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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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기, 생각 나누기
미지의 세계를 마주한 당신의 뒷모습을 응원합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818, 유채, 94.5×74.8cm, 함부르크 미술관우리는 때로 상대방의 얼굴이 아닌 뒷모습에 보다 진솔하게 감정을 이입할 때가 있죠. 한 남자가 정상에 올라 발아래 요동치는 안개가 기암 괴석을 삼키고 멀리 산맥을 향해 달려가는 풍경을 마주하고 있네요. 지금 방랑자는 어떤 마음일까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죠. 나아가 이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하면서 자연에 대한 숭고함까지도 생각하겠죠. 한편으론 이런 압도적인 풍경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대비시키고 끝까지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도 있겠죠.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회화사에서 이렇게 사람의 뒷모습을, 그것도 정중앙에 배치한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죠. 그림 속 남자는 작가 자신일 수도 있어요. 감상자 역시 실제로 그의 뒤에서 같은 사물을 바라보며 비슷한 감정을 갖게 하는 듯 하죠. 이 작품에서 인물은 자연의 일부가 아닌 관찰자로 처리됐죠. 작가는 자연을 우리의 내면을 응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여겼어요. 그가 그린 풍경화는 우리 주위에 실재하는 대상을 이성적으로 재현했다기보다는 이를 통해 우리의 감성을 비추고자 했죠. 그것이 비록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나약한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의 다른 작품 ‘바닷가의 수도사’ 등도 같이 찾아보면 좋을 듯싶어요. 어김없이 겨울을 이겨내고 새봄이 왔네요. 만물도 새롭게 뛰어오를(spring) 준비를 하겠죠. 상급학교 신입생들과 사회 초년생들이 미지의 세계를 향
2022-03-02 2022년 3월호 -
옴니버스 소설-아무도 울지 않는 밤
부드러운 말과 밤글 안보윤일러스트 송미정지금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을 저주할 수 있겠어. 유영은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해가 기울어 골목 끝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시멘트 담과 그 위로 뻗은 배롱나무 가지 끝을 어둠이 덥석덥석 집어삼켰다. 유영은 좁은 골목과 길모퉁이를 돌아 빠르게 달렸다. 사위가 어두워 여러 차례 넘어질 뻔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차고 축축한 바람이 그늘진 마음속을 온통 휘돌고 있었다.엄마와 말다툼한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엄마와 사이가 좋아서라기보다 그간 엄마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유영은 엄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전부 오빠 때문이었다. 오빠가 돌연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한 건 3년 전이었다. 처음엔 엄마도 아연실색해 오빠를 말렸다. 취미로 스케이트를 해왔다지만 오빠는 벌써 열다섯 살이었고, 빠르면 서너 살부터 피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늦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오빠가 전신 쫄쫄이를 입고(그런 건 대체 어디서 구했담!) 거실에서 펄쩍펄쩍 점프를 뛰기 시작하자 엄마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영의 오빠는 두 팔을 둥글게 벌린 채 도움닫기 해 높이 솟아올랐다. 1회전, 1회전 반, 2회전에 가닿지도 못한 채 바닥에 나동그라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오빠는 일어나서 뛰고 또 뛰었다.꿈을 정한 건 오빠였지만 그날 이후 가족의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 훈련 가능한 빙상장은 유영의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였고, 엄마는 매일 오빠를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오빠가 훈련하는 동안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 종일 빙상장에 머물렀다. 대회가 잡히면 심야훈련이 더해져 집에 돌
2022-03-02 2022년 3월호 -
문화 줌인
‘젓새우’ 넘쳐나던 그 섬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볼음도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4호)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강화도엔 여러 개의 형제 섬들이 있다. 석모도를 지나 서쪽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4개의 섬들 가운데 하나인 볼음도乶音島는 그중 하나다. 볼음도는 새우, 꽃게, 상합이 넘쳐나던 황금 어장이었다. 젓새우만 해도 너무 많이 잡히다 보니 섬 여기저기서 새우를 말리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를 ‘깔판’이라 표현하곤 했다. 한국전쟁 전까지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댔던 이유도 어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후 민통선과 어로저지선이 그어지면서 인구는 4분의 1로 줄었고, 더 이상 바다를 의지할 수 없게 된 어부들은 하릴없이 농부로 전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볼음저수지’는 한국전쟁 이후 달라진 볼음도 주민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렇게 70여 년이 흐른 지금, 가을걷이 때면 볼음도 선착장엔 1,000kg 단위로 포장한 ‘공공비축미’를 싣고 배에 오르는 트럭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준우(43) 서도면 부면장은 “서도면에서는 주로 공공비축미를 생산한다”며 “쌀, 고구마, 땅콩 재배 등 농업과 함께 소라, 주꾸미, 상합을 잡는 맨손어업이 서도면 주민들의 생업”이라고 말했다. 볼음도엔 800살 먹은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가 풍채를 자랑한다. 높이 24.5m, 둘레 9.8m에 이르는 이 노거수는 고려 중엽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에 있던 나무가 홍수로 떠내려 온 것이라고 전한다. 북한엔 볼음도 은행나무의 짝이 살고 있는데 북한천연기념물 제165호인 은행나무가 바로 볼음도 은행나무의 배
2022-03-02 2022년 3월호 -
컬러링 인천-화수부두
인천의 자연,시민의 색으로 물들다화부수두 고진오 작가의 채색 가이드‘환경특별시’ 인천은 168개 섬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습니다. 삶에 쉼표를 찍는 여유와 다채로운 매력이 살아 숨 쉬는 인천의 자연. 인천 작가의 스케치에 시민 여러분의 색과 빛을 입혀주세요.1970년대 화수부두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였다. 수도권에서 으뜸가는 새우젓 전문 시장이자 어항으로 많은 이의 발길이 이어졌다. 당시 긴 갯골을 따라 매일 100여 척의 배가 몰려들었고, 물이 빠지면 배를 수리하는 일꾼들의 손길이 덩달아 바빠졌다. 만선의 꿈을 싣고 안전하게 바다로 나갈 수 있게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다. 고치고 회복하는 일은 자연의 섭리일 터. 지금은 쇠락한 화수부두에 가면 그때 그 시절 생동감이 떠오른다. 오래된 부두가 쉼 끝에 다시 왕성하게 피어나길 바라본다.고진오 작가 인천 곳곳의 사라져가는 풍경을 오랜 시간 화폭에 담아왔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파리, 런던, 서울, 인천, 동해, 단양, 여주 등 국내외 곳곳에서 21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 ‘홍익대학교 회화16인’전, ‘러시아 국립레핀미술아카데미’전 등 초대전과 그룹전에 350여 회 참가했다. 현재 인천미술협회 서양화분과위원장, 인천대학교 조형연구소 연구원, 갤러리 체나콜로 큐레이터, 인천환경미술협회 자문위원,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회원, 인천시 문화예술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2022년 2월의 시민 작가를 소개합니다! 김예은 연수구 랜드마크로 김유정 중구 하늘달빛로 이다미 남동구 포구로 이지호 서구 청마로 차현숙 부평구 수변로컬러링 작품을 보내주신 시민께는 추첨을 통해 소정
2022-03-02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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