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편집후기
우리나라 최초 이민자들의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에 대한 회상
신문사에 재직할 때 ‘나의 살던 고향은’이란 기획을 연재한 때가 있었습니다. 1902년 제물포(인천항)를 떠나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이민을 간 우리나라 최초 이민자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와이 현지로 날아가 이민자 후손들을 만났고, 10회 연재를 했습니다. 살을 새카맣게 태우는 뙤약볕 아래 사탕수수밭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던 이민자들은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고국의 독립 자금으로 내놓았습니다. 하와이 이민사는 멕시코 에네켄 농장 이주, 독일 광부와 간호사 파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 역시 가족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번 돈을 고국으로 보냈습니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세계적 강국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건 재외동포들의 피와 땀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때입니다. <굿모닝인천>은 재외동포청 인천유치시민운동본부가 출범한 지난 3월부터 가슴을 졸이며 특집기사를 준비했었습니다. 마침내 6월호에 싣게 돼 속이 후련합니다.
- 共明 김진국 -
6월 5일, 인천이
새로운 세계지도를 그립니다
6월 5일, ‘재외동포청’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개청합니다. 1,000만 인천 시대의 개막. 300만 인천시민과 750만 재외동포가 하나 됩니다. 세계 속 한국이 인천에서 하나가 됩니다. 얼마 전 <굿모닝인천>을 통해 인터뷰한 최에릭 씨는 고려인 3세입니다. 22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2017년에 인천으로 온 그는 큰딸 최마리안나 씨와 함께 ‘글로리아상호문화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한평생을 하루처럼 그리워하던 고향 땅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땅에서 살 거라고.” 내가 있어야 할 곳, 고향은 그런 존재입니다. 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인천에서, 세계 속 한국을 하나로 묶을 재외동포청이 문을 열었습니다. 인천이 750만 재외동포에게 고향 같은 곳이 되길 바랍니다. 마음속에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고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았을 그들 가슴에, 인천이 고향의 지도로 따듯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 가슴에 새로운 지도를 그리며, 정경숙 -
구읍뱃터 물길따라 역사 산책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영종도를 다녀왔습니다. 영종도는 한반도의 길목, 강화해협을 지킨 섬입니다. 외세의 침략을 맨 앞에서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섬의 기상은 일제강점기로 이어집니다. 1919년 3월 28일, 용유도의 관청리 광장에서 우리 선조들은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종이에 그린 태극기, 이불보에 그린 태극기, 치맛자락에 그린 태극기… 거리마다 태극기가 물결쳤습니다. 민족을 살린 그날의 태극기가 ‘영종역사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태극무늬 옆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혈서 위에 손을 가져가 봅니다. 104년 전의 함성이 아득하게 전해져 가슴 한편이 저릿합니다. 절대 잊으면 안되는 역사입니다. 그 섬의 역사를 기억하고 찾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 영종역사관 태극기 앞에서, 최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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