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성탄 축하목 위해 나무 뽑지 마시오
2014-11-28 2014년 11월호
성탄 축하목 위해
나무 뽑지 마시오
6·25 전쟁이 끝난 후 상흔이 아물면서 시 행정도 급속히 안정을 찾아갔다. 인천시는 시민들에게 시 정책과 지역의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1953년(단기 4286년)부터 1961년까지 ‘인천공보(仁川公報)’라는 주간 신문을 발행했다. 어찌 보면 본지 ‘굿모닝인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신문을 보면 그 시절의 시 정책은 물론 인천의 사회상과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인천공보’의 기사를 원문 그대로 발췌하되 이해하기 힘든 단어나 문장은 현재 어법에 맞게 고쳐서 매월 이 지면에 게재한다.
정리 유동현 본지편집장
유류 원료난으로 피마자를 모집
국내산 유류 원료원 부족으로 말미암아 금번 중앙 방침에 의거하여 피마자를 수집한다고 하는데 인천시에서도 이 계획에 따라 수집운동이 전개되리라고 한다.
(1953년 12월 23일자)
영화교에서 여상고 설립 준비 중
57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영화학원은 국민학교와 여자중학교 그리고 최근에 승격을 본 가정전수학교 등 일련의 교육기구로서 교육 사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고 있거니와 소식통에 의하면 기독교감리교 선교사 윌손 여사의 협력으로 설립기금과 운영 경비를 장만하여 내년 내로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고자 준비 중에 있다고 전해진다.
(1953년 12월 23일자)
공동변소 15개 신축
인천시는 CAC의 물자 원조와 당국의 보조로 금년 들어 공동변소 10개를 신축하였으며 또한 5개는 공사 중으로 곧 완성을 보리라 한다. 동 변소가 준공되면 종전에 있는 3개소와 합하여 18개소가 인천에 있게 되는데 사변(6·25 전쟁) 전에는 7개소 있던 것이 사변으로 4개소가 전파되어 3개소 만 남았던 것이다.
(1954년 12월 4일자)
열한 달에 5천명 출생
인천시 호적과 집계에 의하면 금년 1월부터 11월까지 사이에 인천의 출생자와 사망자 사이에는 현격한 숫자적 차이를 보이고 있어 그 비율은 3대 1이라는 놀라운 인구 증가 실태를 여실히 보이고 있는 것이다. 출생자 수는 4천922명이며 사망은 1천596명으로서 11개월간 3천326명이 증가한 것으로 일일평균 출생이 15명, 사망이 5명인 것이다. 그런데 동 출생자 숫자 속에는 사생아가 12명이나 포함되고 있으며 기아(棄兒·버려지는 아이) 수는 무려 73명이나 된다고 한다. (1954년 12월 18일자)
성탄 축하 위한 나무 채취 엄금
인천시 농림과에서는 성탄 축하목(성탄트리)으로 입목(立木)의 채굴 또는 생지(生枝·나뭇가지)의 채취로 인하여 산림조성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케 하는 현실에 비추어 금년 성탄절에는 축하목으로 사용하기 위한 입목의 채굴, 생지의 채취 등을 방지하고 부득이 한 경우에는 조원목(造原木), 분재목(盆栽木) 또는 허가 임지의 생지 등을 이용하도록 관할 각 출장소 및 동장에 시달하였다.
(1955월 12월 12일자)
숭의시장 연내 완공
오랫동안 논의하여 오던 숭의공설시장이 연내로 발족하기로 되어(계약은 두 달) 이미 공사계약이 완료되었다. 동 시장은 10월 말에 준공할 예정으로 동 추진위원회에서 계획을 하였는데 부지 관계로 지연되어 연내에는 준공을 보게 된 것이다. 숭의동 134번지에 471평의 건평 내에 점포는 36개(개당 5평)다. 공사는 서울에 있는 신립토건사에 의해 시공케 되었는데 동 시장이 발족을 보게 된 것은 정지환, 노윤호 양 의원의 노고는 물론 시 당국의 숭의, 주안, 용현, 학익동 등 인근 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과단적인 조처에 의한 것이다.
(1956년 12월 7일자)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지역의 문화활동은 꾸준히 진행되었다. 1956년 12월 21일자에 실린 ‘시와 음악의 밤’ 공지 기사다.

예전에는 성탄절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성탄 연극을 공연했다.

숭의공설시장 점포 배치도
- 첨부파일
-
- 다음글
- 청라 시티타워 건립 ‘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