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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복합 문화 공간 새단장-제물포구락부

2020-07-31 2020년 8월호

개항장의 숨은 보석
‘제물포구락부’


대한제국의 외교 공간으로, 6·25전쟁 직후 피폐해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했던 ‘제물포구락부’가 인천 시민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새 단장했다.
코로나19로 제한적인 운영을 하고 있지만 인문 강좌와 강연, 음악 감상회 등 시민들에게 휴식과 문화를 제공하는 열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우리나라 최초의 ‘구락부’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 남쪽 계단 아래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2층 건축물. 격자무늬의 나무 창틀, 자줏빛 묵직한 커튼 사이로 보이는 노란 샹들리에의 불빛은 외국 영화 속에서나 봄 직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대한제국 시절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제물포구락부’. 이 건축물의 원래 명칭은 ‘제물포클럽’이며 구락부俱樂部는 클럽Club의 일본식 음역어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말이다. 러시아 출신 건축가 세레딘 사바틴Afanasy Ivanovich Seredin-Sabatin이 1900년에 설계하고 1901년에 완공한 2층 구조의 벽돌 건물인 제물포구락부는 서울 정동구락부보다 3년 앞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구락부다.


1883년 제물포항이 개항한 후 인천에는 세계 각국에서 외교관, 상인, 선교사, 여행가들이 밀려왔다. 청나라 상인들이 설탕, 비누, 성냥 같은 물품을 팔아 큰 수익을 내자 영국, 독일, 미국 등 서양의 무역상사들이 속속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인천에는 외국인들의 공동 거주지였던 조계*지가 있었는데, 제물포구락부에서는 조계지 안의 문제뿐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제 외교전이 비밀스럽게 펼쳐지곤 했다.


*조계(租界) : 외국인이 자유로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구역



대한제국의 또 다른 ‘비밀 공간’
흔히 제물포구락부를 당대 서양인들의 사교 클럽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이 발행한 ‘제물포 각국 조계지 회의록’을 살펴보면 제물포구락부가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 외에도 다양한 정보를 나누고 중요한 결정들을 논의했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제물포 정략’이라는 말이 유래될 만큼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외교적인 활동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외형적인 모습은 사교 클럽이었으나 외교의 전초 기지였던 셈이다. 특히 제물포는 1883년 서구 열강들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주적으로 개항했던 곳인 만큼, 제물포구락부는 서양과 직접적으로 문화를 교류하려고 했던 대한제국의 의지가 담긴 곳이다. 당대 유명 인사들은 모두 제물포구락부에 모였을 정도로 외교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복합 문화공간의 성격을 띠었다.


이후 각국의 조계가 철폐되면서 1913년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 소속의 정방각精芳閣으로 불리다가, 1934년 일본부인회, 광복 직후에는 미군 장교 클럽, 1947년부터는 대한부인회 인천지회가 각각 활용했다. 1952년에는 시의회와 교육청, 시립박물관이 함께 사용하다 1953년 시의회와 교육청이 이전하고 1990년에는 시립박물관도 이전한다. 1990년 이후 이 건물은 인천문화원과 중구문화원으로 사용됐고 건물이 갖는 이국적인 정취와 주변 경관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사랑받았다.



인천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7호인 제물포구락부 이원영 제물포구락부 관장


찬란한 시대를 이어가는 ‘가치 재생 공간’
“새롭게 단장한 제물포클럽 개회식을 6월 22일(토요일) 오후 4시 30분에 가졌다. … 클럽 건물은 좋은 전망에다 넓은 당구장과 독서실, 그리고 근처에 테니스장을 갖추고 있어 성장하는 제물포 사회의 색다른 장식을 선사했다. 찬란한 제물포 시대를 기대하며….”
-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 <코리안 리뷰> 1901년 6월호.
1901년부터 1906년까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간행된 월간 잡지 <코리안 리뷰>에는 제물포구락부 개관 당시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헐버트 박사가 ‘찬란한 제물포 시대를 기대하며….’로 글을 맺는 것을 볼 때 제물포구락부를 열강들의 탐욕스러운 정략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기대한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원영(52) 제물포구락부 관장은 고종이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을 외교적으로 탈피하기 위해 제물포구락부를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보인다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외교 정책에 대한 재평가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물포구락부는 찬란한 과거와 희망적인 미래를 잇는 가치 재생의 공간,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공간으로 활용돼야 합니다.”



인천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의 캐리커처로 디자인한 드립백 커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열린 공간’

이 관장은 그동안 창고로 사용했던 1층을 음악회와 영화 감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새롭게 꾸몄다. 인천시립박물관의 초대 관장 석남 이경성 선생이 1953년 4월 현 제물포구락부에 시립박물관을 재개관하면서 1층을 개조해, 서울 미 공보관에서 영사기를 빌려와 시민들을 위한 무료 영화관을 열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영화관으로 조성한 것이다. 평소에는 갤러리로 사용하고, 이경성 선생의 유지를 이어 영화 상영과 해설이 있는 재즈 감상회 등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특히 1층은 석벽으로 인해 공명과 잔향 효과가 뛰어나다. 마치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동굴 사운드를 체험할 수 있다. 또 개항 당시 한반도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72명이 남긴 민중과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기록들을 고증하고,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들의 이름과 캐리커처로 디자인한 드립백 커피를 브랜딩하고 전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인문 강좌와 강연, 음악 감상회 등 시민들에게 휴식과 문화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제물포구락부는 역사적으로 어렵게 접근하는 곳이 아니라 모여서 놀고, 배우고 느끼는, 오감이 즐거운 콘텐츠가 가득한 곳입니다. 또 상상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공간, 시민이 큐레이션하는 공간, 누구나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는 열린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캡션
제물포구락부 2층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위)음악회와 영화 감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한 1층 내부. 석벽에 반사된 공명과 잔향 효과가 뛰어나다.(아래)



인천시는 인천시 문화재 활용 정책 1호 공간인 제물포구락부에서 코로나19로 지친 인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김광성 화백의 제물포시대전’을 오는 8월 30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수묵화의 깊고 옅음의 미학적 정취를 듬뿍 담아 기록이 아닌 그 시대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게 구성했다. (jemulpo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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