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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영승의 시선(詩선)-강 건너 저쪽에서

2021-09-01 2021년 9월호


강 건너 저쪽에서


한남철(韓南哲 ; 1937-1993)



 이따금씩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만국공원으로 놀러가기도 하였다. 배다리를 지나 싸리재 마루턱을 넘어 한참을 걷다 보면 홍여문이 나타났는데 그 안에서 소리치면 목소리가 되울려 퍼져 의미 없이 목청을 높이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한 재미였다. 아치형 벽은 물먹은 고목처럼 늘 거무튀튀하였고 고개 너머 부두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이 풍성하게 쏟아져 들어 그 안은 항상 서늘했다. 신포동과 송림동 쪽을 넘나들던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서면 으레 땀을 들이다 떠나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홍여문 주변에는 참외, 자두 수박 같은 여름 과일과 아이스케이크, 빙수, 냉차 등속을 파는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인천 창영동이 배경인 이 소설은 단편소설임에도, 시공을 넘나들며 그 소설적 화자의 그 의식과 무의식을 부침(浮沈)하는 그 등장인물들도 많아, 그러기에 그들이 교직(交織)하는 그 가난의 무늬는 그 어느 신비한 나라의 신비한 난민촌, 그 신비한 난민들의 신비한 눈빛 같은 그러한 가난으로 그 영욕(榮辱)의 파노라마가 그저 주마등처럼, 서치라이트처럼 스친다. 그 파노라마가 모든 가을의 모든 가로등 너머 “저쪽” 같다. 또 가을이고 그 가을밤이므로.
 물론 여기서 강은 현실에 존재하는 강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의 경계, 바로 그 도피안(到彼岸)의 강 같은 그러한 강이다.
 그리고 홍여문은 사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6.25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극빈을 다루고 있는 최서해(崔曙海  ; 1901-1932)의 ‘탈출기(脫出記)’(1925)나 강경애(姜敬愛 ; 1906-1943)의 ‘지하촌(地下村)’(1931)뿐만이 아니라, 인천의 미두(米豆)가 언급되고 있는 현진건(玄鎭健 ; 1900-1943)의 ‘빈처(貧妻)’(1921)나 인천 해안통(현 중앙동 일대)이 무대인 이상(李箱 ; 1910-1937)의 ‘지주회시(蜘蛛會豕)’(1936)나 인천 월미도가 무대인 이태준(李泰俊 ; 1904- ?)의 ‘밤길’(1940) 등등에서의 가난은 결국은 빈부의 대조, 그 극대비를 보여주고 있다면, 아니 있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이쪽’에 있다.



글 김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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