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IncheON : 숨과 결
숨과 결. 시간이 멈춘 듯한 자리, 오래된 숨결이 흐른다.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갯벌의 주름에는 바다가 지나간 시간이 새겨지고,벽돌의 거친 표면에는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는다.길 위의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남기고,머물렀던 순간의 온기를 품는다.결은 이어지고, 숨은 스며든다.손끝으로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더듬는다.도시의 숨결을 어루만지며, 겹겹이 쌓인 시간 위를 걷는다.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가 소리 없이 새겨진다.결은 기억 속에 머물고, 그 숨결로 도시는 다시 깨어난다.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황산도. 폭설과 해일이 지나간 자리,얼어붙은 대지가 깊고 선명한 흔적을 안고 있다.동검도. 갯벌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에 자연이 그린 추상화.물길과 무늬 속에 푸른 바다의 시간이 머문다.소야도, 죽노골해변. 거친 파도가 밀려와 모래사장을 휘감는다.부서지는 물결 속에 바다는 새로운 숨결로 피어난다.썰물이 지나간 자리,물결은 선을 그리고 지우며 거친 흔적을 남긴다.바다는 밀려오고 물러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결을 새긴다.거센 파도가 조각상에 부딪히고,물보라는 춤추듯 흩어지다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자연은 멈추지 않는다.부서지고 흩어지면서도 흔적을 남기고,다시, 새 숨을 틔운다동검도.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결.거센 물살이 새긴 날카로운 흔적을 갯벌은 가만히 품어 안는다.모도, 파도를 품은 손.거센 파도가 조각상에 부딪혀 흩어진다.쉼 없이 밀려오는 바다는 거친 숨결을 토해낸다.강화군 인근 황산도.드러난 물길 위로 시간의 숨결이 고요히 스며든다.갯벌 위, 물길이 지나간 자리마다햇살이 내려앉고 물빛은 잔잔히 흔들린다.
2025-02-15 2025년 2월호 -
인천의 초상肖像 : 배다리 철길마을
세월의 흔적과 새싹의 희망이 만나는 배다리작품명 배다리 철길마을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길과 오래된 건물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듯 고요한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담벼락에 스며드는 햇살은 옛 시절을 속삭이고, 철길 옆 작은 집들은 정겹게 꿈을 나누고, 텃밭에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과 꽃들은 생명의 따스한 온기를 전합니다. 배다리의 시간은 도시의 숨결에 맞춰 흐르며 내일의 희망을 노래합니다.고제민서울예술고등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23회, 다수의 그룹전 및 아트페어를 진행했다. 현재 인천시민대학 시민교수이자 인천미술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2025-02-15 2025년 2월호 -
시민 행복 메시지 : 칼럼
오라 원점으로, 걷자 원점에서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6·25 참전용사기념공원 조형물거부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길을 걸어야 했던 시절의 트라우마일까요. 필름을 되돌리듯, 지금도 1인칭 시점으로 행군 코스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한 걸음, 한 걸음의 버거움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제대 후 한동안 달갑지 않은 단체 프로그램은 등산을 포함한 걷기였습니다. 어차피 다시 내려오거나 돌아올 길. ‘막걸리나 한잔하며 집결지에서 기다리자’라는 주류파(酒類派)의 유혹은 달콤하기만 했습니다.서두에 군대 이야기, 그것도 군대에서 걸었던 이야기를 꺼낸 것은 후에 발생한 반전을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걷기 무용론을 설파하며 막걸릿잔을 부딪치던 동지들(?) 상당수는 어느덧 배반자가 됐습니다. 배반을 넘어 아예 ‘걷기 예찬론’을 펼칩니다. ‘일단 한번 걸어보라’라며 전향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회복 불가능한 확신범으로 변절시켰는지 최근에 설핏 알았습니다. 그들 말처럼 ‘일단’ 걸어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걷기의 매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행군처럼 억지로 걷는 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입니다.언제부턴가 걷기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올레길, 둘레길, 나들길 등 다양한 이름의 길이 생겼고 그 길 위에 발자국과 발자국이 겹치고 있습니다. 급기야 코리아둘레길이라는 확장판까지 등장했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분단 조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DMZ평화의 길이 하나로 연결된 것입니다.이 와중에 인천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강화평화전망대를 코리아둘레길
2025-02-15 2025년 2월호 -
길 위의 인문학 : 검암역 벽화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의 불굴의 예술혼을 기리며…글. 김성배 문화비평가검여 유희강(1911~76)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벽인천지하철 2호선 검암역사 내홍매도와 정학년의 시(1976)종이에 수묵담채 / 36×30cm, 개인소장인천지하철 2호선 검암역사에는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서예가로 칭송받는 검여 유희강을 기리는 벽이 있다. 이 벽에는 탑처럼 글씨(나무아미타불)를 쌓아올린 듯한 , 면벽수도승을 돌기둥으로 표현하고 추사의 글로 주위를 채운 등이 복사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계절엔 홍매화를 그리고 여백에 한문의필순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 시를 옮기고 맨 밑줄에는 한글 순으로 좌에서 우로 쓰고 인장을 찍어 마무리한 작품에 마음이 더 끌린다.검여는 1911년 검암역에서 가까운 시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과 서예를, 명륜전문학원(현 성균관대학교)에서(1934~1937) 근대학문을, 중국에서(1938~1946) 중국서화, 금석문, 서양화를 공부했다. 귀국 후 국전 등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상을 받은 것은 물론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인천미술협회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제2대 인천시립박물관장(1954~1961)으로 재직하기도 했다.그러다가 1968년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는 오랜 세월 갈고닦아 세운 본인만의 서체(書體)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많은 이들이 서예가로서 삶이 끝났다고 말할 때 그는 왼손으로 붓을 다시 잡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좌수서 작품으로 개인전을 개최하며(1971, 1973) 우수서와 또 다른 서예의 경지를 펼쳤다. 그의 좌수서는 우수서의 힘과 속도를 내려놓는 대신 회화적 구도를 적극 활용하여 졸박미(拙樸美)에 이른다.지난
2025-02-15 2025년 2월호
- 자료관리담당자
-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