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엄아 아빠 저 해냈어요
“5박6일이니까 하루에 1㎏씩 6㎏만 빼고 와.” 어느 날 아빠가 조그마한 포스터 한 장을 주셨다. 인천 바로 알기 종주대회.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림내용으로 보아 산에도 가고 걷고 하는데 무슨 극기훈련 비슷한 거라고 생각되었다. 나에게는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나 다름이 없었다.
111킬로의 대장정이 시작되기 전날 나는 소풍을 기다리는 기쁜 마음과는 정반대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번개와 천둥 그리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소리를 들으며 은근히 행사가 취소되기를 기대했다.(^*^)
8월7일 아침 7시.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청에는 80여 명의 많은 사람이 모였다. 엄마는 내게 오셔서 “준혁아, 네가 여기서 제일 어리대”라고 하셨다. 아마 내가 걱정돼서 하시는 말씀 같았는데 아빠가 몸무게 얘길 하실 때 이미 각오를 했기 때문에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총 8개조 중 중학교 형 4명 그리고 고등학교 형 4명과 함께 제7조에 배치되었다.
비가 계속해서 오는 가운데 우리는 『인천 바로알기 종주대 발대식』을 갖고 드디어 5박6일의 일정을 시작했다. 첫날 행군은 인천시청을 출발하여 남동IC - LNG입구 - 소래포구해양생태공원 - 인천대공원 순으로 총23㎞의 거리였다. 신발은 온통 젖었고 물집은 생기고 다리는 땡기고 나는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첫날인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만성중학교 교실에 짐을 푼 우리는 조별로 모여 팀기와 응원가를 만들었다.
5시 반 기상 피티 체조와 함께 둘째 날이 되었다. 어제 상태로 봐서는 도저히 못 걸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몸이 가벼웠다. 몸도 풀린 데다 형들의 배려로 조장이 된 나는 몸이 훨씬 가벼웠다. 힘찬 응원과 노래를 부르며 철마산과 만월산을 넘었다. 우리는 34,900보 20km를 걸어 공무원교육원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기분이 좀 좋았지만 모기는 육중한 내 몸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걸어서 빠진 살보다 모기가 가지고 간 살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셋째 날 인천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는 계양산(394m)에 올랐다. 조별로 사진을 찍은 후 내려가 차를 타고 강화도에 도착해서 문화재를 둘러보았다. 내가초등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그동안 다니며 본 것에 대해 퀴즈를 풀고 푹 잠이 들었다.
넷째 날엔 계속 산 속으로만 걷다 보니까 미끄러져 이곳저곳이 쓰라렸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아팠다. 기운을 내서 이겨내야지 하다가도 가파른 곳에 이르면 엄마, 아빠가 보고싶었다. 형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보고싶었다.
불온초등학교에 도착해 짐을 막 풀고 있는데 아빠가 오셨다. 나는 깜짝 놀라 인사를 했는데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빨래를 찾는 척하면서 뒤로 돌아섰다. 아빠는 힘들지 않느냐 하시곤 그냥 다른 선생님들과 가버렸다. 제기차기, 줄다리기, 촛불의식을 마친 우리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섯째 날 덕진진과 광성보에서 우리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라는 전쟁에서 비록 우리가 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거센 저항이나 단결된 힘을 보여준 ‘지고도 이긴 전쟁’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총구에 눈을 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아∼ 대한민국. 짝짝 짝짝 짝’
마지막날 계양산이 동생이라면 형격인 마니산에 올랐다. 안개도 끼고 비가 온 곳이라 미끄럽고 힘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하고 이를 악물고 걸었다. 민족의 머리로 ‘마리산’으로 불리웠다는 마니산 정상에서 같이 온 아저씨가 사고가 났다. 실수로 떨어지셨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많이 다치시진 않았던 모양이다. 종주의 끝 날인데 끝까지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로 인천시립박물관에 도착했다. 원래는 휴관일이지만 우리 종주단을 위해서 문을 열어 주셨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유물을 구경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리는 청량산, 연경산을 거쳐 도호부청사에 도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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