 벌여 역전에 큰 장이 섰다. 수인곡물시장의 시작이다.

2
기찻길 옆으로 마을이 들어서고 보신탕집이 즐비했다. 1995년 폐선 이후 맥없이 녹슬어가던 폐철로와 침목의 흔적은 20년도 채 안 돼 도로를 정비하며 시멘트 속에 묻히고 말았다. 기찻길 건너 장 보고 학교 다니던 풍경도 함께 사라졌다.

3
지금의 한별프라이빌 자리에는 인천 최대의 농산물 깡시장이 있었고, 이후 농협 하나로마트가 개장하는 등 농산물과 관련한 상권이 계속 이어져왔다. 이제는 곡물상과 고추 방앗간, 기름집 등 20여 개 점포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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