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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국제평화도시 인천 - 팔미도 시민 상륙 작전

2024-09-04 2024년 9월호

시민,
평화의 섬에
상륙하다


잔잔한 바다 위 떠 있는 평화로운 섬 하나,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2008년까지만 해도 밟을 수 없는 땅이었다. ‘인천 방문의 해’였던 2009년의 첫날, 드디어 팔미도가 세상에 허락됐다. 인천항 개항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가 선 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구국의 빛을 밝힌 그곳에 시민이 상륙했다.



서구 가림고등학교 2학년 경민규·최하은 학생이 참여해 주었습니다.




햇살 내리쬐는 팔미도 위로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있다.




유람선에서 팔미도를 바라보는 경민규, 최하은 학생



인천상륙작전의 

역사 품은 평화의 섬


1950년 9월 14일 오후 7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명령이 떨어졌다.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최규봉 소령과 미 해병대로 꾸려진 6명의 켈로KLO부대 특공대가 물살을 가르고 섬에 닿았다. 밤 10시. 격전 끝에 팔미도를 점령했다.

하지만 불빛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점등 장치에 나사못이 빠져 불을 켤 수 없었던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쳐가고 있을 때쯤, 최규봉 소령의 손에 무언가 만져졌다. 나사못이었다. 팔미도 등대가 불을 밝혔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눈동자가 빛으로 물들었다.


“진격하라!”

연합국 함대 261척이 일제히 인천 앞바다로 돌진했다. 그렇게 6·25 전쟁의 전세는 한 번에 뒤집혔다. 

“인천상륙작전은 알고 있었는데, 팔미도라는 섬이 이렇게나 중요한 역할을 한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 역사적인 섬에 제가 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격스러워요!”

문화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경민규 학생의 눈이 반짝인다. 수줍음이 많은 친구 최하은 학생도 제법 놀란 눈치다. 침탈이라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품고 탄생했지만, 대한제국 정부의 이름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첫 등대가 자리한 곳, 기적과도 같았던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교두보가 됐던 평화의 섬 팔미도에 경민규, 최하은 학생이 상륙했다.



역사의 흔적 넘어 

세상과 호흡하다


여름의 끝자락 주말 오후 3시 30분.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광장 인근에 자리한 선착장에서 팔미도행 유람선이 출발을 알린다. 배에 몸을 실은 30여 명의 사람들의 표정에 설렘이 가득하다. 유람선 하면 빠질 수 없는 사회자의 맛깔 나는 멘트가 짧은 여정에 흥을 돋운다. 


하지만 그 속에 왠지 모를 진중함도 함께 녹아 있다.


“팔미도는 원래 주둔 군인과 등대 관리자를 빼고는 갈 수 없는 섬이었어요. 그러다 2009년부터 사람을 허락했답니다. 여러분은 행운아예요. 이토록 의미 있는 섬으로 향하고 있잖아요.”

유람선 한쪽에 부대로 복귀하는 해군 장병들이 보인다. 나라를 지키는 그들의 복귀가 이제는 외롭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한 시간 남짓 항해한 배가 팔미도 선착장에 닿았다.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딱 한 시간 삼십 분이다. 자유롭게 섬을 즐기는 이들과 문화 해설사를 따르는 무리가 나눠진다. 경민규 학생과 최하은 학생은 문화 해설사의 길을 택했다.

“팔미도는 사주沙洲에 의해 연결된 두 개의 섬이 마치 여덟 팔八 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아 이름 지어졌다고 해요. 인천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훌륭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죠.”    

구국의 역사를 넘어, 팔미도를 오롯이 여행지로 즐길 수 있는 날이 왔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하다.






새로운 등대에는 전망대와 갤러리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활약한 옛 팔미도 등대



내일을 밝히는 

찬란한 희망의 빛


팔미도로 향하는 이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팔미도 등대를 보기 위해 배에 몸을 싣는 것이다. 등대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다. 하지만 정상이 해발 71m로 높지 않아 10분이면 거뜬하다.

 

“팔미도 등대는 1903년 6월 1일 처음 불을 밝혀 바닷길을 안내했어요. 우리나라 최초였죠. 그러다 지금은 새로운 등대에게 역할을 내어주었답니다. 2020년 9월 15일 국가문화재 사적 제557호로 지정되어 이곳 팔미도에 보존되고 있어요.”


높이 7.9m의 작은 등대는 100년을 반짝였다. 90촉짜리 석유등으로 빛을 내어 주변 바다를 비췄는데, 그 불빛은 10㎞ 밖에서도 식별될 정도로 밝았다. 바통을 이어받는 새로운 등대는 팔미도 등대 탄생 100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26m의 등대는 기본, 전망대와 갤러리까지 갖췄다. 뛰어난 국내 기술로 개발된 프리즘 렌즈 대형 회전식 등명기를 단 등대는 무려 50㎞를 비추며 10초에 한 번씩 깜빡인다.


“팔미도에 등대만 있는 건 아니에요. 섬의 허리를 감아 내려가는 숲길이 있는데 100년 넘게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엄청난 피톤치드를 내뿜어요. 실제 팔미도에는 해송과 취나물, 골무풀, 각시붓꽃 등 100여 종의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20분여의 삼림욕을 마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경민규, 최하은 학생은 팔미도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정리된 전시관으로 향했다. 어떤 이들은 해변을 걷고, 또 어떤 이들은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팔미도를 즐겼다. 섬을 떠나 다시 뭍으로 돌아가는 길. 노을 지는 서쪽 바다 저편에서 등대 불빛이 깜빡인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평화의 빛. 그 빛이 우리의 내일을 찬란히 밝히리라.


경민규, 최하은 학생이 등대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은 알고 있었는데, 팔미도라는 섬이 이렇게나 중요한 역할을 한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 역사적인 섬에 제가 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격스러워요!


팔미도 여행하기

팔미도는 여객선이 아닌 유람선을 타고 들어간다. 시기와 날씨, 입도하는 인원 등에 따라 일정이 유동적이다.

꼭 홈페이지에서 일정표를 확인하거나 문의처에 문의 후 여행을 계획하자.

팔미도 여행 홈페이지 palmido.shop   문의 032-885-0001

팔미도 유람선 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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