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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획 : 인천광역시 출범 30주년

2025-03-08 2025년 3월호

인천광역시 30년, 

그 확장의 역사 

보다 넓게, 보다 높게, 보다 멀리

단순한 팽창이 아닌 확장과 진화의 발자취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3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변화의 사이클을 세 번 겪을 시간이다. 

올해는 우리 시가 광역시 출범 30년을 맞는 해다.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한 우리 시는 1995년 지방자치 시행과 함께 광역시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광역시廣域市를 특징짓는 글자는 ‘광’(廣·넓다)이다. 이 글자는 지난 30년간 우리 시를 관통했다. 단순히 땅의 경계가 넓어지는 물리적 의미에 머물지 않았다. 

보다 넓게, 보다 높게, 보다 멀리 영역을 넓히는 사이 도시의 모습은 상전벽해를 거듭했다. 그 결과 인천은 우리나라 광역시 중 가장 역동적인 확장을 실현한 도시가 됐다.

우리 시에서 ‘확장’은 도시의 ‘진화’를 이끈 원동력이다. 

인천광역시 출범 30주년을 맞아 그 30년 확장의 주요 역사를 되짚어본다. 




#밖으로의 확장 

하늘  바다, 전방위 확장의 발자취 


인천광역시청 현판식(경인일보 제공)


간척사업으로 면적을 넓혀가는 인천광역시



-땅-

본격적인 지방화시대의 원년인 1995년은 우리나라의 행정 지도가 확 바뀐 해다. 인천을 비롯한 직할시의 명칭이 광역 시로 바뀌고 인천, 부산, 대구 등 3개 광역시의 시역市域이 크게 확장됐다.

이 중 인천의 ‘광역화’는 가히 독보적이다. 인천은 강화군 과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을 품으며 당시 전국 최대 면적의 광역시로 부상했다. 인천의 면적은 339㎢에서 955㎢로 3배 가 됐다. 행정 체제도 6개 구에서 2개 군, 8개 구로 늘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땅의 확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이후에는 송도, 영종, 청라 등 경제자유구역 지정, 공유수면 매립 등과 맞물려 인천의 영토는 더욱 넓어졌다. 지금의 시 면적은 1,069㎢로 1883년 개항 당시보다 약 150배, 1981년 직할시로 승격했을 때의 약 5배에 이른다.

내년 7월에는 확장된 땅의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 체제 개편이 단행된다. 중구 내륙과 동구가 제물포구로 통합되고 영종구가 신설되며 서구는 서구(명칭 변경 예정)와 검단구로 분리돼 2군·9구 체제를 갖추게 된다. 미래 행정 수요에 대 비하고 맞춤형 지역발전 기반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내년 행정 체제 개편은 광역화에 이은 제2의 성장촉진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01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 ⓒ 인천관광공사



-하늘-

인천광역시 출범 이후 하늘에서도 땅의 확장 못지않은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공항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원점이 우리 시에 둥지를 튼 것이다. 

2001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우리나라의 교통물류 역사에서 가장 큰 혁신을 일구었다. 개항 20년 만인 2021년 제4 활주로까지 운영에 들어간 가운데 이제는 국제화물 2위, 국제여객 5위의 허브공항이자 세계의 하늘길을 잇는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규모와 시설뿐 아니라 안전 시스템과 공항서비스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은 인천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인천이 글로벌 경제활동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많은 국제기구가 인천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것도 인천국제공항이 하늘의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 개항을 1883년 인천항 개항에 이은 제2의 개항으로 부르는 이유다.


세계 50대 항만 중 하나인 인천항


-바다-

바다에서는 외항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인천내항은 개항 이래 인천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컨테이너 화물량 증가, 비컨테이너 화물의 감소세 등과 맞물려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외항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남항부두 개발, 북항부두 개발 등으로 외항 시대를 연 인천항은 2015년 인천 신항 개항으로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한다.

송도신도시에 자리 잡은 인천 신항은 부두길이 2,100m, 6선석(1만TEU 접안 가능) 규모로 210만 TEU의 하역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천광역시사>에 따르면 인천항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1990년 전 세계 항만 순위에서 124위 수준이었다 가 2017년에는 49위로 세계 50대 항만에 진입했다. 인천 신항 개발로 인해 인천항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고, 항만 기반시설 또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시설이나 운영 면에서 아직 과제가 많지만, 인천항의 외항 시대는 새로운 항만 성장의 100년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광역화 30년, 지금 인천은

‘서인부대’ 

도시의 경쟁력 순위가 ‘서울-인천-부산-대구’ 순이라는 뜻이다. 많은 지표가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인천의 지역 내 총생산(GRDP)은 117조 원으로, 부산(114조 원)을 앞지르면서 전국 7대 특별·광역시 중 2위를 기록했다. 실질경제성장률(4.8%)은 전국 1위로 전국 평균(1.4%)을 크게 웃돌았다. ‘제2경제도시’란 말이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 

인천의 주민등록 인구는 올 1월 현재 302만 3,649명(통계청 국가통계포털)으로 지난해 1월 29일 300만 명을 돌파한 후 꾸준히 늘고 있다. 6대 광역시 중 유일하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출생아 수도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11.3%의 증가율을 보였다.

우리 시는 광역화를 통해 각종 기능의 입지 공간을 확보하면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광역시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꼬리표가 붙은 아웃사이더였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인싸(?) 도시 가 됐다. 출생과 육아, 교통, 경제 등 많은 분야에서 타 도시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 못잖게 중요한 것이 삶의 질이다. 시민행복체감지수의 확장. 우리 시가 추구하는 확장의 새 모델이다.



#안에서의 확장, 

시민의 영토를 넓히다 철책에서 캠프마켓까지

우리 시가 광역화를 통해 외형적 확장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안에서는 시민들이 발을 디딜 수 없는 금단의 땅이 있었다. 군사보호시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공간은 안보 여건의 변화 등과 맞물려 하나, 둘 시민들에게 문을 열었다. 인천광역시 출범 이후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또 다른 영토를 되돌아보았다. 



철책, 걷어내다

30여 년 전만 해도 해양 도시인 우리 시에서 정작 친수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천 바닷가에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자리 잡은 군 경계 철책 때문이다. 이 들 철책은 군부대와의 협의를 거쳐 점차 철거되고 있지만 아직도 곳곳에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현재 우리 시에서는 강화, 옹진 접경지역을 제외하고 해안지역 17개소 67㎞ 구간에서 철책 철거 작업이 진행됐거나 예정돼 있다. 지난달부터는 서구 오류동 안암유수지 일원 총 2.7㎞ 구간에 대한 군 경계 철책 철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시민들의 바다 접근성이 향상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영토 확장이다.




팔미도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함대의 이정표 역할을 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는 곳 팔미도. 팔미도는 면적 75,670㎡의 무인도로, 인천항에서 약 15.7㎞ 떨어져 있다. 군사 보호구역이어서 오랫동안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었으나, 2009년 1월 1일부터 개방되었다. 민간인 출입을 통제한 지 무려 106년 만이었다. 기축년 새해 첫날인 이날 새벽, 월미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뱃길을 달려 팔미도에 모인 시민들은 팔미도 역사상 최초의 해맞이 관광객이 됐다. 



월미산과 문학산

월미산은 6·25전쟁 이후 50여 년간 시민의 접근을 불허한 군부대 지역이었다. 군부대 이전 후 2001년 우리 시는 군부 대 지역을 매입해 공원을 조성, 월미도의 주요 녹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월미공원은 생태적으로 잘 보존돼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 또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1960년대, 군사 시설이 들어서면서부터 시민들은 문학산 정상에 오를 수 없었다. 백제의 뿌리인 명산은 군사 시설이 이전하면서 반세기 만에 온전한 모습을 되찾았다. 2015년 인천시민의 날(10월 15일)은 시민들이 봉수대에 불을 붙여 정상 개 방을 하늘에 알린 날이다.



캠프마켓

대한민국의 영토이지만 80여 년간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던 곳. 부평 산곡동 일원 캠프마켓은 일제강점기 일본 군의 부평연습장을 거쳐 1939년 이후에는 일본군의 조병창(造兵廠 : 군수공장)으로, 1945년 광복 후에는 미군의 군수기지로 사용된 곳이다. 우리 시에서는 1996년부터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이 펼쳐졌고, 결국 2002년 한미연합 토지관리계획에 의해 반환이 결정됐다. 2019년 드디어 캠프마켓 A, B구역이 반환된 데 이어 2023년 12월에는 나머지 D구역까지 완전 반환됐다. 이로써 시민들은 땅뿐만 아니라 이 땅에 깃든 단절된 역사까지 품게 됐다. 캠프마켓 부지 면적은 604,938㎡(반환공여구역 440,000㎡, 주변 지역 164,938㎡)로 서울 여의도공원이나 부산 시민 공원보다도 넓다. 우리시는 토양 정화가 완료되면 자연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함께하는 시민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내항 1·8부두

인천항이 개항한 지 140년이 되던 해인 2023년. 그 해 우리 시는 시민의 날을 하루 앞둔 10월 14일 인천내항 1·8부두를 개방했다. 보안 구역으로 철책과 콘크리트에 가려졌던 인천의 항만과 수변 공 간이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는 인천내항 8부두 옛 곡물창고(연 면적 26,256㎡)를 리모델링 한 복합문화시설 ‘상상플랫폼’이 들어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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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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