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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천의 맛-바지락 밥상

2020-05-03 2020년 5월호

시원, 담백하다 바지락

“많이 캐 먹었으니, 이제 씨 뿌려야지.” 시월의 어느 날, 영흥 선재도 바닷가에서 트랙터 군단을 만났었다. 이날, 200여 주민이 모여 바다에 바지락 씨를 뿌렸다. 어린 바지락을 긁어다, 자랄 수 있도록 넓은 바다에 뿌리는 작업이다. 바지락은 봄이나 가을에 씨를 뿌리고 이듬해 4월부터 5월까지 캐낸다. 봄에 나는 바지락은 살이 탱글탱글하다. 양식이라도 자연산과 다르지 않다.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고된 성장 과정을 거치며 바다의 풍미를 꽉 채운다.
바지락은 서해안 일대, 인천에서는 영흥도에 주로 서식한다. 백합과에 속하는 바지락은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영흥도에서 나는 바지락은 일본에 수출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크기는 작아도 살이 꽉 차 있고 단맛이 나며 부드럽다고, 영흥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바지락 별미 누름이와 고추장찌개

아는 사람만 아는, 이 섬의 비밀스러운 음식이 있다. 바지락 누름이다. 옛부터 영흥도 사람들이 즐겨 먹던 보양식으로, 찹쌀에 바지락을 넣고 죽처럼 푹 끓여 먹으면 가슴속까지 든든하다. 영흥대교를 지나자마자 왼편 바닷가에 있는 식당 ‘하늘가든’에 가면 이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바지락 고추장찌개도 일품이다. 2002년에 이 집에서 처음 만들어 판 후, 이제 섬 집집마다 보글보글 고추장찌개를 끓인다. 바지락을 넣고 푹 끓인 육수에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풀어 넣은 맛이 칼칼하니 식욕을 돋운다. “시어머니께서 바지락에 채소와 고추장을 넣어 볶아 드시는 걸 보고, 국물을 더해 얼큰하게 끓여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허복순(66) 대표는 36년 전, 인천의 명동 신포동에서 영흥도로 시집왔다.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 2년만 살다 육지로 나가야지’ 하다, 어느덧 섬에 눌러살게 됐다. 야무진 손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그가 꾸리는 식당은 섬의 명소가 됐다. “<굿모닝인천>에 나와서 실시간 검색 1위 하면 좋겠어요.” 섬 아낙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 차오른다.

 

하늘가든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251번길 24
Ⓣ 032-886-3916




그래도 바지락 칼국수

빨간 고무 ‘다라이’에 우르르 쏟아져 담긴 바지락이 해감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 핀 ‘꽃섬’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에 자리 잡은 칼국숫집의 뒷마당. 김순배(65) ‘영흥도바지락해물칼국수’ 대표가 오늘 농어바위 해변 근처에서 잡아온 것들이다. 처제와 함께 3시간 동안 26kg, 삶의 무게를 거둬들였다. “바지락 살이 달라요. 부드럽고 달아. 낙지고, 굴이고 이 바다에서 나는 건 다 맛있어요.”


김 대표는 20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 김정애(64) 씨의 친정이 있는 이 마을로 왔다. 먹고살 궁리를 하다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 좋은 아내를 믿고 칼국숫집을 차렸다. “난 칼국수를 안 먹어요. 어릴 적 가난해서 물리도록 먹었거든. 그런데 칼국수 장사를 하네요.” 남들이 자는 시간에도 일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지금 자식들 잘 키워내고 서울에 아파트도 마련했으니, 이만하면 성공했지 싶다. 그사이 아내의 얼굴은 주름지고 손은 두텁고 거칠어졌지만, 표정은 편안하다. “저 바다를 봐요. 인색할 수 있나. 마음이 절로 여유로워져요.” 음식에도 그 넉넉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칼국수는 2인분만 시켜도 서넛은 나눠 먹을 정도로 푸짐하다. 냄비에 살이 잔뜩 오른 바지락을 가득 넣고 우르르 끓여낸 맛이란. 3~4시간의 정성을 들인 국물은, 그 맛이 깊고 풍부하다. 주름미더덕 ‘오만둥이’를 넣어 시원함이 더하다. 면발도 적당히 졸깃하게 끊어져 씹는 맛이 좋다.
오늘도 부부는 뜨거운 불솥 옆에서 묵묵히 음식을 만든다. 특별할 것 없지만 언제 먹어도 맛 있는, 문득 그리워지는 맛이 그 섬에 있다.


영흥도바지락해물칼국수
옹진군 영흥면 영흥북로 195
Ⓣ 032-886-3644


그날 영흥도 바닷가에서 캔 바지락.
20여 년 섬에서 식당을 꾸리는 사이,
아내의 고운 손은 거칠고 두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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