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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내가 사랑하는 인천-신용석 인천개항박물관 명예 관장

2024-04-22 2024년 4월호

사진엽서를 통한 인천과 투레트의 가연佳緣


글 신용석 인천개항박물관 명예 관장


1988년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엽서 전시회 도록


지난해 투레트에서 사진엽서 특집호로 발간된 계간지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오페라 극장 인근의 드루오Drouot 거리를 자주 찾았다. 프랑스 최대의 경매장과 우표 수집가들을 위한 크고 작은 우표상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인천중학교 다닐 때부터 우표 수집에 열중하고 있어서 드루오 거리는 취미 생활의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도 드문 세계 각국의 진귀한 우표들이 수집가들에게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간혹 오래되고 귀한 한국 우표가 나오면 생활비를 털어서라도 구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72년 초였다. 드루오 거리의 유명한 우표상인 필라테리아에 들어가니 낯익은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옛 엽서 한 장을 보여주는 순간 가슴 벅찬 감동이 복받쳐 올랐다. 

1903년 구한국 우표가 붙은 인천항의 모습을 찍은 사진엽서였다. 프랑스에서 내 고향 인천의 사진엽서를 처음 마주한 후부터 사진엽서 수집은 우표 수집과 함께 또 다른 취미로 자리 잡았고 인천 사랑의 애향심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자유공원에 있던 존스턴 별장과 홍예문거리 그리고 축항과 우체국 건물이 담긴 사진엽서를 영국과 독일의 우표상에서 한두 장씩 발견할 때마다 느끼던 감동은 그 어떤 즐거움과도 비견할 수 없었다. 사진엽서 수집을 시작하면서 유럽에는 많은 수집가들이 있으며 주요 도시에는 엽서 전문상이 자리 잡고 있고 수집가들의 모임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파리 특파원을 역임하는 동안 인천을 위시해 전국 각지의 사진엽서를 40여 매 수집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수집품은 유럽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얻은 값진 소득이었고 타국에서 고향 인천을 그리워하는 매체가 되었다.


두 차례 프랑스 특파원 근무를 끝내고 본사에서 사회부장으로 일하던 1988년 초로 기억된다. 오늘날 인천에 관한 글을 쓰는 분들의 필독서로 알려진 <인천 한 세기> 집필을 하시면서 필자의 옛 사진엽서 수집품을 자주 보셨던 선친 한옹 신태범 박사께서는 시민들도 볼 수 있는 전시회를 마련해보라고 권유하셨다. 1988년 6월 당시 인천직할시 공보관 전시실에서 선친의 권유로 마련한 ‘옛 사진엽서를 통해 본 개화기 인천 모습과 우리의 풍습’ 전시회는 성황이었다. 조우성, 손장원 씨 같은 분들이 사진엽서 수집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후 동호인들과 함께 인천향토사연구회를 결성해 10여 차례 사진엽서 전시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1988년 전시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엽서 전시회로 인정받고 있어서 ‘인천 최초’의 한 항목으로 추가할 수 있었다.


남부 프랑스 니스 인근에 위치한 산골 도시 투레트Tourrettes는 어머님 이성자 화백께서 1966년 옛 올리브 농가를 매입해 별장 겸 화실로 쓰시다가 1994년 당신께서 기본 설계를 해서 신축된 아름다운 아틀리에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유명한 알프스를 배경으로 지중해를 마주하는 중세풍 아름다운 마을 투레트의 시장을 역임한 3성 장군 출신인 다미엥 바가리아Damien Bagaria 장군도 사진엽서 수집가다. 젊은 시절 초급 장교 때 파리 교외 지역이나 동부 프랑스 쪽에 근무하면서 한두 장씩 수집한 고향 투레트의 옛 사진엽서를 보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했다. 


바가리아 전임 시장은 퇴임 후 투레트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데 지난해에 이어서 새해에도 사진엽서 특집호를 발간해서 눈길을 끌었다. 이성자 화백 아틀리에보존협회 명예회장도 맡고 있는 바가리아 전임 시장은 지난해 가을 이 화백의 손자 신평재 군에게 당신이 수집한 사진엽서 40여 장을 주면서 “아버지가 수집하고 있는 인천 사진엽서와 함께 투레트 사진엽서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성자 화백의 후손들이 자신처럼 사진엽서를 수집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가 할머님이 고향 진주의 산 모양과 같다며 사랑하던 투레트에 대한 애착을 사진엽서를 통해 지속시키려는 의도로 읽혔다. 사진엽서를 통한 고향 사랑이 반세기가 지난 후 인천과 투레트의 또 다른 인연으로 연계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가연佳緣으로 느껴졌다. 


오래된 사진엽서 속

오래전 인천 

오래전 투레트


1988년 6월, 당시 인천직할시 공보관 전시실에서는 ‘옛 사진엽서를 통해 본 개화기 인천 모습과 우리의 풍습’ 전시회가 열렸다. ‘인천 최초’의 사진엽서 전시회를 통해 소개된 오래전 인천 이야기의 일부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후 인천과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게 된 프랑스 투레트의 오래전 모습을 전한다.


01

제물포항(1903)

노일전쟁을 앞둔 긴박한 분위기에 싸인 병참 기지로서 활기가 가득찬 칠통마당의 풍경이다. 멀리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당시의 인천세관이다.


02

인천 시가 풍경(1913)

문학산을 배경으로 오른쪽에 내항을 안은 일본인 거주지의 전모를 담고 있다. 앞면 오른쪽 2층 목조 건물이 인천부청이고 왼쪽 2층 벽돌 양옥이 전 홈링거상회의 사옥이다. 


03

투레트 마을의 중심가(1916)

투레트 마을의 중심거리에 정장한 부인들과 어린이들이 나와 있다. 앞에 보이는 산에는 올리브 나무 등이 많이 자란다. 지금도 변함없는 길은 니스에서 향수의 도시 그라스로 통하는 간선도로의 일부다.


04

투레트 마을의 광장(1918)

남방 철도(나스~그라스)가 통과하는 투레트 마을의 광장에 당시로서는 희귀했던 승용차가 보인다. 이 광장은 오늘날 공용 주차장으로 쓰이며, 주말에는 특산물 시장이 열려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05

인천항(1908)  

노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통감부 정치를 실시한 이후의 상황이라 왼쪽 언덕에는 영국영사관이, 오른쪽 구릉에는 존스턴 별장의 원경이 보이는 활기에 충만한 칠통마당 부두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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