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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서 소중한 한 끼, 분식

2020-01-03 2020년 1월호



평범해서 소중한 한 끼, 분식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다섯 번째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한 한 끼, 분식(粉食)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맛
 
음식을 먹는다는 건, 그 분량만큼 삶을 채운다는 의미. 그저 허기를 달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쌓고 생명력을 더하는 일이다. 주린 배와 구멍 난 마음을 한꺼번에 채우는 따듯한 한 그릇이 여기 있다. 어려운 시절 귀한 쌀 대신 먹어야 했고, 지금은 웰빙 푸드 사이 천덕꾸러기가 됐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 분식이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국수를 뽑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한민족의 역사와 마주한다. 그 안에 인천이 있다. 인천은 1883년 개항으로 중국 조계지가 자리 잡고, 1921년 우리나라 최초의 밀가루 공장이 들어서면서 고유한 면 요리가 발달했다. 그렇게 짜장면이 태어나고 쫄면이 처음 만들어지고 칼국수, 냉면 거리가 생겨났다.
‘아차, 잘못 뽑았다.’ 1970년대 초 경동에 있는 국수 공장 ‘광신제면’에서는 주문이 밀려 바쁜 나머지 그만 사출기의 체를 잘못 끼우고 말았다. 그렇게 굵게 뽑힌 냉면 면발은 ‘국민 분식’ 쫄면이 됐다. 광신제면은 ‘쫄면을 최초로 만든 곳’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지금도 밀가루를 만지고 있다. 창업주인 장보성 할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하경우(63), 이영조(59) 부부가 16년째 공장을 꾸려가고 있다. “할머니께서 ‘돈 벌어서 나가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 덕을 많이 봤지요.” 말은 그리해도 부부는 면을 뽑는 것만으론 돈벌이가 어려워, 택배 일을 하고 부평공단 사람들의 작업복도 빨며 버티고 버티어 여기까지 왔다.
안타깝게도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광신제면 건물은 머지않아 헐릴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굴곡 있는 삶을 겪어온 부부는 담담하다. “새 건물로 가면 돼요. 광신제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광신제면’이라는 이름의 역사가 쫄면 면발처럼 질기게 이어지길 바란다.
 
 
광신제면의 하경우 대표(위)


광신제면표 원조 쫄면. 그리고
1970년대 쓰던 기계와 사출기(아래)

 
 
‘국민학생’들의 참새 방앗간
 
쫄면 하면 짝꿍처럼 떠오르는 만두, 떡볶이, 순대…. 어린 시절부터 곁에 두고 먹던 음식이라 어른이 되어서도, 형편이 좋아져 먹거리가 넘치는데도 자꾸만 생각난다. “지인이 유명한 떡볶이집이 있다고 해서 와봤는데, 음식 맛이 좋으면서도 왠지 낯익더라고요. 알고 보니 초등학생 때 자주 들르던 분식집이었어요.” 자리가 바뀌고 주인장은 달라졌지만 입이 기억하는 추억은 질긴 법이다.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얼레꼴레만두’는 1982년 학익시장 안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시장통에는 이름도 간판도 없는 분식집 10여 곳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가게가 시장 밖 골목으로 나온 건 15년 전으로, 원조 김정숙 할머니로부터 유재익(44), 장수연(43) 부부가 이어받아 3년째 꾸려가고 있다. 처음엔 ‘사람이 바뀌니 맛도 변했네 예전만 못하네.’ 말도 참 많았다. 그래도 할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손맛 그대로 알려주신 재료 그대로, 진실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니 손님들도 결국 알아주었다. 메뉴는 만두, 떡볶이, 순대, 라면으로 단출하다. 가장 인기가 좋은 메뉴는 ‘떡만이’. 어린 시절 ‘국민학교’ 앞에서 먹던 밀떡볶이에 정성껏 빚은 만두를 퐁당 빠뜨렸다. 최근에는 SNS상에 ‘인천의 3대 떡볶이’로 알려지면서, 너도나도 맛 좀 보겠다며 손님이 모여들고 있다. 추억을 부르는 음식 냄새를 따라 후미진 골목에 모처럼 활기가 인다.
 
 
손으로 정성껏 빚는 ‘얼레꼴레’ 만두


알근달근 떡볶이, 추억이 보글보글


튀김가루를 잔뜩 얹은 ‘칼레스토랑’표 칼국수

 
 

 
뜨끈한 한 그릇에, 추억을 음미하다
 

신포동 골목에서도 1,000원짜리 몇 장이면 그리운 추억을 배불리 맛볼 수 있다. 1980년대 아이들에게 신포시장 뒤편은 ‘칼집’ 또는 ‘칼레스토랑’ 골목으로 통했다. 주머니 가볍던 학생들은 이 골목에서 200원, 300원 하는 칼국수로 마음까지 든든히 채웠다. 당시 유행하던 홍콩 누아르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는데,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보겠다고 친구들과 동전을 모아 국수 한 그릇 더 시켜 먹기도 했다.
‘골목집칼국수’는 40여 년 전 신포동 칼국수 골목에 가장 먼저 터를 잡았다. 장기선(73) 할머니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평범한 뒷골목이었는데, 할머니 칼국수가 대박 나자 10여 가게가 모여들었다. 여기서 국숫집을 하면 3년 안에 집 한 채 산다고도 했다. 지금은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두어 집만 남았다. “까만 교복 입은 애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었어. 주말이면 100그릇 넘게 팔았으니까. 2층짜리 가게가 아이들로 꽉 찼는데, 애들이 벗어놓았다 잃어버린 ‘나이키’, ‘프로스펙스’ 신발을 물어주느라 아주 혼이 났었지.” 300원짜리 칼국수를 팔고 몇 십 배는 더 비싼 신발을 물어줘야 했으니 손해 보는 장사. 그래도 할머니는 그때 그 시절이, 그 까까머리 아이들이 그립다.
 
“아직 그대로네. 여기가 예전에는 말이야….” 지금은 추억을 찾아오는 아저씨 아줌마들,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이 이 집 단골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이 누추한 골목 오래된 집을 찾는 건, 행복했든 그렇지 않았든 살아온 지난 시간이 언젠간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광신제면
중구 참외전로158번길 5
Ⓣ 032-773-2212
 
얼레꼴레만두
미추홀구 한나루로412번길 3
Ⓣ 032-864-3330
 
골목집칼국수
중구 신포로 32-22
Ⓣ 032-765-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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