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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거대한 성채와 넓은 광장

2015-01-09 2015년 1월호

거대한 성채와

넓은 광장


살짝 발만 들어도 풍경은 달리 보인다. 까치발을 하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평지에서 바라보던 거리나 동네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위성은 너무 멀고 헬리캠(Helicam)은 너무 비싸다. 그래서 올라갔다. 건물 옥상이나 교회 종탑에 올라 인천을 굽어보았다. 그 정도 높이임에도 풍경은 사뭇 달랐다. 올 한 해 까치발로 인천 전역을 누벼 본다.

글·사진 유동현 본지편집장



까치발을 든 지점 - 동인천역사 빌딩
수년 째 거의 빈 건물로 방치돼 있는 이 건물은 한때 인천백화점 등 쇼핑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 1층에 역무시설이 있고 3,4층에 경륜과 경정(모니터)경기장이 있을 뿐이다. 6층 높이의 옥상에서 남쪽 송현동과 송림동을 바라보며 와이드로 촬영을 했다.

경인철도는 동인천역 지역을 두 동강 냈다. 대한서림이 있는 인현동 쪽과 수도국산으로 향하는 송현동 쪽으로 확연히 나뉜다. 시민들은 인현동 방면을 흔히 동인천 ‘앞쪽’이라고 불렀고 송현동 방면을 ‘뒷쪽’이라고 했다. 이것은 순전히 역 개찰구 방향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오랫동안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렇게 ‘뒤편’ 역할을 했던 송현동 쪽이 이제는 ‘앞편’이 되었다. 수도국산에 커다란 성채가 세워지고 역 북쪽에 넓은 광장이 생기면서 100여 년 만에 앞뒤가 ‘확’ 바뀐 것이다.

 

① 수도국산(솔빛아파트)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송림산(松林山) 혹은 만수산(萬壽山)이었다. 일제는 1910년 이 산의 꼭대기에 노량진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하는 배수지를 만들었다. 이 배수지를 관할하는 수도국이 생기면서 이 산은 ‘수도국산’으로 불리었다. 181천818㎡(5만5천평)에 1천8백 채의 꼬방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달동네 수도국산은 1998년부터 재개발되었다. 그 자리에 3천 가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솔빛마을이 들어섰다. 배수지 공간은 그대로 살려두고 공원으로 조성했고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살림살이들은 2005년에 개관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 남겨졌다.

② 송현시장
1960년대 초에 개설한 송현시장은 2008년 6월 문화관광부 등으로부터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지정되었다. 인근에 골목들이 그대로 살아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대 달동네였던 곳을 추억할 수 있는 수도국산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 안에는 옛 향수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빨래터와 펌프장 등을 복원해놓았다. 시장에서 수도국산 오르는 골목에 ‘해방우물’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  



③ (구)오성극장
주로 한국영화를 상영했던 오성극장은 씨네팝, 애관2관으로 이름을 바꾸며 운영되다가 2003년 4월 11일에 스크린을 내렸다. 현재 재난위험시설(D)급으로 지정돼 철거 위기에 놓인 건물이다. 



④ 양키시장
송현동 100번지에 있는 양키시장의 정식 이름은 ‘송현자유시장’이다. 1965년 12월 정식으로 시장 등록이 되었다. 한때 미군부대 뒷문으로 흘러나온 양주나 양담배, 향수, 로션, 초콜릿, 스낵, 통조림 등 양키물건들이 이곳에서 은밀하게 거래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미군 양키들에게 나오지 않고 남대문시장 중간도매상을 통해 정식으로 수입된 물건들이 이곳에 공급된다.



⑤ 중앙시장
1935년 무렵 동인천역 부근에 벌집 모양의 시장이 개설된 데 이어, 현 중앙시장 인근 개천가에 야(夜)시장이 운영되면서 오늘날의 이 시장터가 놓였다. 1949년 송현동을 비롯해 전동, 숭의동, 도원동 등 각처의 노점 자유상인들이 결성한 소성자유시장자치회가 합동하여 지금의 ‘중앙시장’이 발족되었다. 개천을 복개한 후 건물을 지어 시장을 만들고 갑, 을, 병 지구로 나누었다. 현재 시장은 크게 혼수상가, 그릇상가, 양키시장, 수선골목 등으로 섹터가 나뉘었다.

⑥ 미림극장
1957년 11월 중앙시장 진입로에 천막을 세워 ‘평화극장’이란 이름으로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시작되었다. 6,70년대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남진과 나훈아 등의 리사이틀무대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7월 29일 영화 ‘투가이즈’를 끝으로 문을 닫은 미림은 2013년 10월 2일 250석 규모의 ‘실버전용극장’으로 리모델링해 다시 개관했다. 



⑦ 순대골목
순대골목의 뿌리는 30여 전의 수문통 시장이다. 수문통 시장이 헐리면서 국밥집들이 현재의 자리로 이주해오고 기존에 있던 몇몇 국밥집들과 합쳐지면서 순대골목이 되었다. 현재 숭의동에서 이화순대와 함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시정순대도 여기서 시작했다. 이 순대골목은 지난 1997년에 ‘특색음식거리’로 지정됐다.

⑧ 동인천역 북광장
동인천역사가 생기기 전에는 인현동 방면의 남쪽에 커다란 동인천역 광장이 있었다. 민자 역사가 들어서면서 광장은 사라졌고 대신 2011년부터 반대편의 송현동 쪽에 북광장이 조성되었다. 북광장이 생기면서 순대골목 한쪽과 인천에서 오랫동안 유명했던 털실 가게들이 사라졌다. 
 
⑨ 수문통
현재의 화평치안센터와 송현치안센터 사이, 약 200m 거리에는 ‘수문통’이라 불린 갯골 수로가 있었다. 물때 따라 작은 돛단배가 수문통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지대가 낮아 인근 동네의 온갖 생활하수가 이곳으로 다 흘러들었다. 동네사람들은 이 수문통을 ‘세느강’이라고 불렀다. 화평동 쪽 끝자락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수상가옥이라 할 수 있는 수문통시장이 1962년 9월 1일에 개장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판자벽을 한 이 시장의 건물은 1층은 가게, 2층은 살림집인 일종의 주상복합이었다.

⑩ 인천중앙교회
인천 동구에는 6·25 전쟁 후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했다. 특히 황해도 출신이 많았는데 북한에서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이 주축이 돼 1951년에 세운 교회가 황해노회 소속의 인천중앙장로교회다.   
 
⑪ 현대제철
송현동에는 바다를 끼고 있는 중후장대한 공장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제철이다. 1941년에 설립돼 요철을 생산했던 조선이연금속은 해방 후 조업이 중단되었다가 대한중공업으로 재가동되었고 인천제철로 이어졌다. 이후 인천제철은 1978년 4월 현대그룹으로 흡수되었고 ‘현대제철’로 그 이름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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