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한 달 중 사흘만 섬이 되는 섬, 운염도
한 달 중 사흘만섬이 되는 섬, 운염도
목마름에 퍼즐을 맞추다
섬을 찾기 위해 뱅뱅 돈다. 지도에는 있지만 내비게이션에는 잡히지 않는 길 탓에 미아가 된다. 중구 중산동에 위치한 섬 운염도는 어미 속태우는 짓궂은 아이 같은 섬이다.
글 사진 이현주 자유기고가
섬, 숨바꼭질하다
어미는 아이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종대교를 건너와 ‘동강리’ 마을을 찾기까지 아무도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을은 이별을 예견했는지 모르겠다. 영종대교는 마을을 두 동강냈다. ‘동강리’ 마을을 지나면 한국전쟁 시 남과 북을 잇던 철제다리를 연상케 하는 철교를 만날 수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50년대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빨간 흙먼지 옴팍 쓰며 자동차로 달리는 비포장길은 엉덩살 처진 어미에겐 험한 길이다. 니체는 ‘길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고 했다. 좌·우로 혹은 위·아래로 차에 탄 사람들을 흔들어 놓던 길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이국적 풍경을 선물하며 이방인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맘놓고 노닐던 청둥오리 떼는 이방인의 차 소리에 물살을 튕기며 힘차게 날아오른다. 햇빛을 받아 일렁이는 호수는 아이 찾는 어미의 시름을 내려놓게 한다. 바닷바람이 매섭다. 바람이 불때마다 갈대가 서걱거리며 눕는다. 바다가 일렁이듯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 춤추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마른바람 탓일까? 자연이 만들어낸 ‘테셀레이션’(한 가지 이상의 도형을 이용해 틈이나 포개짐 없이 평면이나 공간을 완전하게 덮는 것)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멋진 그림을 그렸다. 형이상학적인 모양은 때론 무슨 메시지를 던지듯 아름다운 규칙을 만들어 낸다. 작은 퍼즐이 모여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 내듯 이곳 역시 작은 조각이 모여 자연의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다. 바닷물을 막은 탓에 바닷물은 증발하고 갯벌은 쩍쩍 갈라졌다. 갈라진 갯벌이 만들어낸 천연 작품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가두었던 물이 증발하고 바다 밑바닥은 퍼즐을 남겼다. 그 사이사이 빼꼼히 비집고 나온 칠면초는 빨갛게 얼굴을 내민다. 갈라지는 메마름 속에서도 생명은 자란다.
섬, 세상의 등을 밀다
한가로이 칠면초를 뜯던 흑염소 떼가 마을로 길손을 인도한다. 차가운 철교 아래 다섯 가구가 모여 사는 운염도는 애를 먹이며 그렇게 어미의 품에 안겼다.
바로 앞 청라국제도시 마천루가 하늘을 찌를 듯 위협하고 있지만 이곳은 하늘을 의지해 살아가는 마을이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사용하기도 하지만 짠 바닷물이 올라오는 탓에 대부분의 가구가 빗물을 받아 생활한다. 마을버스도 없다. 세상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지만 이곳의 시계는 고장 난 듯 멈춰 있다.
이곳은 불과 60년 전만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대부도에서 더 들어간 ‘천감도’에서 살던 마음 맞는 세 집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유인도가 되었다. 세 가구는 이곳에 흙벽돌로 길게 집 한 채를 지어 칸만 막아 같이 살았다. 아무도 살지 않던 버림받은 땅 운염도에 들어와 낮에는 날품을 팔며 밤에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 외로움을 밝혔다.
운염도를 유인도로 바꾼 개척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유일한 자손 양정복씨 부부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섬의 겨울은 유독 길다. 겨우내 땔감을 준비하러 양정복씨 부부는 겨울 산을 헤맨다. 겨울이 오기 전 쟁여놓은 무는 겨우내 좋은 반찬거리가 된다. 무청은 시래기기가 되어 바싹 마른 숭어 밑에 깔려 자글자글 조려져 겨우내 반찬으로 오를 것이다. 물 빠진 뻘밭에 꽂아진 나뭇가지는 천연덕장이 되어 숭어, 망둥이가 이곳에서 말려진다. 배타고 잡아온 물고기와 소라는 그들만의 바다냉장고에 저장되어 있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섬에 불쑥 손님이 찾아와도 이곳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집 앞 바다에 메달아 놓은 그물망을 올려 바다향 가득한 밥상을 한상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극진한 상차림을 뒤로 하고 야박하게 운염도 주민들은 길손의 등을 민다.
“냉큼 가슈. 언능언능….”
인천국제공항 건설공사로 섬은 육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름은 ‘운염도’다. 육지인 섬은 대사리 기간 3~4일간은 물에 잠겨 세상과 고립된다. 사리기간에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섬사람들은 야박하게 내쫓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사흘간 이곳서 오가지 못하고 갇히기 때문이다. 차를 버리고 산으로 오르거나 동네 사람들 배를 빌려 나가야 하기에 사리 때 찾아오는 손님에겐 정을 쉽게 주지 않는다. 짧은 이별을 위한 주민들의 배려다.
섬은 외로워 육지가 되었다. 육지가 된 섬은 이제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개발의 숲에 둘러싸여 가는 섬은 더욱 외로워졌다. 섬은 그래서 아이처럼 가끔 심술을 부린다. 한 달 중 오롯이 사흘만 섬이 되는 시간에 그 누구도 맞지 않는다. 운염도가 세상과 손잡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순수한 자신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운염도는 섬일 때 그 이름을 잃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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