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트렌드 인천 2023⑥ 인천 청년 농부들의 삶과 꿈
똑똑한 청년 농부들
‘꽃길’ 대신 ‘흙길’ 도전
도시의 현란한 불빛보다 ‘시골의 반딧불이’를 더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기보다는 ‘풀나무가 피어난 흙길’을 천천히 걷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년 농부들. 그들에게 농사는 가난하고 고단한 노동이 아니다.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생활의 실천이자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다. 스스로를 ‘농민’이 아닌 ‘농부사업가’로 부르며 새롭고 튼실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땀 흘리는, 그렇게 우리 농업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청년 농부들을 만났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그래퍼
도로시농원
자매 CEO의 삶터
시작은 순조로웠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차윤정(33), 차도현(31) 자매에게 때마침 다육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아버지가 다육 식물 농장을 제안했다. 온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서구 경서동의 아랫말에 하우스 한 동을 꾸렸다. 2019년 봄, 자매의 첫 일터 ‘도로시농원’이 문을 열었다.
매일 손발에 흙을 묻히며 희망의 싹을 틔웠다. 쑥쑥 잘도 자라는 녀석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지만, 초보 농부는 배울 게 많았다. 아침 일찍 일을 끝내고 농업인 학교로 달려갔다. “인천농업기술센터에서 기초를 닦았어요. 강소농을 위한 수업을 통해 농업 기술뿐 아니라 판로 개척, 홍보 방법 등을 터득했습니다.”
화창한 봄은 길지 않았다. 세 계절을 보내고 첫해 겨울, 예기치 못한 감염병으로 시장이 급변했다.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위축되며 업력이 짧은 농장은 고객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서로를 믿고 풀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도로시농원 원예 체험 키트’를 개발해 온라인 판로를 열고, 지방정부에서 여는 ‘청년농부 오픈마켓’에 참여해 농장을 알렸다.
무던히 애쓴 지 수년, 지금은 거의 매일 체험 수업을 강의하러 간다. “도심 속 농장이란 점이 강점이에요. 영종도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 행사나 실내장식을 위한 수요가 꾸준하고, 신도시 중고등학교에 체험 수업도 활성화되고 있어요.” 때 이른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자매는 바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잘 자란 식물을 화분에 옮기고, 삐죽 튀어나온 잎을 싹둑싹둑 잘라낸다. 도로시농원에서 싱그러움을 들여갈 누군가를 생각하며.
도로시농원 서구 경서동 764-5 0507-1418-6102
“도심 속 농장이란 점이 강점이에요. 관광지 수요가 꾸준하고, 신도시에 체험 수업도 자주 나가요.”
도로시농원의 자매 CEO 차윤정, 차도현 씨
다육이화분 만들기 체험을 위한 아기자기한 소품
교동도 감성딸기밭
농부 사업가의 스마트팜
교동대교 너머, 구불구불 시골길을 10분쯤 올라가면 나오는 ‘강화 대룡마을’. 한적했던 마을 안자락에 펼쳐진 딸기밭 때문에 요즘 마을이 시끌벅적하단다. “농사꾼은 안 보이고, 여행객들이 찾아와 딸기 따고 염소 먹이도 주며 한참 놀다 간다”는 게 현지인의 전언이다.
청년 농부 이상준(26) 대표가 운영하는 팜크닉 ‘감성딸기밭’ 이야기다. 강화에서 다섯 번째 봄을 맞이한 이 대표의 딸기밭에는 사시사철 사람들이 북적인다. “감성딸기밭은 농장과 여행이 결합된 팜크닉 브랜드입니다. 딸기, 잎채소, 인삼, 흙 등 자연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어요. 여름엔 물놀이장을 운영하고요. 반려 토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해는 딸기 농사를 지어 공판장에 내놓았다. 품질과 상관없이 때를 놓쳐 생과를 헐값에 넘겨야 할 때면 가슴이 답답했다. “땅의 가치를 올려야겠다 결심했죠. 수경재배, 스마트팜을 연구하고 6차 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했습니다. 지금은 수확물 100%가 체험과 음료 가공으로 소진됩니다. 최근 대룡시장에 카페를 열어 딸기청, 생딸기 찹쌀떡도 판매해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ICT스마트팜 설비를 갖춘 농장은 생장에 적당한 온도와 습도, 일조량 등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다. 그는 종종 스마트팜 경험담을 전수하기 위해 강의를 하러 간다. “저는 땅에서 미래를 발견했습니다. ‘농사꾼’이 아니라 ‘농업인’으로 땅의 가치를 키우고 싶은 청년들의 도전을 기다립니다.”
싱긋 웃는 청년 농부의 미소가 햇살보다 눈부시다.
감성딸기밭 강화군 교동면 교동동로471번길 20-61 1588-3288
“감성딸기밭은 농장과 여행이 결합된 팜크닉 브랜드입니다.”
감성딸기밭에서 딴 딸기로 만든 신선한 음료
ICT스마트팜 설비를 갖춘 감성딸기밭
디딤돌다육화원
제2의 인생 열어준 알록달록이
식물을 가꾸는 기쁨에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 마음이 절로 싱그럽다. 숲길 옆 약 3,306m2(1,000평)면적의 ‘디딤돌다육화원’엔 정성이 깃든 다채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 그림을 감상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꾸며져 있어 발길을 붙잡는다.
변민수(49) 대표는 5년 전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농부가 됐다. 화훼단지에 가게 한 칸을 얻어 아담한 공간을 열었는데, 눈썰미가 좋고 손이 여물어 동호회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단골이 늘어나면서 땅 욕심이 생겼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여쁜 공간을 가꾸고 싶은 마음에. 마침 산 옆 양지바른 땅을 만났다. “매일 아침이 설렜어요. 직장인으로 산 2, 30대 때와는 백팔십도 다른 삶이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투자했죠.”
변 대표는 다육 식물 시장이 블루오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 세계에 30만 종 이상의 다육 식물이 있습니다. 관상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연구와 품종 개량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요. 다육이 이름을 붙이는 직업이 따로 있을 정도예요.”
꿈을 묻자 그의 이름을 딴 신품종을 개발하는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교배를 1만여 번 시도하면 그중 한두 개가 품종으로 개발된다. 한 품종이 결실을 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6~7년. 빨라진 정년, 길어진 노후. 제2의 인생을 식물에서 시작한 젊은 농업인에게 시간은 충분하다. 변 대표가 일으킬 ‘농학혁명’의 파란을 기대해 본다.
디딤돌다육화원 서구 도요지로 122-31 0507-1426-0891
“블루오션입니다. 연구와 품종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요. 다육이 이름 붙이는 직업이 따로 있을 정도.”
빨라진 정년, 길어진 노후. 제2의 인생을 식물에서 시작한 변민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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