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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천의 맛 - 주꾸미 밥상

2020-04-01 2020년 4월호


이 봄, 단연 주꾸미

불현듯 나타난 신종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봄 보약 주꾸미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자. 문어도 낙지도 아닌 것이 짜리몽땅하게 못생겼지만 맛과 영양은 그만이다. 4월이면 주꾸미는 한창 물이 오른다. 전통 어로 방식인 소라방으로 잡으면 스트레스가 없어 육질이 연하고 맛이 뛰어나다. 대부분 산란하기 위해 숨어든 터라 알도 꽉 들어차 있다. 타우린과 철분의 함유량도 높다.
주꾸미 금어기는 5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저장 기술이 발달해 어느 때라도 주꾸미를 맛볼 수 있지만, 제철 맛을 따라올 수는 없다. 서두르자. 이때를 놓치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 화수부두로 달려가, 바다 깊숙이에서 건져 올린 봄을 맛보자.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화수부두 막내, ‘대팔이네’ 며느리 손맛

“오늘 바람이 불어서 작업하기 힘들었겠어요.” 화수부둣가에서 횟집을 하는 김숙희(47) 씨가 항해를 마친 뱃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아버지 때부터 몰던 배를 남편과 함께 타고 날것을 부둣가에서 팔며 살아온 그다. 배 이름은 ‘대인8호’. 동네 사람들은 그를 ‘대팔이네’ 며느리라고 부른다. 2년 전 식당 문을 열면서 바닷일에서 해방됐지만, 지금도 일손이 부족하면 배에 오른다.


배를 부리는 횟집이 몰려 있는 화수부두 일대에서 그는 막내로 통한다. 아직 배울 게 많다고 겸손하게 말해도, 바닷가로 시집와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온 솜씨다. 철마다 바다에서 나는 재료로 어떤 요리든 척척 해낸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려 펄떡이는 식재료는, 산지에서 누리는 특권. 해감하는 것부터 다르다. 살아 있어서 흐르는 물에 몇 번만 닦아내도 깨끗하다. “요즘 주꾸미는 살이 연하고 통통한 데다, 알이 꽉 들어차 있어 맛있어요.” 부드럽게 데친 주꾸미를 입안에 넣고 톡 터트리면 쌀알 같은 알들이 쏟아져 내린다. ‘아, 바다의 맛이로구나.’ 짭조름한 바다 향과 탱글탱글하면서도 보들보들한 식감. 배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부둣가가 보이는 밥상, 그 맛의 차이는 분명하다.



대인8호, ‘대팔이네’ 며느리 김숙희 씨
의정부에서 화수부둣가로 시집와, 배 타고 회도 뜨며 산다.
“엄청 후회하죠.” 말은 그리해도 표정이 참 밝다.


화수부두회센터 대인8호
인천시 동구 화수부두로 28
Ⓣ 032-777-7916


만석동을 지켜는, 주꾸미 할머니 손맛

동구 만석동 주꾸미골목은 4월이면 주꾸미 볶는 냄새로 진동한다. 이 골목의 원조는 우순임(87) 할머니다. 그의 삶은 얼굴에 파인 주름처럼 굴곡이 깊다. 할머니는 6·25전쟁 때 황해도 연백에서 군산으로 피란을 갔다 서른 살에 인천으로 왔다. 남편을 여의고 만석고가 밑에서 포장마차를 하며 자식 넷을 키웠다. “눈 똑바로 뜨고 맨발로 뛰었어. 나는 못 입고 못 먹어도 자식들을 굶길 수는 없으니까.” 어느 날은 한 단골손님이 서울 무교동에선 낙지볶음이 잘 팔린다며 해보라 귀띔을 해줬다. 결과는 ‘대박’. 할머니 집을 시작으로 만석동 일대에 주꾸미집이 하나둘 생겨났다. 봄이면 바다에서 잡아 올린 주꾸미들이 배에서 내려 이 골목으로 행차하고, 가을이면 양념으로 쓸 고추가 길가에 빨간 융단처럼 깔린다.


할머니네 주꾸미집은 이제 전국에서도 찾는 명소다. “아이고, 고생 많이 했지. 돌이켜보면 ‘구루마’ 끌고 장사하던 내가 어떻게 이 가게를 차리고 건물까지 샀나 싶어.” 봄꽃처럼 화사했던 시절은 없었다. 그래도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산 덕에, 지금 아들딸 며느리에게 큰소리 뻥뻥 치고 산다며 할머니가 웃는다.


“내가 고생을 많이 해서, 좀 냉정해.” 말은 그리해도 할머니는 정이 깊다. 나이 지긋한 단골들이 오면 앞으로 또 못 볼까 싶어 음식을 따로 싸주고, 원조집 때문에 행여 다른 집들 장사가 안 될까 싶어 재료가 떨어졌다며 손님들을 돌려보내기도 한다. “저울의 개념으로 장사하면 안 돼요. 음식은 파는 게 아니고 나누는 거예요.” 할머니의 철학은 큰아들 김홍명(60) 씨가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해가 지고 후미진 골목에 불빛이 차오르면, 할머니 손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 문을 연다. 할머니가 60여 년째 만석동 골목을 지켜줘서, 또 자식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할 만큼 건강해서 고맙고 다행스럽다.



할머니표 양념은 맵지 않고 맛있다.
그 양념을 싱싱한 주꾸미와 미나리에 잘 버무려
지글지글 볶아내면 겨우내 무뎌진 입맛이 확 살아난다.



우순임원조할머니주꾸미
인천시 동구 제물량로 340-1
Ⓣ 032-773-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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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인천시 유튜브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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