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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외롭지만 가야 할 ‘몸짓’의 길

2014-11-28 2014년 12월호


외롭지만 가야 할

‘몸짓’의 길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갑작스레 닥친 한파가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지만, 극장 안은 예술에서 파생되는 힘과 에너지로 충만하다. 아직 배우가 등장하지 않은 빈 무대에서 벌써 느껴지는 힘이다. 관객들의 얼굴에 도는 기대감. 무대 위에서도 인생에서도, 언제나 연극은 그렇게 시작된다.
인천연극 역사가 시작되는 페이지에는 ‘돌체’가 있었다. 1979년, 중구 경동의 차디찬 얼음 공장에서 피어난 뜨거운 예술의 혼은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돌체가 예술의 꽃을 활짝 피운 건, 1983년 마임이스트 최규호와 연극배우 박상숙(55)이 극장을 인수하면서 부터다. 부부는 좁고 축축한 반지하 극장에서 ‘겨울 나그네’, ‘춤추는 어릿광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등 주옥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인천연극의 자존심을 지켜 왔다. 그 시절 인천에는 10여 개의 극단이 창단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한 뿌리를 이룰 만큼 전성기를 누렸다. 그 중심에 바로 돌체가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관객과 극단의 외면을 받으며 극장이 하나둘 사라져갔고 90년대에는 대부분 문을 닫기에 이른다. 돌체 역시 폐관 위기에 놓였으나, 지난 2007년 남구의 지원을 받아 지상 4층 규모의 복합공연장 ‘작은극장 돌체’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었고 한때 극단 식구들과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인천에서 30여 년을 가난한 연극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극단과 극장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외지인이라는 편견에 싸우고 평생을 배고픔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공연 콘텐츠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녀의 입술에서 한숨이 옅게 새어 나온다. 박상숙은 남편과 함께 1984년 극단 ‘마임’을 창단해 당시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마임을 알리고 훗날 마임에 풍자, 마술, 어릿광대 등을 버무린 클라운마임을 창시해 ‘국제 클라운 마임축제’로 꽃피웠다. 극단의 수십 년 역사가 녹아내린 축제는 올해로 19회를 맞으며 세계 유명 마임이스트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황량한 땅 위에 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우기까지, 그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는 게 곧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두려울 것도, 못할 것도 없습니다. 돌체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자리에서 버티는 이유이자, 내가 지탱하는 힘입니다.”
한 마디 말이 아닌 몸짓으로 다가오는 마임의 세계. 무대 위 무언의 몸짓이 말을 걸고 연기자와 눈빛이 통하는 순간, 관객은 우리가 알지 못하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배우 박상숙. 그녀는 타고난 배우이자, 마임이스트다. 그녀의 눈빛은 무대를 넘어 세상을 관통할 만큼, 여전히 살아서 빛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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