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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청자빛 하늘에다 새 삶을 그려요

2001-09-01 2001년 9월호

한밤중이예요. 한참을 뒤척이다 곤히 잠드신 당신의 곁을 빠져나왔어요. 이불깃을 매만지며 당신 얼굴 살피다가 편지지 앞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써 내려가요.
엊저녁, 찻잔 앞에서 당신의 따스한 손이 제 마음까지 감싸며 ‘여보’라는 나직한 부름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여느 때와 달리 불안해하시는 모습에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눈을 꼭 감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거칠게 불어대는 정년 감축의 회오리바람이 현실로 들이닥쳤다며 마음의 준비를 할 때라는 당신의 말씀에 저는 벼랑으로 곤두박질치는 가슴을 겨우 붙잡아야 했어요.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어요. ‘온실의 화초처럼 고생이라곤 몰랐던 당신이 사랑 하나만으로 시집와 너무 애썼다’며, 오히려 위로를 하실 때에는 제 마음 역시도 아팠어요.
“하지만 난 자신 있어, 우리 식구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너무 상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으로 믿어주고 밀어 줘. 우리 절대로 사랑만은 잃지 말자! 응?”
그렁그렁한 채 거실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었던 이 못난이, 정말로 미안해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힘들고 외로운 당신, 저는 남편이기에 투정도 부릴 수 있다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당신이라는 걸 생각하니 슬프기 짝이 없었어요. 장자에다 세 아들의 아버지요, 철없고 무능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그간 마음고생 많으셨어요.
항상 제가 말씀 드렸죠. 당신의 성실함을 믿는다고요. 어느 누가 당신을 외면해도 말예요. 가계부를 쓰면서 예산 수립에 결산처리를 거듭했기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것처럼 슬기와 희망을 가지고 닥칠 어려움을 이겨내요. 당신 말씀대로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청자빛 하늘에다 우리의 새 삶을 그리자고요. 행복은 스스로 지혜를 구하고 노력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한창 단꿈에 빠져있을 당신,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제일이라는 것 잊지 마세요. 당신, 아주 많이많이 사랑해요.

●● 이제옥 (부평구 청천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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