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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리라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리라
글 김영승 시인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리라’는 나에게는 ‘나는 가야 해’ 이다. 아니 나는 ‘나는 가야 해’ 하는 노래를 부르며 돌아온다. 아니 돌아와야 한다. 가야지 돌아오지 않는가. 그 모순과 비극이 나의 삶인데 그 공존이 또한 나의 길이다. 그 반복은 또한 은총이고 축복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구약성서 시편 126장 5~6절의 말씀이다. 나는 그렇게 살았는가?
씨는 정성으로 뿌리고 기다려야 한다. 가꾸며 가뭄과 거친 비바람을 견뎌야 한다. 아름다운 열매부터 먼저 따려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곧 ‘사랑’이다.
나는 무엇의 씨를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뿌리려 했고 그리고 기쁨으로 거두려 했는가? 모른다. 아니 아직은 모른다. 그것을 그냥 ‘꿈’이라고 말해 두자.
‘봄이 오면 봄옷으로 갈아입고 기수(沂水)에 나가 목욕을 하고는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겠습니다(詠而歸)’ ‘한 증점(曾點)에 대해서 공자께서는 ‘오여점(吾與點)’ 즉 ‘내가 증점과 함께하리라’하셨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말씀이다.
효자로 유명한 증참(曾參)의 아버지 그 증점(曾點)은 그 전에 먼저 무우대(舞雩臺)라는 단(壇)에 올라가 바람을 쐰 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아마도 춤을 추었으리라. 나는 『아들과 함께 춤을』이라는 명상록을 준비 중이다.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르며 돌아올까. 아마도 아니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동요 그 「과수원길」을 부르겠지.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끗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그 후렴구를 나직이.
그리고 나는 또 돌아갈 것이다.
연일 혹한이다. 땅을 곡괭이로 찍으면 불꽃이 튈 것 같다.
그해 겨울 아내가 수술한 뒤 그 병실에서 아내가 사준 이 검은 잠바는 4년 동안 입었다. 물론 처제를 시켜 사오라고 해서 사온 겨울 잠바다. 그러고 보니 지난 4년 동안 겨울에 한 신문이나 잡지 등등 인터뷰 사진들은 다 이 검은 잠바를 입고 찍었다. 나의 이 검은 잠바는 주머니가 많아서 참 편한데 나는 나의 이 낡은 검은 잠바가 참 좋다. ‘기수(沂水)’는 어디에나 있다. 나의 ‘지금-여기’가 곧 나의 ‘기수(沂水)’이다. 물론 ‘눈물’도 나의 ‘기수(沂水)’이다.
나는 이 겨울 이 검은 잠바를 입고 미리 나간다. 그리고 미리 ‘내가 나와 함께하리라’말한다. 그 말은 곧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의 뜻이다. 이미 기쁘다.
시인 김영승
1958년 인천 출생.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졸업.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序」 외 3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데뷔. 2011년 제29회 인천시문화상 수상. 2013년 제13회 지훈문학상 수상. 2014년 제1회 형평문학상 수상.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지극히 생각한다면 무엇이 멀랴….’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哉?論語(논어), 子罕(자한).
나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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