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시민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 화평동
아름답고 평안한 유년의 기억 속 골목
글 유광룡 중구 서해대로
화평동花平洞은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 평안한 동네다. 나의 부모님께서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화평동 350번지. 여기서 열일곱 살까지 살다가 부친의 병원 개원으로 그 당시 개발 지역이던 용현동 사거리 쪽으로 이사를 갔다. 그렇지만 나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은 화평동이다.
오늘에 보면, 송도국제도시가 생기며 이곳을 둘러싼 상황이 너무나 크게 변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의 사자성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딱 어울릴 법하게 말이다. 그럼에도 인천 토박이들이 가장 많이 살던 곳은 아마도 화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오랜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따라 당시 골목골목을 추억한다.
인천축현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면 화평철교를 지나야 했다. 오른쪽으로는 인천에서 가장 크고 떠들썩하던 중앙시장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철로 담벼락에 옹기종기 구둣방이 늘어서 있었다.
구둣방을 지나면 인쇄소, 식료품 가게, 고씨네 푸줏간 등이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양복점이 있었고, 커다란 못 공장도 있었다. 그 골목에는 큰아버지가 세운 평안의원도 있었는데, 큰아버지는 당시 형편이 어려운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도맡아 했다. 또 평안의원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그마한 주택이 있었다. 고故 강재구 소령의 본가다.
다시 길을 나와 평안의원에서 조금 더 오르면 화도고개와 구름다리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왔다. 그 중심에 진짜 삼각형 모양의 건물이 있었고, 이름 역시 삼각이발소라고 딱 맞게 지었다.
삼각이발소 맞은편에는 왕 서방이 운영하던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후에 냉면집으로 바뀌었다가 최근에 다시 중국집으로 돌아와 옛 생각을 새록새록 나게 한다.
이 골목을 조금 더 올라 몇 번 좁은 골목을 들어서면 비로소 우리 집이 나왔다. 아담한 한옥이었는데 몇 해 전 가 보니 연립주택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그 화평동 골목골목을 떠올려보니,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즈음에도 여전히 의연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몹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에게도, 그리고 옛 기억을 가진 많은 이에게도 화평동은 진한 추억을 선사한다. 햇볕 좋은 날, 또 한 번 화평동 산책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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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200자 원고지 3매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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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23년 5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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