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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민 행복 메시지 : 칼럼

2025-02-15 2025년 2월호


오라 원점으로, 걷자 원점에서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6·25 참전용사기념공원 조형물


거부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길을 걸어야 했던 시절의 트라우마일까요. 필름을 되돌리듯, 지금도 1인칭 시점으로 행군 코스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한 걸음, 한 걸음의 버거움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제대 후 한동안 달갑지 않은 단체 프로그램은 등산을 포함한 걷기였습니다. 어차피 다시 내려오거나 돌아올 길. ‘막걸리나 한잔하며 집결지에서 기다리자’라는 주류파(酒類派)의 유혹은 달콤하기만 했습니다.

서두에 군대 이야기, 그것도 군대에서 걸었던 이야기를 꺼낸 것은 후에 발생한 반전을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걷기 무용론을 설파하며 막걸릿잔을 부딪치던 동지들(?) 상당수는 어느덧 배반자가 됐습니다. 배반을 넘어 아예 ‘걷기 예찬론’을 펼칩니다. ‘일단 한번 걸어보라’라며 전향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회복 불가능한 확신범으로 변절시켰는지 최근에 설핏 알았습니다. 그들 말처럼 ‘일단’ 걸어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걷기의 매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행군처럼 억지로 걷는 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입니다. 

언제부턴가 걷기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올레길, 둘레길, 나들길 등 다양한 이름의 길이 생겼고 그 길 위에 발자국과 발자국이 겹치고 있습니다. 급기야 코리아둘레길이라는 확장판까지 등장했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분단 조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DMZ평화의 길이 하나로 연결된 것입니다. 

이 와중에 인천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강화평화전망대를 코리아둘레길의 원점으로 특정하자는 시민운동입니다. 원점 선점이라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미션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의 순발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걷기 문화의 시조로 제주 올레길을 꼽습니다. 

그런데 그 올레길에 앞서 이미 120여 년 전 강화도에 걷기 문화에 영감을 준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증거가 『심도기행(沁都紀行)』입니다. 『심도기행』은 1906년 강화도 선비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1846~1916)이 지은 기행 시문집입니다. 심도는 강화도를 일컫습니다. 그는 강화도 전역의 마을 200여 곳을 직접 방문해 256수의 한시(漢詩)를 남겼습니다. 제주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 역시 강화도에서 적잖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의 허준은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낫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것이 좋다”라고 했습니다.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신체와 정신을 아울러 걷기의 매력을 함축한 이들 명언의 원점이 인천에 있습니다. 이 원점은 원조를 넘어 최고로 향하는 시작점이라는 것, 얼마 전 강화도에서 얻은 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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