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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땅 이름 이야기-연수구延壽區

2024-04-22 2024년 4월호

   

우리가 밟고 선 이 땅 위의 이름들


글 최재용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延壽區

네 번째 땅 이름

[연수구]


연수구는 1995년 인천시가 광역시가 될 때 당시의 남구南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 생긴 구區이다. 그때 연수·청학·동춘·옥련·선학동 등이 떨어져 나왔는데, 그중 가장 컸던 연수동이 구의 이름으로 정해졌다. 이보다 훨씬 전인 구한말 인천부仁川府 시절, 지금의 연수동 지역은 먼우금면에 속한 바닷가 동네였다. 당시 이곳에는 고촌말·솔안말·함박말·머그미 등 여러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1914년 일제日帝가 전국적으로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이들 여러 동네를 합해 ‘연수리延壽里’라는, 전혀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이 광복 뒤에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리里’만 ‘동洞’으로 바뀌어 연수동이 생긴 것이다.


‘연수리’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수명<壽>이 늘어나는<延> 동네’, 즉 ‘오래 사는 동네’라는 아주 좋은 뜻이다. 이곳이 문학산 남쪽에 있어 날씨가 따뜻하고, 바닷가라서 공기도 맑아 건강에 좋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연수’라는 이름은 이 동네의 환경이나 역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글자인 ‘壽(목숨 수)’ 자를 갖다 붙여 멋대로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인천에서 이렇게 ‘壽’ 자를 넣어 새로 이름을 지은 동네로 남동구의 만수동萬壽洞과 장수동長壽洞이 더 있다. 이 두 곳에도 ‘오래 사는 사람이 많은 동네여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틀린 얘기다. 만수동은, 연수동이 그런 것처럼, 새말·담방리·장승배기 등 여러 동네를 합해 동洞을 만들면서 이전 이름들과는 아무 관계없이 새로 지어 붙인 이름이다. 장수동도 이곳에 있던 장자리壯者里와 수현리水峴里 등을 합해 새로 동을 만들면서 이들 두 이름의 앞 글자를 땄으나 ‘壯’ 대신 ‘長’을, ‘水’ 대신 ‘壽’를 쓴 것이다.

 

따라서 연수동이나 여기서 나온 연수구는 사실 지역의 오랜 역사나 사연에 걸맞은 이름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를 ‘일제의 잔재’라고 내리깎고, 굳이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오래 사용돼 익숙하기에 새로 바꾸면 큰 혼란이 생길 텐데, 그 혼란을 감수할 만큼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꿀 것이면 1995년 남구에서 갈라질 때 바꿨어야지, 이제는 늦었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때 북구北區는 둘로 갈라지면서 ‘부평富平’과 ‘계양桂陽’이라는 옛 이름을 잘 찾아 가졌기 때문이다.       



1910년대 지형도와 2014년 항공사진을 합성한 지도 중 연수구 부분

출처 : 인천시립박물관 <사라진 섬, 파묻힌 바다, 태어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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