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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천의 맛 - 장봉도 지주식 김

2020-02-28 2020년 3월호

견딜수록 깊어지는 맛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일곱 번째는 모진 바람과 시린 물살을 견뎌내며 깊어지는 맛, 장봉도 지주식 김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자연이 내리고 사람이 완성하는 장봉도 김.

멀리 지주식 김 양식장이 보인다 

스타일링 진희원

 

햇살,바람,바다, 그리고 귀한 땀의 결실

 

바닷바람이 매서운 겨울의 끄트머리, 옹진군 북도면 장봉도. 섬 남쪽 해변에서 농기계를 개조한 트랙터를 타고 멀지 않은 바다에 이르니, 김발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진다. 축구 경기장 100개 크기에 이르는 80ha의 광활한 지주식支柱式 김 양식장이다. “, 멋지네요.” 감탄을 내뱉는 순간, 정연희(60) 어촌계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런 소리 입에도 담지 마요. 어민들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인데.” 봄빛 일렁이는 저 바다는, 섬사람들에게는 눈물겨운 생존의 장이다. 평생 차디찬 바람 맞고 갯벌에 뒤엉켜 지주를 세우고 발을 던지고 김을 매왔다.

 

지주식은 갯벌에 버팀목을 박고 그 위에 발을 매달아 김을 기르는 재래식 양식법이다. 김 한 장을 만들기까지 아흔아홉 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지주식으로 김을 기르는 건, 고되고 힘든 일이다. 찬바람이 부는 9월 말이면 어민들은 포자가 붙은 김발을 바다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간다. 이후 보름이 지나 김 이파리가 돋으면 겹쳐진 김발을 하나씩 떼어내 기둥에 고정한다. 그리고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일고여덟 번에 걸쳐 물김을 거둬들인다. 김은 물에 잠기면 바닷속 영양분을 흠뻑 빨아들이고, 물이 나가면 햇살과 바람을 한껏 들이마신다. 자연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루 두 번, 양식장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잠긴 김발을 끌어올려야 한다. “김도 뻘 맛을 봐야 하는 거예요. 부지런히 들었다 놨다 해야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해져요.” 그렇게 20여 일 꼬박 해와 달의 기운을 받고 정성을 들인 끝에야, 지주식 김이 세상의 빛을 본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땀 흘린들,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2년 전, 한파로 한강에서 유빙流氷이 떠내려왔을 땐 하릴없이 먼바다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해 고작 두어 번 김을 거두었을 뿐이었다. 오늘, 따스하게 섬을 비추는 햇살은 그저 평화롭기만하다.

    

 

 

하늘길 대신 바다를 내어주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천 앞바다 섬 주민들은 김을 양식해 왔다. 장봉도 갯벌에만도 2~3만 책의 김 양식장이 있었다. 책이란 20~40m 넓이의 김을 양식하기 위해 드리운 그물을 말한다. 한 책당 보통 1백 속의 김을 수확할 수 있으니 1(100장 묶음) 5천 원에 내다 판다 해도 불과 몇 십 m 땅에서 한겨울에 수십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그러나 이 모두 영종도 신공항 건설 이후 폐쇄됐다.

- 한겨레 | 199631일자

 

1980~1990년대 초만 해도 장봉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김 산지였다. 당시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는 장봉 김을 전국 최고로 쳐줬다. “당시 한 속당 김의 가격은 상급이 7,000, 중급이 6,000, 하급이 5,000원이었는데, 장봉 김은 대부분 상급으로 한 속이면 일꾼의 하루 삯이 충당됐어요. 지금은 20속은 팔아야 일당이 나올까 말까 해요.” 호시절을 떠올리는 이봉구(54) 장봉영어조합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바다는 주인이 따로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갯벌이 메워지고 섬에 거대한 활주로가 나면서 양식장이 막혀버렸다. 하나둘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났지만 여전히 머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 2000년부터 한시적으로나마 김 양식의 길이 열렸다. “잘 참아냈지요. 먹고살 길을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윤성균(64) 씨는 1980년대부터 김 농사를 지어왔다. 애타는 심정으로 빈 바다를 지켜보았을지언정, 마음은 바다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우우웅’, 이 순간에도 비행기가 끊임없이 섬의 하늘을 훑고 지나갔다.

      


어민들의 피와 땀이 서린 김 양식장.

봄빛 일렁이는 저 바다는,

섬사람들에게는 눈물겨운 생존의 장이다.

    

 

    

거친 바다 한가운데 삶이 담긴 맛

 

김을 기르는 어민들은 자연의 흐름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바람 부는 방향과 햇살, 물살에 따라 김의 맛과 향, 빛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부는 찬바람을 맞고 자란 김은 검은빛을 띠고 맛도 좋다. 또 햇살이 스밀수록 더 짙어지고 감칠맛이 돈다. 그래서 어민들은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면 거르지 않고 바다로 향한다.

장봉도 김 양식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있어요. 조수 간만의 차도 커 햇빛에 드러나는 시간도 많고요. 낮은 수온과 찬바람, 햇볕이 김의 맛과 향을 한껏 끌어올리지요.” 장봉 김이 남해에서 나는 김과 다른 맛을 내는 까닭이다.

공항이 들어서면서 갯벌이 사라지고 바다가 척박해졌다. 하지만 그 또한 자연의 순리라며, 섬사람들은 묵묵히 물길을 찾고 부지런히 김발을 매만진다. “수확량이 줄고 옛날 김 맛도 안 나요. 그래도 포자를 부착하는 것부터 양식장 관리에 이르기까지 신경 쓰다 보니, 전성기 때를 많이 따라갔어요. 허허.” 장봉 바다에 평생 김발을 던져온 윤 씨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흐른다.

 

겨울의 끝자락, 그리고 봄의 시작점. 장봉도 선착장엔 물기 어린 김을 가득 실은 배가 드나들고 향긋한 바다 냄새가 진동한다. 이제 4월이면 검붉었던 바다는 점차 제 색을 찾아갈 테지만, 머지않아 아버지는 다시 바다로 나가 지주를 세우고 김발을 내릴 것이다. 모진 바람과 시린 물살을 견딜수록 더 깊어지는 맛. 거친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삶의 희망을 낚아 올리는 섬사람들을 그대로 닮았다.

 

문의 장봉어촌계 032-746-7745 장봉영어법인 032-751-8644

취재 영상 보기 클릭하세요! : [영상은 큐알코드 입력과 인천시 유튜브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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