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길 위의 인문학 : 검암역 벽화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의 불굴의 예술혼을 기리며…
글. 김성배 문화비평가
검여 유희강(1911~76)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벽
인천지하철 2호선 검암역사 내
홍매도와 정학년의 시(1976)
종이에 수묵담채 / 36×30cm, 개인소장
인천지하철 2호선 검암역사에는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서예가로 칭송받는 검여 유희강을 기리는 벽이 있다. 이 벽에는 탑처럼 글씨(나무아미타불)를 쌓아올린 듯한 <정게증초의사(1965)>, 면벽수도승을 돌기둥으로 표현하고 추사의 글로 주위를 채운 <괴석도(1976)와 김정희의 편지구절> 등이 복사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계절엔 홍매화를 그리고 여백에 한문의
필순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 시를 옮기고 맨 밑줄에는 한글 순으로 좌에서 우로 쓰고 인장을 찍어 마무리한 작품에 마음이 더 끌린다.
검여는 1911년 검암역에서 가까운 시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과 서예를, 명륜전문학원(현 성균관대학교)에서(1934~1937) 근대학문을, 중국에서(1938~1946) 중국서화, 금석문, 서양화를 공부했다. 귀국 후 국전 등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상을 받은 것은 물론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인천미술협회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제2대 인천시립박물관장(1954~1961)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8년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는 오랜 세월 갈고닦아 세운 본인만의 서체(書體)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많은 이들이 서예가로서 삶이 끝났다고 말할 때 그는 왼손으로 붓을 다시 잡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좌수서 작품으로 개인전을 개최하며(1971, 1973) 우수서와 또 다른 서예의 경지를 펼쳤다. 그의 좌수서는 우수서의 힘과 속도를 내려놓는 대신 회화적 구도를 적극 활용하여 졸박미(拙樸美)에 이른다.
지난해 제물포구락부에서는 「붓으로 세상을 베다」(2024.9.27.~12.31)라는 특별전을 개최하여 검여의 예술세계를 시민들에게 소개했다. 전시 자체는 반가웠지만 복사본으로 접해야 하는 아쉬움도 컸다. 유족들은 2008년 인천시에 기증 의향을 전달했지만 이렇다 할 진척이 없자 2019년 작품 400점, 습작 600점, 붓과 벼루 등을 성균관대학교에 기증했다. 2023년 5월 인천시립박물관과 성균관대학교는 검여의 자료 교류와 공동 연구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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