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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계 초일류도시를 가다 ⑦ 하와이 호놀룰루

2023-11-02 2023년 11월호

우리 민족 최초의 이민, 

세계를 향한 힘찬 도전

하와이 호놀룰루


하와이 호놀룰루와 인천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 1902년 우리 민족은 호놀룰루로 최초 이민을 떠났으며, 이곳에서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동포의 권익을 보호하고 모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또 미래를 위한 교육에 힘쓰며 한글과 민족 정체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은 마침내 인하공과대학 설립으로 이어지며 오늘날 인천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호놀룰루와 인천의 발자취를 따라 지난 시간을 되짚으며 ‘세계 초일류도시’로 발돋움하는 인천의 내일을 내다본다.


글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



하와이 호놀룰루로 이민,

왜 인천이었던가?


1883년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인천은 개항 도시로 변모했다. 개항과 더불어 유입된 신문물은 빈한한 어촌이었던 인천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모든 문물이 인천으로 들어와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한반도의 산물이 인천에 모여 세계로 퍼져나가는 집산지로 기능했다. 당시 인천 사람들은 한반도 어느 지역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높았다. 이는 1902년 나가사키에서 갤릭호에 오른 102명 중에서 인천 사람이 86명에 달했다는 것에서 증명되듯 초기 하와이 이민에서 인천의 역할은 컸다.

인천의 한 원로는 어떠한 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바다 같다고 해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로 인천을 소개한다. 바다처럼 그 어떠한 것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도시가 인천인 것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유입된 모든 이들이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선도해 온 이주민의 도시 인천은 모든 이에게 기회의 땅이며, 바야흐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역동성과 포용력을 품은 도시로 성장했다.


첫 번째 물결

- ‘포와布?’(하와이의 음역어)로 가는 길


1902년 12월 22일 아침, 동서개발회사에 모인 121명의 이민자는 인천해관에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월미도 해상에 정박 중인 이민선 겐카이마루에 올랐다. 이들은 오후 2시 제물포항을 떠나 무지개 나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목포와 부산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신체검사를 통해 19명이 탈락했다. 갤릭호에 승선한 102명은 나가사키항을 떠나 고베, 요코하마를 거쳐 끝없는 수평선 너머에도 계속 이어지는 바다를 건너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선상 검사에서 16명이 탈락하고 86명만이 상륙해 하와이 오아후섬 와이알루아 농장에 정착했다. 이것이 우리 민족 첫 공식 이민의 여정이다. 이 여정을 포함해 1905년까지 64회에 걸쳐 7,415명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한국이민사박물관 로버타 장 기증)



하와이 한인합성협회

호놀룰루에 도착한 사진 신부들(아래)(한국이민사박물관 로버타 장 기증)


두 번째 물결

- 체류에서 정주로 전환하다


하와이에서 우리 민족은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한 10시간 동안 사탕수수밭에 물을 대는 일, 사탕수수를 베는 일, 베어진 사탕수수를 묶어 마차나 기차에 올리는 일 등을 했다. 더불어 동포 10명 이상이 모인 농장에서는 동회를 조직하고 스스로 규율을 지키며 자치 활동을 펼쳤다. 동회가 모여 한인 단체가 조직되었고, 모국의 상황에 불안을 느낀 동포들은 24개 한인 단체를 통합해 ‘하와이 한인합성협회’를 발족했다.

하와이 한인합성협회는 1909년 미국 본토의 공립협회와 통합해 ‘국민회’가 되었고, 이듬해 ‘대동보국회’를 흡수해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했다. 북미, 멕시코, 쿠바, 하와이, 시베리아 등지에 지방총회를 둔 대한인국민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할 뿐 아니라 모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활동했다. 동포들은 매달 1달러 이상의 독립 자금을 모아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전쟁을 지원했고, 일본과의 전투에 대비해 대조선국민군단을 조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초기 이민자 중 90%는 독신 남성이었다. 이들은 모국 여성들과 사진을 주고받으면서 혼인했다. 남편이 될 초기 이민자의 사진 한 장을 들고 하와이에 도착한 이들을 사진 신부라 불렀다. 초기 이민자들은 여건이 되면 모국으로 돌아올 계획으로 하와이에 체류하고 있었지만, 모국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사진 신부의 도착으로 한인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이 탄생했고, 이를 기반으로 동포들의 삶은 체류에서 정주로 전환됐다.


세 번째 물결

- 하와이 이민 역사의 귀환


고된 일상과 타향의 정서 속에서 하와이 한인을 위로한 곳은 바로 교회였다. 한글과 우리 민족의 전통을 가르치며 민족성과 독립 의지를 심어주는 학교로 기능했다. 학교도 다른 민족보다 가장 먼저 설립한 것이었다. ‘한인기숙학원’으로 출발한 민족 교육은 ‘한인중앙학원’, ‘한인여학원’, ‘한인기독학원’으로 발전하면서 한글과 민족 정체성을 가르쳤다.

민족 교육기관의 사명을 다한 한인기독학원을 매각하기로 한 동포들은 대한민국이 공업 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공과대학 설립을 발원했다. 하와이와 인천 사이에 미국과 연락하는 우의 상통의 길을 만들기 위해 교명을 ‘인하’라 했다. 인천시가 약 41만 3,223m2(12만 5,000평)를 교지로 제공하고, 중앙정부 예산과 국민 성금으로 설립 비용을 마련해 1954년 인하공과대학이 개교했다. 우리나라 공업과 기술 방면을 창출한다는 창학 이념을 품은 인하공과대학은 하와이로 간 동포들의 애국심을 영구적으로 표시한 것이었다. 인하공과대학은 재외동포와 국내 동포의 종합 선물이었으며, 이민 역사가 모국으로 귀환한 상징으로 모국과 이어지고자 했던 동포들의 염원을 상징한다.


1919년 4월 2일 알리올라니 교정에서 개최된 삼일절 기념식(한국이민사박물관 로버타 장 기증)


퍼레이드하는 대조선국민군단(한국이민사박물관 로버타 장 기증)


네 번째 물결

- 배웅한 곳에서 마중하다

도시 발전에는 포용이 중요하다. 이주민의 도시로서 그 어떠한 것도 포용해 온 인천이 모범이 될 것이다. 포용은 배웅하던 동포들을 다시 마중해 온 인천 사람들의 덕목으로, 인천은 이미 재외동포를 포용해 왔다. 사할린 영주 귀국자들이 국내에 둥지를 틀 때 단일 도시로는 가장 많은 동포를 끌어안은 곳이 바로 인천이다. 1만 명의 재러·재CIS 동포가 지역 주민과 상생하며 모범적으로 모국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곳도 인천이며, 모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희망하는 해외 시민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 곳 또한 인천의 글로벌 시티다.

2023년 6월 5일 재외동포청이 인천에 개청하면서, 하와이와 멕시코로 이민자를 떠나보낸 진출 이민사에 모국을 찾은 동포를 포용하는 유입 이민사가 더해져, 인천은 한민족 전체 이민사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동포들은 인천에 첫발을 디디면서 모국의 문을 열고, 다시 인천의 땅을 밟고 거주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인천에서 꿈꾸며, 모국에서의 코리안 드림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은 한민족의 자긍심으로 성공적인 이민 사회를 형성해 온 해외 시민들과 함께 새로운 이민 역사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

하와이 동포들의 염원에 부응해 인하공과대학 병기공학과 로케트연구회가 1960년 민간 최초로 로켓 발사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 항공우주 과학의 시원을 열었던 것처럼, 해외 시민들과 함께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로의 항해를 시작했다.

그 첫걸음으로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이 배웅하던 미국의 해외 시민을 찾았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인천은 750만 재외동포들이 편리하고 편안하게 경제 활동을 하고 생활할 수 있는 해외 시민들의 거점 도시임을 강조하며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그뿐 아니라 경제자유구역, 국제공항과 항만, 재외동포청을 품고 있는 인천이 한상 네트워크의 중심 도시임을 알릴 수 있는 ‘2024년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유치는 배웅하던 해외 시민을 마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하와이 호놀룰루로 처음 해외에 발을 내디딘 후 인천은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갈 인천의 힘찬 미래를 기대한다.



1954년 개교 당시의 인하대학교(인하대학교 총동창회)


1960년 민간 최초로 병기공학과 로케트연구회가 로켓을 쏘아 올리는 광경(인하대학교 총동창회)


제21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에 참석한 유정복 시장(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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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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