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그들은 거친 삶의 껍질을 깐다
그들은 거친 삶의 껍질을 깐다
인천은 바다 도시다. 바다는 우리에게 ‘갯것’을 준다.
대표적인 먹거리는 코끝 싸한 날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굴.
굴은 인천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아낙들의 손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굴 까는 아낙들이 모여 있는 굴막. ‘굴막’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지만
인천에 엄연히 존재하는 공간이다. 우리네 어려운 삶과 함께해 온 굴막은
현재 만석부둣가?. 만석고가교 밑? 그리고 괭이부리마을?로 이어진다.
거친 바다를 두른 굴에서 아낙들의 희망이 짭조름하게 넘실댄다.
글·사진 김애란 자유기고가
본격적으로 굴 까는 계절이 오면 그들 손에서 물 마를 날이 없다. 짜디짠 바닷물에 손이 부르트도록 쏟아내는 것은 우유 빛깔의 굴 속살이다. 인천 바닷가에서 채취한 굴은 말캉말캉 싱싱하고 부드럽다.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굴막공동작업장’의 굴은 아낙들의 한숨이며 미소다.
굴막은 지난해 추석 때부터 사용했다. 동구청이 낡은 판잣집 몇 채를 사서 주민들을 위해 공동작업장 굴막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마을 길거리에 그냥 비닐 천막을 치고 굴을 깠다. 굴막은 전체 3칸으로 한 칸에 서너명 씩 모여 앉아 작업을 한다. 괭이부리마을 사람만이 이곳에서 작업할 수 있다.
작업장 유리문 너머로 온기가 전해진다. 문을 열자 찬바람 부는 문 쪽을 향해 고개만 돌린 채 고영자(70) 씨는 쉼 없이 손을 놀린다.
“쉬엄쉬엄 까고 있지. 이거 하나 먹어 봐~.”
통통하게 영근 굴을 입에 넣어 준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전해진다. 그는 부모와 함께 황해도에서 피란 나와 64년 꼬박 괭이부리마을에서 살고 있다. 굴막 한쪽에서 속살을 드러낸 채 주인을 기다리는 뽀얀 굴들이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
옆 칸에서는 개흙을 털어내는 물청소가 한창이다. 굴 깐 지 40년이 넘었다는 조봉희(62) 씨는 부엌, 마루 등 집 안에서 굴을 까다 마당, 길거리에 이어 이곳 굴막까지 왔다. 굴 까는 일로 환갑을 넘긴 그에게 괭이부리마을은 고향이다. 굴 까느라 손목이 시큰거린다는 그는 다른 아낙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일을 하며 어려운 살림을 보탰다. 그나마 이곳은 바다가 가까운 덕에 굴 까기로 끼니는 이을 수 있었다. 현재 이곳 굴막의 굴 값은 물 빼고 kg에 1만3천원, 1관에 5만원에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이곳에서 까는 굴은 주로 연안부두나 재래시장에서 소매업을 하는 단골고객에게 넘어간다.
“김장이 끝나 요즘은 조금 덜 바쁜데 그래도 아침 6시에 나와 굴을 까. 나보다 더 오래 굴을 깐 어르신들이 있어.”
괭이부리마을의 굴 까기를 전수해준 어르신들은 이미 돌아가셨거나 살아 계셔도 8,90세가 됐다. 그들은 굴을 받아서 까는 요즘과 달리 직접 바다에 나가 굴을 따다가 깠다. 지금은 전설이 된 이야기를 굴 껍데기에 담아 달큼한 맛으로 전수한다.
좁은 굴막에 다시 굴이 쏟아져 내린다. 굴을 내리는 유병오(49) 씨의 어깨가 묵직하다. 무의도에서 굴을 따 왔다는 그는 물때를 따라 인천 앞바다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배가 나가지 않을 때면 그도 여기서 굴을 깐다.
추위에 얼어붙은 굴처럼 괭이부리마을의 판자촌은 겨울바람에 다닥다닥 얼어붙은 듯 고요하다. 아낙들은 오늘도 좁은 굴막에서 그들의 거친 삶의 껍질을 까며 고된 하루를 보낸다.
괭이부리 굴막 위치 동구 화도진로 186번길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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