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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천 공감 - 시대와 세대를 잇는 힘, 개항로

2021-06-01 2021년 6월호

삶,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이다
인천은 깊다. 개항 138년, 오래된 골목골목에 지나온 시간만큼의 역사가 배어 있다. 그 역사는 인천 사람들이 살아낸 시간이기도 하다. 배다리에서 인천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개항로. 1960~1970년대 가장 번성하고 화려했으나 빛바랜 추억 속에 머물던 동네. ‘개항로 프로젝트’가 옛 시간의 흔적을 그러모아 이 시대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은 ‘사람’. 청년과 노장의 완벽한 팀워크가 힘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개항로, 바꾸다
이창길 1978년생

‘개항로 프로젝트’의 대장, 공간 기획자. 어릴 적 이 동네는 그의 놀이터였다. 대학생 시절 처음 사귄 여자친구와 설레는 마음으로 애관극장에서 데이트했다. 영화 티켓을 끊자마자 빨리 뛰라고 했다. 서울에 사는 그녀가 왜 서둘러야 하느냐 물었다. 그날 극장에 좌석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부끄러웠다. 훗날 더 큰물에서 놀면서 인천을 잊고 살았다. 영국 유학 시절부터 오래된 건축물에 관심을 두고 서울, 제주, 부산을 돌며 공간을 기획하고 새 숨을 불어넣었다. 우리 동네 인천이 떠올랐다. 고맙게도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신포동, 개항장은 그래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는데, 개항로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였다. 옛집과 문 닫은 병원을 카페로 식당으로, 추억을 짓고 기억을 다시 세웠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개항로, 새기다
전종원 1937년생

53년, 한자리에서 나무를 만지며 삶의 나이테를 채워왔다. 1963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인천으로 왔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공장 굴뚝 연기를 따라 인천으로 모여들던 시절이었다. 대성목재 합판 공장에 들어갔다, 몇 년 후 가구 공장에서 조각하는 일을 배웠다. 사수가 “나무는 어디서나 쓸모가 있다”라며 잘 배워두라고 일렀다. 밤낮으로 먼지를 뒤집어쓰며 나무를 자르고 깎고 붙이며 기술을 익혔다. 1968년 황골고개에 목공예소를 차렸다. 철공, 목공 기술자들의 전성시대였다. 한창땐 2층짜리 가게에 사람을 대여섯이나 두고 일했다. 하지만 기계로 간판을 찍어내는 시대가 오면서 그의 손길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찾아와 그의 글씨가 최고라고 했다. 그날 이후 그가 새긴 목 간판이 개항로 곳곳에 걸렸다.




개항로, 빚다
박지훈 1976년생

인천의 명동. 1980~1990년대 신포동은 인천에서 가장 ‘잘나가는’ 동네였다. 밤낮으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생에 가장 빛나던 시절, 이 동네를 드나들던 한 청춘이 불혹을 넘기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디스코텍 ‘팽고팽고’가 있던 자리에 ‘메이드 인 인천’ 수제 맥주를 빚어내는 양조장을 세웠다. 박지훈 ‘인천 맥주’ 대표의 이야기다. 젊은 시절 그는, 경인철도를 타고 달려간 1호선 끝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폼나게 걸고, 돈 되는 음악을 하기도 했다. 인‘촌’놈은 어느새 ‘서울 사람’이 됐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이 자라고 추억이 깃든 신포동으로. 원도심 한복판에 뚝심 있게 세운 양조 시설. 그 안엔 인천의 이름을 건 수제 맥주가 무르익어 간다. 최근엔 ‘개항로 프로젝트’로 의기투합해 맥주 ‘개항로 라거’를 선보였다. 진하고 깨끗한 맛으로 대박이 났다.




개항로, 알리다
최명선 1952년생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영 취미가 없고 만화만 눈에 들어왔다. 중학생 때 무작정 서울 아현동으로 올라갔다. 만화를 그리는 출판사가 몰려 있던 동네였다. 열심히 매달리다 문득 노트 한 칸짜리 세상이 좁게 느껴졌다. 서울 대한극장으로 가 간판 일을 배웠다. 붓엔 손도 못 대고 허드렛일을 하다, 선배들이 퇴근하면 몰래 간판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인천으로 와서도 몇 년을 선배 어깨너머로 배운 끝에야 간판 그림쟁이가 됐다. 애관, 미림, 동방, 인현…. 인천 ‘시네마 천국’에 그가 그린 간판이 걸렸다. 20년 전 은퇴 후에 개항로로 와 작업실을 열었다. 송월동 동화마을 벽화도 그렸다. 젊고 잘생긴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다 늙어서 팔자에 없을 맥주 모델이 됐다. 이 일대를 벗어나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젊은이들이 멋지다며, ‘인증 샷’을 함께 찍자고 하면 쑥스러우면서도 으쓱하다.




젊은 감성과 노장의 숙련된 기술이 빚어낸 완벽한 팀워크.
‘개항로 프로젝트’의 최명선, 이창길, 박지훈, 전종원(왼쪽부터).
개항로에서

개항로 사람들의 시간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낸 시간이다. 내 손으로 세상 단 하나뿐인 양복을 만든다는 기쁨으로, ‘드르륵드르륵’ 평생을 숨 가쁘게 달음박질한 재단사. 행여 스크린이 까맣게 변하기라도 할까, 한시도 영사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필름을 돌리던 영사 기사. 두 사람의 찬란한 하루를 위해 그날만큼 누구보다 분주히 움직이던 예식장 사람들….
개항장에서 배다리로 넘어가는 개항로. 1960~1970년대 극장, 예식장, 양복점, 병원 등이 몰려 있고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인천의 중심. 이젠 빛바랜 추억으로 남았지만, 인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거리에 얼마만큼의 미련과 그리움을 품고 있다.


역사는 삶이다. 오늘을 열어가는 것도 사람이다. 이 거리에 변화의 바람이 인 건 2017년 ‘개항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오래전에 문 닫은 병원, 사람이 떠난 빈집이 카페로 음식점으로 새 숨을 텄다. 오래될수록 더 새롭고 아름답게, 시대의 감각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그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은 특히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적이 드물던 골목에 발걸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옛것을 어디까지 남기고 살릴 것인가. 또 무엇을 버리고 채울 것인가.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43) 대표에게 그 기준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세대를 넘어선 협업으로 시대가 원하는 것을 만든다. “인천 원도심 골목에는 ‘잘나가던 시절’의 힘이 남아 있습니다. 오랜 점포의 기술력은 쉽게 흉내 낼 수 없지요. 긴 시간 쌓아온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잘 알아요. 함께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멀리 내다보고 꿋꿋이 참고 견디면, 끝내 좋은 날이 와.
난 평생 붓을 놓아본 적 없어. 큰돈 못 벌면 어때. 내 힘으로 여태 일해 버니,
이게 행복이지.” - 최명선

“어떨 때는 ‘내가 참 인내력을 갖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이거 아니면 안 된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어.
내 생에 끝까지 할 거야.” - 전종원



세대를 넘고, 시대를 잇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지역 오래된 가게의 노장들과 함께 브랜드 작업한 맥주 ‘개항로 라거’의 반응이 뜨겁다. 인천의 정체성과 혼을 담아 빚어낸 맛. ‘끝 맛이 좋아야 라거다.’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목 넘김, 깨끗하게 떨어지는 끝 맛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 대표의 머릿속에서 시작해, ‘인천 맥주’ 박지훈(45) 대표가 맛을 창조하고, 전종원(84) 목공예사가 병에 글씨를 새기고, 노신사 최명선(69) 화백이 모델로 나섰다.
“어머니가 ‘꿈에서 달을 보고 네가 태어났다. 너는 만인이 바라보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라고 하셨지.” 일흔이 다 된 최 화백은 젊을 때는 영화 간판을, 나이 들어서는 벽화를 그리며 평생 붓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씀이 그림을 이르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졌다.
“난 글씨를 잘 못 써. 서예가는 아니니까. 그런데 내 글씨가 삐뚤빼뚤해도 ‘기가 막히다. 관록이 있다’ 하는 거야.” 전 목공예사는 60년 나무를 만지며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의 변화를 묵묵히 견뎌냈다. 그가 맞았다. 조금 투박하고 거칠어도 긴 시간 갈고닦은 손맛을, 기계가 쉽게 뽑아내는 글씨는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우리 시도 지난 4월 세대를 넘어 인천을 알리는 네 사람에게 ‘관광진흥 유공 표창장’을 수상하며 격려했다. 이 대표는 지역의 어른들과 한자리에 선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함께해야 합니다. 세대가 협력하면 힘을 더 내고 빛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다르고, 쌓아온 시간의 깊이도 다르니까요.” 젊은 감성과 노장의 숙련된 기술이 빚어낸 완벽한 팀워크.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오래된 길 위에서 같은 꿈을 그리는 네 사람의 행보가 궁금하다. 시간의 깊이만큼 성장할 내일이 기대된다.


이 시대 어른들께

“어떻게 한 공간에서 몇십 년 같은 일을 하지? 특별한 뜻이나
철학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분들만의 색깔은 분명 있습니다.
노장이 하면 클래식Classic이 됩니다.
시간은 결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습니다.” - 이창길

“시에서 표창을 받아 감개무량합니다. 지역 어른과
함께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자리에서 오래 같은 일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의지를 존경합니다.” - 박지훈


지역 맥주 ‘개항로 라거’가 나오기까지.
개발, 생산, 홍보를 노장과 청년이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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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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