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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인천 2023- 바야흐로 골목의 시대

2023-03-02 2023년 3월호


바야흐로,

골목의 시대

골목 경제, 골목 도보 여행, 골목 벽화···, 바야흐로 골목의 시대다. 구불구불 비탈진 골목으로 발길이 이어지고, 젊은이들은 ‘서울 출세’보다 ‘로컬이 대세’라며 원도심의 오래된 골목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배짱 좋게 세운다.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교수는 “경험에 기반한 오프라인 상권의 미래가 바로 골목상권”이라며 “개성 있는 골목이 도시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인천에는 몇 개의 골목이 남아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몇 개의 골목길을 걸었을까. 이번 호에는 골목에서 저마다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 디렉터


개항로의 작은 백화점, 개항백화

개항백화
인천 로컬의 자존심, 개항로

인천 원도심이 꿈틀댄다. 눅진한 추억과 ‘힙’하고 ‘핫’한 건물이 한데 뒤섞인 풍경이 오감을 자극한다.
화려했던 번성기를 뒤로하고 흑백사진처럼 바래가던 골목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건 청년들이었다. 지난 2017년부터 이창길(45) 대표를 중심으로 ‘개항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수십 명의 청춘이 ‘원도심 이주’를 감행했다. 최주영(31) 대표도 그중 한 명. 방송사 프로듀서 일을 접고, 지난해 봄 원도심 한복판에 로컬 백화점을 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공간을 젊은 감각으로 ‘새로고침’하고, 로컬 브랜드로 채웠다.
공간 이름은 ‘개항백화’. 와인 숍 ‘포트포인트’, 향수 숍 ‘발로’, 뜨개질 브랜드 ‘땡스’, 개항로의 테일러 플랫폼 ‘트렌디션’ 등이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개항로의 작은 백화점입니다. 100가지 물건을 팔지는 않지만, 100가지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열망, 라이프스타일이 녹아든 제품을 소개합니다.”
최 대표는 개항로의 힘은 사람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개항로의 다채로움은 주인장들의 뚝심과 개성에서 발현한다고. 국내 유일의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골목상권 주인장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칭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에서 지역 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소상공인을 말한다. 가게 주인이지만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예술가에 가까운 친구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지없이 개항로 사람들 이야기다.
바야흐로 설레는 봄. 개항로에서 영감을 충전하고 먹고 즐기며 한 템포 쉬어가면 어떨까. 잠재된 취향과 감각을 일깨워줄 ‘로컬’이 우리를 기다린다.

개항로의 다채로움은 주인장들의 뚝심과 개성에서 발현한다.


최주영 대표. 지난해 봄,
프로듀서 일을 접고 원도심 한복판에 로컬 백화점을 열었다.


개항로의 다채로움은 주인장들의 뚝심과 개성에서 발현한다.
음악과 햇살, 로컬 브랜드로 맞춤하게 채워진 개항백화의 한낮 풍경


개항도시
골목길 걷기, ‘유행’이 아닌 ‘시대’로

지난해 여름, 싸리재 언덕에 ‘복합문화공간, 개항도시’가 들어섰다. 골목의 주인처럼 ‘개항도시’란 이름을 달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늠름하다. 내부는 책마을, 커피마을, 청자마을로 꾸며져 있다.
주인장 최석호(59) 교수는 일주일에 사나흘 이곳으로 출근한다. 일터가 140년 개항의 역사가 흐르는 개항로에 있다보니, 골목길 걷기로 일과를 시작하는 호사를 누린다.
“장광 선생님께서 ‘장안과의원’을 했던 자리입니다. 길병원에서 안과 과장을 하셨고. 부친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안과의를 하신 집안입니다. 당시엔 이 골목이 사람끼리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는 지나다니지 못했던 대로입니다.” 최 교수의 설명에 북적이던 개항도시의 옛 모습이 그려진다.
최석호 교수는 전국의 골목길을 걸으며 역사를 연구하고, <골목길 역사산책> 시리즈, <골목길 근대사> 등을 집필했다. “15년 전부터 골목길 산책을 시작했어요. 시대가 퇴적층처럼 쌓인 골목길 어귀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느낍니다.”
자연스럽게 골목길 도보 여행 예찬론자가 됐다. 그가 개항로에 아지트를 세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신포동에서 오르는 낡은 층층 계단, 성공회 교회의 붉은 지붕과 어우러진 벽돌담 길, 아슬아슬 홍예문 윗길, 자유공원 광장으로 이어진 비탈 숲길…. 원도심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좋아한다.
올봄부터 인천 사람들과 골목길 도보 여행을 함께할 계획이다. “‘도보 여행 시대’가 무르익었어요. 추억, 힐링, 건강…, 이제는 저마다 걷기의 철학을 찾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서사가 쌓여 있는 인천의 골목길이 인천의 귀한 자산입니다.”



최석호 교수의 저서 <골목길 역사산책>과 청자 잔.
‘개항도시’는 책마을, 커피마을, 청자마을로 꾸며져 있다.


1960~1970년대 극장, 예식장, 양복점, 병원 등이 몰려 있고 늘 사람으로 북적이던 인천의 중심, 개항로. 그 길에서 만난 최석호 교수.

거리의 미술
골목을 사랑한 거리의 미술가

거리의 미술가, 이진우(59) 작가를 만난 건 철거가 임박한 동네 한복판이었다. 주민들이 떠나 텅 빈 하늘엔 ‘산곡재개발정비사업구역, 자진 이주 기간 2023년 2월 20일까지’란 현수막만 나부꼈다. 그도 지난해 말 화실을 정리했다.
“제가 지금 유령 같아요. 회색 도시를 정처 없이 배회하는 ‘한낮의 유령’.” 작가는 셔터를 내린 화실을 얼마간 바라보다 좁고 긴 골목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두부를 자른 것처럼 골목이 반듯해요. 1940년대, 인천육군조병창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영단주택입니다. 광복 후에도 부평 일대 노동자들의 집이었어요.”
2017년 여름, 골목 귀퉁이에 ‘거미화실’을 차렸다. “‘거리의 미술’이고, 클 거巨, 아름다울 미美 해서 큰 그림이란 뜻도 있어요. 제가 주로 마을 벽화를 그리니까.” 산곡동의 낡고 오래된 담벼락을 캔버스 삼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골목길 모퉁이의 화단, 고추 말리는 할머니, 시 한 구절…, 그의 시선은 응당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엔 온기가 가득했다.
그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벽화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른다. “멀쩡했는데 할아버지가 나가시니까 갈라지고 들뜨네요. 사람이 떠나면 그래요. 안에 온기가 빠져버리면 티가 나요. 집주인 할아버지가 참 좋아하셨는데.” 사시사철 봄이던 벽화 꽃길에 스산함이 감돈다.
지난해 말, 그는 ‘산곡동 연작’이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5년, 눈으로 담은 골목의 풍경을 틈틈이 화폭으로 옮겼다. “조바심이 있었어요, 없어지는 것에 대한…. 그리워도 다신 볼 수 없잖아요.” 골목 한가운데에서 세상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를 그리는 이 작가, 그의 그림은 머지않아 사라질 골목에 대한 기록이고 곧 역사가 될 것이다.


이진우 작가는 2017년 여름 골목 귀퉁이에 ‘거미화실’을 차렸다.
재개발이 추진되며 셔터를 내린 화실 앞에서, 화가는 얼마간 말이 없다.


산곡동 연작-화실 앞(이진우, 50x25cm, watercolor on paper, 2021)
골목엔 늘 온기와 다정이 넘쳤다.


산곡동 연작-골목 이야기(이진우, 53x38cm, watercolor on paper, 2021)
그의 시선은 응당 골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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